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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클럽 ㅣ 난 책읽기가 좋아
티에리 르냉 지음, 한지선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2005년 1월
평점 :
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4
값비싼 장난감으로는 동무를 못 사귄다
― 바비 클럽
티에리 르냉 글
한지선 그림
최윤정 옮김
비룡소 펴냄, 2005.1.13. 7000원
아이들은 저한테 남보다 값지거나 비싸거나 좋은 것이 있을 적에 ‘자랑’을 하고 싶을까요? 아니면 저한테 있는 어떤 것을 이웃이나 동무하고 ‘나눔’을 하고 싶을까요? 다른 동무들 앞에서 ‘내 것 뽐내기’를 하면 기쁘거나 즐거울까요? 아니면 여러 동무들하고 오순도순 도란도란 아기자기 신나게 놀 적에 기쁘거나 즐거울까요?
티에리 르냉 님이 글을 쓰고, 한지선 님이 그림을 넣은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비룡소,2005)을 가만히 읽으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내 어릴 적을 더듬으니, 사내는 사내대로 로봇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보여주기를 즐겼고, 가시내는 가시내대로 인형 같은 장난감을 학교로 가져와서 동무들한테 선보이기를 즐겼습니다. 내가 다닌 학교에 부잣집 아이는 거의 없었기에 ‘자랑’할 동무는 거의 없었고, 자랑하려고 뭔가를 가져왔다가는 주먹힘이 센 아이한테 빼앗기기 일쑤였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떤 장난감이든 집에서 가져오지 말라고 했어요. 학교는 공부하는 곳이니까 장난감을 가져오지 말라는 얘기는 옳다고 느껴요. 그렇지만 아이들은 쉬는 때라든지, 낮밥을 먹는 때에 장난감으로도 놀고 싶습니다. ‘하지 마’나 ‘갖고 오지 마’라 말하지만 말고, ‘한번 가져와서 다 같이 놀아 볼까?’라 말하면서 장난감을 어떻게 다루어야 즐거운가를 ‘가르칠’ 수 있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디에고가 히죽거린다. 축구공이 방금 바비 인형 캠핑카를 짓이겨 놓았다. 부서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저놈의 물건, 아마 200프랑은 나갈 것이다. (9쪽)
“선생님, 쟤가 그랬어요!” 상드라는 손가락질을 하면서 잡아먹을 듯이 말했다.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증거가 없이 남을 몰아세우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했다. 교육 과정에 그런 게 있었다. (15쪽)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을 보면 여러 아이가 나옵니다. 맨 먼저, 이 이야기를 이끄는 사내 아이가 나옵니다. 다음으로, 학교에서 권력을 흔드는 어머니를 둔 부잣집 가시내 아이가 나옵니다. 부잣집 아이를 둘러싼 ‘바비 클럽’이 되는 가시내 아이들이 나오고, 마지막으로 아랍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가시내 아이가 나와요.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버이 권력’에 맞추어 똑같이 움직입니다. 어느 모로 보면 무서운 모습이에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고스란히 가르치거나 물려준 셈이거든요. 사회를 주름잡는 권력이나 이름값이 있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동무들 앞에서 똑같이 권력이나 이름값을 휘두르려고 해요.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서 ‘교육 과정에 나온 대로 하는 어설픈 중립’을 지킵니다.
모든 말썽과 실마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풀어야 할까요? 어른인 교사는 팔짱을 끼기만 해야 할까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는 이녁이 거느리거나 휘두르는 권력을 아이들이 똑같이 따라하는 모습이 즐거울까요?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없는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권력도 돈도 이름값도 높은 어버이를 둔 아이’한테 억눌리거나 짓눌려야 할까요?
