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먹는 티라노사우루스
카테리나 마놀레소 그림, 스므리티 프라사담 홀스 글, 엄혜숙 옮김 / 풀과바람(영교출판)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636



육식공룡은 풀을 먹으면 안 될까?

― 당근 먹는 티라노사우루스

 스므리티 프라사담 홀스 글

 카테리나 마놀레소 그림

 엄혜숙 옮김

 풀과바람 펴냄, 2016.1.4. 1만 원



  당근 먹는 육식공룡 이야기가 흐르는 그림책 《당근 먹는 티라노사우루스》(풀과바람,2016)를 아이들하고 재미나게 읽으며 생각합니다. 풀을 먹는 공룡을 잡아먹는다고 하는 티라노사우루스인데, 이 공룡 가운데 고기 아닌 풀을 먹는 아이가 나온다고 하는 대목은 언뜻 보기에 터무니없다고 여길 수 있어요. 어쩌면 ‘사람 생각’으로 지어낸 이야기라 할 수 있는데, 어쩌면 ‘고기 아닌 풀 먹는 육식공룡’이 참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공룡 시대에서 살던 모습을 떠올리지 못하니까 어느 쪽이 참인지 알 수 없겠지요.


  그림책 《당근 먹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읽다 보면, 이 그림책에 나오는 ‘쿵쾅이’라는 아이는 당근 같은 남새나 풀만 좋아하지 않습니다. 쿵쾅이라는 아이는 밥짓기(요리)를 무척 좋아해요. 쿵쾅이네 어머니랑 아버지는 언제나 고기만 먹고 아이한테도 언제나 고기만 먹으라고 하니까, 쿵쾅이로서는 집에서 ‘먹고 싶은 남새나 풀’을 먹을 길이 없어요. 쿵쾅이 스스로 남새를 얻어야 하고, 밥을 따로 지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육식공룡 쿵쾅이는 ‘풀만 먹는’ 공룡이 아니라 ‘손수 밥을 지어서 먹을 줄 아는’ 공룡이에요. 스스로 살림을 짓는 무척 멋진 아이입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하나 있어요. 밥 먹을 때 친구들과 못 어울려요. 친구들은 우적우적 스테이크를 먹는데……, 쿵쾅이는 아작아작 당근 케이크를 먹거든요! (3∼4쪽)


“맙소사! 넌 어디가 잘못된 거니?” 아빠가 혀를 차며 말했어요. “너는 고기, 고기, 고기를 먹어야 해!” 엄마도 기막혀 하며 말했지요. (8쪽)




  그런데 말이지요, 쿵쾅이는 동무들하고 홀가분하게 어울리고 싶지만 ‘밥 먹을 때’에 몹시 괴롭습니다. 집에서도 늘 밥 때문에 힘들지요. 쿵쾅이는 육식공룡인 몸으로 태어나다 보니, 어버이뿐 아니라 다른 동무는 모두 고기만 먹어요. 쿵쾅이 혼자 고기를 안 먹습니다. 초식공룡인 몸으로 태어났다면 아무 걱정이 없었다고 할 터이나, 육식공룡인 몸으로 태어나서 ‘고기가 몸에 안 맞’는데다가 ‘풀이 몸에 잘 받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다들 ‘육식공룡 주제에 왜 고기를 안 먹어?’ 같은 생각으로 바라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쿵쾅이는 제 둘레에서 저를 넉넉히 살피거나 너그러이 헤아리는 눈길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기쁘지 못합니다. 풀을 먹는 육식공룡이지만 달리기도 잘하고 힘도 센데, 아픈 데도 없는데, 고기를 안 먹고 풀만 먹으니 뭔가 잘못된 녀석이라고만 여겨요.


  참말 동무들은 쿵쾅이를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쿵쾅이네 어머니하고 아버지조차 쿵쾅이가 ‘기막히다’고 여깁니다. 이녁 아이인 데에도 이녁 아이가 어떤 몸이요 마음인가를 제대로 읽으려 하지 못해요. 아이가 무엇을 바라는가를 찬찬히 짚지 못합니다.


