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 살림 YA 시리즈
로알드 달 지음, 퀀틴 블레이크 그림 / 살림Friends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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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날고, 비행기와 휘발유까지 거저라니!

―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

 로알드 달 글·사진

 퀸틴 블레이크 그림

 최지현 옮김

 살림Friends 펴냄, 2016.3.30. 11000원



  하늘을 날아오를 적에 어떠한 느낌인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두 손을 맞잡고 빙빙 돌려 주면 무척 좋아해요. 몸이 바닥에서 붕 뜬 채 ‘낮기는 해도’ 하늘을 날거든요. 어른이 어른 손을 맞잡고서 ‘하늘돌리기’를 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른이 아이 손을 맞잡고서 하는 ‘하늘돌리기’는 아주 가뿐해요.


  마당에서 두 아이를 하나씩 하늘돌리기로 바람을 가르도록 해 주면서 가만히 내 어릴 적을 돌아봅니다. 살갑고 상냥한 어른이 하늘돌리기를 해 주면 무척 신납니다. 찌릿찌릿 온몸이 새롭게 깨어나는 느낌입니다. 짧은 동안이지만 이렇게 바람을 가르면서 생각해 보곤 해요. 어른 손에 기대어 바람을 가르며 하늘을 날지 않고, 내 힘만으로 홀가분하게 바람을 가르면서 저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신날까 하고요.



“대머리인 게 나쁜 건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난 네 생각을 묻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약속하라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요. 약속해요.” (32∼33쪽)


“무솔리니가 아비시니아를 점령하려고 수십만의 군대를 그곳에 보냈죠. 이제 그 군인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이탈리아 여자를 배에 실어 보내는 거요.” “농담이시겠죠.” “저렇게 잔뜩 실어 날라서 일반 사병들 모두에게 여자 한 사람씩, 그리고 대령에게는 두 사람씩, 장군에게는 세 사람씩 배당하죠.” “제발 농담 좀 그만해요.” “정말 저들은 군인에게 보내지는 거예요. 아무 의미도 없고, 근거도 없는 전쟁이죠. 군인은 모두 전쟁을 싫어해요. 비참한 아비시니아 사람들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데 신물이 나 있어요. 그래서 무솔리니가 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려고 여자들 수천 명을 보내는 거요.” (39∼40쪽)



  로알드 달 님이 갓 스무 살을 넘길 즈음 겪은 일을 재미나면서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이야기책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살림Friends,2016)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로알드 달의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2010)하고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발칙하고 유쾌한 학교》는 로알드 달 님이 1920∼30년대에 학교를 다니면서 영국 학교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끔찍했는가 하는 대목을 ‘발칙·유쾌’라는 말마디로 에둘러서 그린 이야기라면, 《위대한 단독 비행》은 1930∼40년대에 아프리카로 가서 일을 하다가 전쟁통에 갑자기 군인이 되고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겪어야 했던 삶을 ‘위대·단독’이라는 말마디로 간추려서 그린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로알드 달 님은 왜 ‘위대’랑 ‘단독’이라는 이름을 넣어서 ‘공군 조종사’ 삶을 이야기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천재 이야기꾼 로알드 달》(2012)이라는 평전에서 아주 낱낱이 다루는데, 영국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배에서 겪은 일이라든지,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난 ‘노예(하인)’라든지, 아프리카에서 마주친 뱀이나 사자라든지, 더욱이 독일하고 영국 사이에 전쟁이 불거지면서 ‘군사훈련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이 총자루를 손에 쥐’고는, 그동안 그냥 이웃으로 지내던 독일사람을 ‘전쟁포로’로 사로잡아야 하는 일을 ‘위대’하면서 ‘단독’으로 해내거나 치러야 했습니다.