이 아랍 아이는 이번 학기에 전학왔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유명한 인형을 하나 들고 나타나서 바비 클럽 여자애들한테 다가갔다. “나, 너희들이랑 놀아도 돼?” 오렐리는 찬성하지 않았다. 걔네 식구들은 아랍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아랍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21쪽)
내 어릴 적을 다시 돌아봅니다. 내 동무들을 살피면 ‘바비 인형’처럼 돈값이 꽤 센 인형을 학교로 몰래 가져와서 ‘와 예쁘네’라든지 ‘나도 한번 만져 볼게’ 같은 말이 나오게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더 많았는가 하면, 두꺼운종이를 가위로 오리고 그림을 그린 ‘종이인형’을 손수 빚는 아이가 훨씬 많았어요.
나는 사내입니다만, 나도 종이인형을 오렸어요. 내가 놀 종이인형이라기보다 다른 아이한테 줄 종이인형입니다. 처음에는 50원이나 100원을 받고 팔겠노라며 종이인형을 오리지만 아무도 안 사요. 그래서 나중에는 다 그냥 동무들한테 줍니다. 나한테서 종이인형을 한 번 두 번 받다 보니, 어느새 동무들은 나한테 종이인형을 그려 달라 하거나 오려 달라 합니다. 자꾸자꾸 종이인형을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솜씨가 늘어서 그저 재미로 종이인형을 오렸어요.
참을 수 없이 심술이 나서 아이들은 배가 아픈 것 같았다. 그렇다고 대장한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상드라네 할머니를, 그 다음에는 이렇게 비싼 것을 사 줄 수 없는 자기들 할머니들을 원망했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화는 곧바로 제밀라에게 미쳤다. 제밀라는 아랍 애니까. (40쪽)
어린이문학 《바비 클럽》은 ‘바비 인형’을 둘러싸고 아이들 사이에서 ‘권력 다툼’이 생길 뿐 아니라 ‘따돌림’에다가 ‘인종 차별’까지 버젓이 일어나는 프랑스 사회를 그립니다. 여기에다가 ‘이 모든 말썽거리를 팔짱 끼고 구경하는 어른(교사) 모습’을 넌지시 나무라는 투로 보여줍니다. 이런 학교에서 주인공 사내 아이가 모든 말썽거리를 한꺼번에 풀어내는 멋진 생각을 보여줍니다. ‘바비 클럽’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부잣집 아이가 아랍 아이를 못살게 굴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적에 주인공 사내 아이가 꾀를 써요. 아랍 아이가 고빗사위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나올 구멍을 아무도 몰래 마련하면서, 부잣집 아이가 반 아이들과 교사 앞에서 부끄러운 짓을 하는 셈이 되도록 꾀를 써요.
이야기 마지막을 보면서 후유 하고 한숨을 쉽니다. 아이들은 이 이야기책에 나오듯이 아직 철이 없어서 동무를 괴롭히기도 하고, ‘부자인 어버이나 할머니’가 있느냐 없느냐로 투정을 부리기도 합니다. 이때에 어버이나 어른이 슬기롭지 않으면 아이들은 엉뚱한 길을 배워요.
참말로 학교에서 ‘인형놀이 교육’이나 ‘장난감 교육’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난한 집 아이나 부잣집 아이나 모두 즐겁게 ‘종이인형 오리기’를 하면서, 모든 장난감이나 인형은 우리가 손수 지어서 즐길 수 있다는 대목을 가르치거나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나는 틈틈이 새 종이인형을 오려서 우리 집 아이들한테 보여줍니다. 아이들은 꾸준히 새 종이인형을 다시 오리고, 나이가 드는 동안(한 살 두 살 더 먹는 동안) 아이들이 오리는 종이인형은 한결 거듭납니다. 두꺼운종이로 된 과자상자라든지 골판종이는 모두 종이인형을 오릴 밑종이가 돼요. 값비싸게 장만해야 하는 인형이나 장난감으로는 동무를 참답게 사귈 수 없다는 대목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동무를 참답게 사귀는 길은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마음이 될 때입니다. 살가운 마음이 깃든 장난감으로, 또 살가운 마음이 흐르는 손길로 서로 마주할 수 있기를 빌어요. 4349.2.4.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