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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든 동안 넌 뭐 할 거야? ㅣ 풀빛 그림 아이 55
마츠 벤블라드 글, 페르 구스타브슨 그림 / 풀빛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42
동무가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 내가 잠든 동안 넌 뭐 할 거야?
마츠 벤블라드 글
페르 구스타브슨 그림
엄혜숙 옮김
풀빛 펴냄, 2016.2.22. 1만 원
겨울잠을 즐기던 모든 숨결이 하나씩 깨어나는 철입니다. 나무에는 꽃눈하고 잎눈이 깨어나고, 들과 밭과 숲에서는 새로운 풀이 깨어납니다. 풀벌레가 깨어나고, 벌하고 나비가 깨어납니다. 지렁이가 깨어나며, 무당벌레도 개구리도 뱀도 깨어나요. 그야말로 모두 길게 기지개를 켜면서 하루를 새롭게 열려 합니다.
고슴도치가 물었어요. “내가 자는 동안 넌 뭐 할 거야?” 산토끼가 말했어요. “그냥 …… 이것저것 할 거야. 재미난 건 없어. 우리 다른 얘기하면 안 될까?” (2쪽)
마츠 벤블라드 님이 글을 쓰고, 페르 구스타브슨 님이 그림을 빚은 그림책 《내가 잠든 동안 넌 뭐 할 거야?》(풀빛,2016)를 읽습니다. 잠든 동안 뭘 하다니, 같이 안 자고 한쪽만 잔다는 뜻일까요? 스웨덴에서 날아온 그림책 《내가 잠든 동안 넌 뭐 할 거야?》인데, 이 그림책은 ‘겨울잠’을 둘러싸고 두 숲짐승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숲짐승 한 마리는 고슴도치이고, 숲짐승 다른 한 마리는 멧토끼예요. 숲짐승인 고슴도치는 겨울잠을 자고, 다른 숲짐승인 멧토끼는 겨울잠을 안 자요. 그래서 고슴도치는 겨울을 맞이하면서 언제나처럼 포근하게 잠에 빠져들면서 겨울을 났고, 멧토끼는 ‘살가운 숲동무’인 고슴도치가 다시 일어나지 않고 숨조차 안 쉬는구나 하고 느껴서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하지만 넌 울었지?” “아마 눈물 한두 방울쯤 흘렀을 거야.” “얼마 동안이나 울었는데?” “잠시 동안. 두 주일인가, 세 주일쯤.” “잠시 동안이 아닌데?” “난 마음이 아팠거든. 그런데 그때 일이 벌어진 거야.” (11쪽)
겨울잠을 안 자는 멧토끼로서는 ‘겨울잠을 자는 동무’를 처음 사귀었기에, 동무가 겨울에 까무룩히 잠들어서 일어나지도 움직이지도 않으니 ‘죽었구나’ 하고 여겼답니다. 겨울잠을 자는 동무가 죽은 줄 알고 ‘장례’를 치르기로 한 멧토끼이고, 장례를 치른 뒤 무척 오랫동안 동무 곁에서 울었대요.
멧토끼는 고슴도치한테 ‘잠시 동안’이라 말했지만, 이 ‘잠시 동안’은 적어도 석 주라고 합니다. 아마 석 주뿐 아니라 넉 주도 다섯 주도 울었을는지 몰라요. 어쩌면 겨울 내내 울었을 테지요. 멧토끼는 살짝 부끄러워서 겨울 내내 울었다는 말을 안 했을 뿐이겠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봄이 되자 고슴도치가 갑자기 눈을 떴대요. 겨울잠을 다 잤으니까요. 날마다 고슴도치 곁에서 울며 ‘동무를 그리’던 멧토끼는 ‘죽었다’고 여긴 고슴도치가 여러 달 만에 갑자기 눈을 뜨니 더 크게 놀랐다고 해요.
아무렴 그렇겠지요. 하루나 이틀 뒤에 깨어났으면 그나마 ‘덜’ 놀랐을 테지만, 여러 달이 지나고서야 깨어났으니 얼마나 놀랐을까요.
산토끼는 고슴도치에게 이파리를 더 많이 덮어 주었어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았으니까요. 고슴도치가 말했어요. “우리는 굉장히 멋진 여름을 보냈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산토끼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슴도치의 뺨을 톡톡 쳤어요. “진짜 멋졌지.” (14쪽)
나는 아이들이 잠든 동안 낮에 미룬 일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도 하고, 영화도 보며, 부엌도 새로 갈무리합니다. 방도 더 치우고, 새 아침에 무엇을 차릴까 하고 생각하며 밑손질도 합니다. 이렇게 어느 만큼 보내고서 아이들 사이에 살며시 눕지요.
밤에 잠자리에 들며 꿈을 꿉니다. 누구나 잠을 자며 누구나 꿈을 꿉니다. 하루를 마무리지으면서 새롭게 하루를 지으려고 꿈을 꾸어요. 그래서 잠든 사람은 마치 죽은 사람 같아요. 몸은 이곳에 고요히 내려놓고 마음으로 저 먼 곳을 마음껏 노닐거든요.
꿈나라에서는 하늘도 손쉽게 날고 바닷속도 홀가분하게 헤엄쳐요. 꿈나라에서는 우주도 가르고 지구 깊은 데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 아무리 멀리 떨어진 동무도 꿈에서 만날 수 있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동무도 꿈에서는 늘 만나서 놀 수 있어요.
고슴도치는 하품을 하며 좀 더 깊숙히 나뭇잎 속으로 들어갔어요. 그렇지만 곧, 고슴도치는 코를 쑥 다시 내밀었지요. “산토끼야…….” “그래, 고슴도치야. 왜 그래?” “내가 잠든 긴 겨울 동안 넌 뭐 할 거야?” “온갖 걸 하겠지.” “그럼, 넌 여기 앉아 내가 잠에서 깨기를 기다리지 않겠네?” (19쪽)
겨울잠에서 깨어난 수많은 숨결이 새로운 봄을 이룹니다. 서로서로 싱글벙글 인사를 나눕니다. 온갖 꽃이 온갖 빛깔로 깨어나서 새로운 물결을 이룹니다. 하얗게 고요하며 밤이 길던 겨울이 끝나면서, 알록달록 무지개가 춤을 추고 반짝반짝 눈부신 낮이 긴 봄이 펼쳐집니다.
이 봄에 우리는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요? 나무를 한 그루 심어 볼까요? 봄꽃을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하면 즐거울까요? 봄나물을 뜯어서 밥상을 차려도 재미있을 테지요? 이 봄에 우리 곁에서 어떤 이웃과 동무가 새롭게 눈을 뜨는가 하고 지켜보면서 우리 보금자리를 알뜰살뜰 가꾼다면 무척 신나리라 생각해요. 2016.3.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