요리사가 아내에게 먼저 다다랐고 이어서 로버트 샌포드와 내가 차례로 도착했다. 난 도무지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자의 끔찍한 이빨이 여자의 허리와 배를 두 동강으로 찢어 놓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자는 땅에 앉아서 요리사 남편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던 것이다 … “없어요, 브와나. 사자는 제가 마치 새끼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물고 여기까지 왔어요. 하지만 옷은 빨아야겠어요.” (61, 62쪽)


“모두 소탕해 버려. 기관총이 있지 않나? 기관총 하나가 소총을 가진 500명을 쳐부술 수 있지.” 나는 점점 긴장했다. 난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로 이어진 먼지 나는 연안도로에서 500명의 시민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데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죠?” “재량껏 처리해야겠지.” 대위는 논쟁을 피하고 있었다. (87쪽)



  로알드 달 님은 어찌저찌 독일 ‘시민’을 전쟁포로로 잡습니다. 죽을 고비까지 아슬아슬하게 넘기면서 ‘첫 임무’를 가까스로 마칩니다. 이런 뒤 공군으로 자원했고, 차근차근 훈련을 받아서 ‘공군 부대’로 갑니다. 그런데 로알드 달 님은 손수 전투기를 몰고 부대로 가는 길에 헤매지요. 아니, 길을 잃어요. 사막 한복판에 그만 처박힙니다. 전쟁터로 가서 싸우기도 앞서 그만 혼자 죽을 고비에 빠집니다.


  수술을 받고 몸을 다스리면서 여섯 달을 더 기다린 끝에 비로소 부대로 들어가는데, 공군 조종사 로알드 달이 간 곳에 있는 영국 전투기는 열 몇 대뿐입니다. 열 몇 대뿐인 영국 전투기는 수백 대나 수천 대에 이르는 독일 전투기하고 맞서서 싸워야 합니다. 전투기도 조종사도 워낙 적은 탓에, 하늘에서 그냥 죽든지 아니면 그냥 몸바쳐서 이슬로 사라지든지 해야 하지요. 열 몇 대뿐인 전투기로는 함께 작전임무를 하지 못합니다. 늘 혼자 움직이면서 여러 대나 수십 대에 이르는 독일 전투기하고 맞붙어야 합니다. 참말로 ‘위대’한 ‘단독’ 비행인 셈이지요.



단독 비행을 한 후 나는 허가를 받고 짧은 시간을 혼자 비행할 수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케냐 같은 아름다운 나라의 하늘을 씽씽 솟구쳐 오르며 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운 좋은 젊은이가 얼마나 있을까. 난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묻고 또 물었다. 심지어 비행기도, 휘발유도 공짜고 말이다! (122쪽)



  쉽게 헤아려도 으레 1:50으로 싸우는 셈인데, 로알드 달은 갓 스물 나이에 ‘죽음을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죽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이 멋지고 아름다운 하늘’을 혼자서 마음껏 날 수 있으니 얼마나 재미있고 기쁜가 하고 생각했다고 해요. 키가 몹시 커서 조종칸에서 늘 구부려 앉아야 했고, 때로는 다리에 쥐가 났다고 하지만, 홀로 하늘을 가르면서 바라보는 아프리카나 그리스 하늘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고 해요.


  ‘천재 이야기꾼’은 이런 바탕에서도 태어났겠구나 하고 느껴요. 소름이 돋도록 무섭고 끔찍한 학교에서 어린 나날을 보내야 한 뒤, 감옥 같던 학교에서 풀려나 아프리카를 누비고 ‘사람 잡는 사자’하고 ‘사람 잡는 큰 뱀’을 보다가 ‘전투기 조종사’로 혼자서 하늘을 가르는 동안 젊은이 가슴에는 어마어마한 꿈이 피어났으리라 느껴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던 로알드 달 님은 “심지어 비행기도, 휘발유도 공짜!”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대요. 얼마나 “운 좋은 젊은이!”인가 하고 외쳤대요.