  이럴 때에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혼자 고기를 먹지 않고 풀을 먹기에, 쿵쾅이는 스스로 밥을 차려서 먹고, 게다가 ‘당근 케이크’까지 손수 구워서 먹을 줄 아는데, 이 아이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초식 동물들은 콩쾅이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도망쳐 버렸어요! (18쪽)




  그림책에 나오는 쿵쾅이는 집을 떠나기로 합니다. 쿵쾅이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기로 합니다. 집에서 씩씩하게 살림을 짓고 밥도 지을 줄 아는 쿵쾅이인 터라 집을 떠나기로 한 다짐이 걱정스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쿵쾅이는 ‘육식공룡인 몸’이기에 새롭게 동무를 사귀지 못해요. 초식공룡은 쿵쾅이를 보기 무섭게 달아납니다. 고기를 안 먹고 풀을 먹는 쿵쾅이입니다만, 초식공룡은 이 대목을 하나도 모르지요. 동무가 되고 싶어 찾아오는 쿵쾅이인데, 차분히 기다리면서 말을 들으려 하는 초식공룡은 아무도 없어요.



고향에 있는 친구들은 쿵쾅이가 그리웠어요. 우람이가 말했어요. “과일이랑 채소 먹는 게 어때서? 쿵쾅이는 누구보다도 티라노사우루스다워. 빨리 쿵쾅이를 찾아보자.” (21쪽)




  집과 마을에서도 마음을 나눌 동무나 이웃이 없는 쿵쾅이는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도 마음을 나눌 동무나 이웃을 만나지 못합니다. 무척 쓸쓸한 마음이 되고 마는 쿵쾅이입니다. 쿵쾅이가 이렇게 마음앓이를 할 무렵, 쿵쾅이가 없는 마을에서 ‘옛 동무’들이 쿵쾅이를 그리워 합니다. 먼저 동무 공룡 하나가 ‘무엇을 먹느냐’로 동무를 따지지 말자고 얘기해요. 무엇을 먹든 동무는 똑같이 동무라고 얘기하지요.


  어버이한테는 모든 아이가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잘생긴 아이나 못생긴 아이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똑똑한 아이나 어리숙한 아이가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그저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걸음이 빠르든 느리든, 얼굴이 까맣든 하얗든 모두 똑같이 사랑스러운 아이일 뿐이에요.


  우리 이웃도 모두 똑같이 이웃입니다. 어떤 옷차림이든 어떤 모습이든 어떤 삶과 살림이든 모두 똑같이 이웃입니다. 저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른 삶이고, 저마다 이루려는 꿈이 다른 살림이며, 저마다 짓는 하루가 다른 사랑입니다.


  우리가 서로 다르면서 아름다운 숨결인지 안다면, 서로 다른 모습을 내세워 다투거나 자랑해야 할 일이 없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서로 다르면서 사랑스러운 넋인지 안다면, 숫자를 앞세워 겨루거나 금을 갈라야 할 까닭이 없으리라 느껴요.


  그림책 《당근 먹는 티라노사우루스》는 육식공룡 쿵쾅이 이야기를 다룹니다. 풀을 먹는 육식공룡이 아닌 ‘고기를 먹는’ 초식공룡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도 똑같겠지요. 초식공룡 사이에서 풀을 먹는 아이가 있으면 이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다른 초식공룡은 풀을 못 먹고 고기를 먹어야 하는 초식공룡을 어떻게 마주할까요?


  무엇을 먹든, 무엇을 좋아하든, 무엇을 하든,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동무요 어버이요 이웃으로 짓는 살림을 되새깁니다. 무슨 놀이나 일을 하더라도 곱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서로 한결 널리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길러야겠다고 느껴요. 2016.3.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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