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랑 놀자 204] 만들다



  내 이름을 ‘지어(짓다)’요. 내가 바라보는 나무나 풀에는 먼 옛날 누군가 지어 준 이름이 있어요. 새한테도 벌레한테도 누군가 이름을 지어 주지요. 시골에서는 흙을 짓거나 농사를 지어요. 함께 즐겁게 부를 노래를 짓지요. 줄을 지어서 서고, 글이나 책을 지어요. 어른뿐 아니라 어린이도 삶을 짓고 사랑을 지으며 살림을 짓습니다. 집이나 옷이나 밥을 짓고, 웃음이나 눈물을 지어요. 재미난 이야기를 짓고, 약을 지으며, 없는 말을 지어서 장난을 치거나 놀이를 해요. 잘못을 짓기도 하지만, 일이 잘 끝나도록 마무리를 지어요. 우리는 서로 사이좋게 짝을 지어서 놀아요. 그러니까, 밥이나 빵이나 국수나 두부는 ‘만들지(만들다)’ 않습니다. 밥은 짓거나 하거나 끓이지요. 빵은 구워요. 국수는 삶고, 두부는 쑵니다. 요리나 음식을 할 적에도 “요리를 하다”나 “음식을 하다”라 할 뿐 “요리를 만들다”라고 하면 살짝 엉뚱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짓다·만들다’를 제대로 가려서 쓰지 않고 뒤섞어서 쓰지요. 사람들이 손이랑 마음을 써서 새롭게 이룰 적에는 으레 ‘짓다’라는 말을 씁니다. 갑작스레 나타나거나 공장에서 자동차를 찍듯이 새롭게 이룰 적에 비로소 ‘만들다’라는 말을 써야 알맞아요. 4349.1.28.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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