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꽃병



  큰아이가 꽃봉오리를 하나 얻었다. 이 꽃봉오리를 들고 놀다가 꽃병에 꽂겠다고 말한다. 큰아이한테 꽃봉오리를 준 할아버지가 ‘꽃병에 꽂으’면 된다고 말했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큰아이한테 물어보았다. “벼리야, 우리 집에서 어머니나 아버지가 꽃가지를 꺾어서 집에다가 꽃병에 꽂니?” “아니.” “그런데 왜 벼리는 우리 집에 ‘꺾은 꽃가지’를 꽃병에 꽂으려 하니?”


  아이하고 말을 섞으면서 가만히 돌아본다. 도시에서 살던 무렵을 떠올린다. 내 어릴 적을 되새긴다. 우리 집 마당이 없고, 우리 집 밭도 없고, 우리 집 땅뙈기도 없던 때에는 무엇을 심거나 가꾸는 일을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는 내 땅이 없고 내 씨앗이나 나무가 없어도 밥을 다 먹었다. 도시에서는 꽃다발 선물이 퍽 흔하다.


  시골에서 살며 꽃다발 선물은 생각조차 한 일이 없고, 생각할 일마저 없다고 느낀다.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에 아이들하고 나들이를 다니다가 들꽃을 보면서 한두 송이를 꺾어 귓등에 꽂으며 꽃순이 꽃돌이가 되며 놀다가 꽃송이를 흙에 내려놓기는 한다. 그런데 이렇게 꽃놀이를 하면 꽃은 이내 시든다는 대목을 아이도 잘 안다.


  마루문을 열면 바로 마당이요, 마당에 여러 꽃나무가 있다. 꽃을 보고 싶으면 몇 걸음만 걸으면 된다. 꽃내음을 맡고 싶으면 싱그러이 살아서 싱싱하게 꽃숨을 베푸는 나무 곁에 서면 된다. 꽃꽂이나 꽃병 같은 문화도 여러모로 뜻있을 텐데, 이에 앞서 골목도 거리도 마을도 모두 꽃밭이거나 꽃길이거나 꽃숲이라면, 시골이나 도시 모두 크고작게 숲이 이루어지기를 빌어 본다. 2016.3.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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