난 아직 어리고 비현실적인 구석이 있어서 이 그리스에서의 탈출이 멋진 모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거다. 이 나라를 살아서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살아서 나가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173쪽)


독일 전투기들은 그 수가 너무 많아 종종 서로에게 방해가 되는 게 분명했다. 반면 우리는 수가 적어서 오히려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 햇살이 반짝이고 비행장 풀밭에는 야생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이 아름다운 땅을 다시 볼 수 있다니 얼마나 운이 좋은가, 난 생각했다. (205쪽)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에 나오는 대로, 영국 공군은 전투기가 몇 대 없었습니다. 마지막 ‘하늘싸움’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리스 전선 영국 전투기’ 열 대 남짓이 오백 대가 넘는 독일 전투기하고 함께 맞붙었다고 합니다. 비행기 몸통에 총알 구멍이 수없이 박혔어도 로알드 달 님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총알하고 기름을 다시 채우고 구멍을 새로 메운 뒤에 끝없이 다시 오르고 또 오르면서 하루 내내 하늘싸움을 했다는데, 이동안 독일 전투기를 몇 대 떨어뜨렸는지 알 길은 없지만(셀 겨를이 없었겠지요), 그 하늘싸움에서 용하게 살아남은 몇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 아슬아슬한, 살이 떨리는 고빗사위를 글줄로 찬찬히 풀어놓습니다.


  살아남았기에 쓸 수 있는 글입니다. 살아남았기에 그무렵을 떠올리면서 쓸 수 있는 글이에요. 무엇보다도 ‘그냥 살아남’지 않고, ‘위대한 단독 비행’을 언제나 기쁘게 맞아들이면서 눈부신 하늘과 땅을 마음껏 마주할 수 있었기에 쓸 수 있는 글입니다.


“뭔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리고 뭔가가 간절히 필요하면 얻게 되는 법이죠.”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일어서더니 내 등을 철썩 때렸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군요. 하지만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당신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으니까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268쪽)


버스는 아직도 100야드 밖에 있는데 어머니가 보였다. 어머니는 대문 밖에서 버스가 오기를 조바심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아마도 한두 시간 전부터 버스가 지나는 것을 보며 그곳에 서 계셨을 것이다. 3년이나 기다렸는데 한 시간 아니, 세 시간이라 한들 뭐가 문제겠는가? (281쪽)



  아프리카에서 일하다가 공군 조종사가 되어 ‘어머니가 사는 나라’하고는 세 해 즈음 떨어져서 지냈다고 합니다. 이야기책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 마지막에는 어머니한테 찾아가는 모습이 흐릅니다. 세 해를 기다린 어머니한테 세 시간이 뭐가 대수롭겠느냐 하고 적는 글 한 줄이 덤덤합니다. 덤덤할 수 없을 테지만 덤덤합니다.


  스스로 연 꿈길이기에 덤덤하게 글로 풀어내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사자한테 잡아먹힐 뻔한 사람을 본 다른 사람이라면 ‘무서워서 아프리카에서 일 못 한다!’고 할 만해요. 커다란 뱀이 사람을 집어삼키려는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본 다른 사람이라면 이때에도 ‘무서워서 그런 곳에 어떻게 있느냐!’ 하고 말할 만합니다. 어제까지 민간인이던 이웃을 총으로 윽박질러서 전쟁포로로 삼으라고 하는 명령을 받을 적에도, 1:50이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로 싸워야 하는 공군 조종사 노릇도, 어느 눈길로 보면 ‘말도 안 되고 끔찍하며 괴로운 삶’으로 여길 만합니다.


  그렇지만 로알드 달 님은 이런저런 모든 일을 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새로운 길’로 여깁니다. 삶을 새롭게 겪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투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동안 ‘적군 비행기를 쏘아 맞히지 못하면 내가 하늘에서 떨어져 죽어야 하는 노릇’이지만, 로알드 달 님은 이런 생각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과 땅’을 먼저 보고 오래 생각하면서 마음에 담아요.


  꿈길을 걷듯이 하루하루 맞이하기에 새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할 만합니다. 꿈길을 보듯이 하루를 ‘기쁨과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보았기에 언제나 씩씩하게 허리를 펴면서 활짝 웃는 몸짓으로 재미나게 이야기꽃을 피우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조금이라도 ‘지겹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눈’이었다면 천재 이야기꾼도, 《로알드 달의 위대한 단독 비행》 같은 책도 태어나지 못했으리라 하고 느낍니다. 2016.4.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에서 책읽기)


* 사진은 살림프렌즈 출판사에서 보내 주어서 함께 붙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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