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
아주 부자인 사람을 한때 ‘백만장자’라는 이름으로 가리켰는데, 어느덧 ‘천만장자’라는 이름이 생기고, ‘억만장자’라느니 ‘조만장자’라느니 하는 이름이 생겨요. 앞으로는 숫자를 더 붙이는 이름이 새롭게 생길 수 있어요. 그런데, 쓰고 쓰고 또 쓰고 더 쓰고 다시 써도 줄어들지 않는 보물단지를 가리켜 ‘화수분’이라고 해요. 화수분이란 이름은 중국에서 왔을 수 있는데, “돈이 샘솟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돈샘그릇’이나 “보물이 샘솟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보물샘그릇’이라고 할 만해요. 보물이 샘솟아서 ‘보물샘’이라면, 꿈이 샘솟는 ‘꿈샘’이라든지 사랑이 샘솟는 ‘사랑샘’이라든지 기쁨이 샘솟는 ‘기쁨샘’도 있겠지요. 쉬지 않고 글을 쓰는 동무가 있으면 “넌 ‘글샘그릇’이네.” 하고 말할 만하고, 한결같이 신나게 노래하는 동무가 있으면 “너는 ‘노래샘그릇’이네.” 하고 말할 만해요. 자꾸자꾸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무는 ‘이야기샘그릇’이고, 언제나 즐겁게 웃는 동무는 ‘웃음샘그릇’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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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날
‘식구’하고 ‘가족’은 어떻게 다를까요? ‘혼인’하고 ‘결혼’은 어떻게 다를까요? 네 낱말은 모두 한자말이지만, ‘식구·혼인’은 한겨레가 꽤 오랜 옛날부터 쓰던 낱말이고, ‘가족·결혼’은 이 나라가 이웃나라한테 식민지가 되어야 하던 때에 일본에서 들어온 낱말이에요. 요즈음은 영어도 아주 널리 쓰는 흐름이 되었기에 한국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딱히 가리지 않는다고 할 만한데, 두 어른이 짝을 지어서 한집을 이루려고 할 적에는 ‘혼인신고’를 해요. 두 어른이 혼인을 하면서 하는 잔치는 ‘혼인잔치(혼례잔치)’라 하지요. 그런데 ‘혼인신고’를 해서 함께 살면서 요즈음 어른들이 기리는 날은 ‘혼인기념일’이 아닌 ‘결혼기념일’이에요. “혼인을 기리는 날”이라는 뜻으로 ‘혼인날·혼인기림날’처럼 쓰지 못해요. 한글이 태어난 날을 기릴 적에 ‘한글날’이라 하듯이, 어른들이 혼인을 기리는 날도 ‘혼인날’이라 하면 잘 어울리리라 생각해요. ‘식구·가족’이라는 한자말도 있지만, 이런 말이 있기 앞서는 ‘한집·한집안’ 같은 말을 썼어요. “한집 사람”이라고도 하지요. “한집 사람”은 ‘한솥밥’을 먹는 사이요, ‘한솥밥지기’나 ‘한솥밥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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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말’을 새롭게 가르쳐요. ‘읽기’랑 ‘쓰기’랑 ‘듣기’랑 ‘말하기’를 알맞게 갈라서 가르쳐요. ‘말’을 배우려면 언제나 이 네 가지를 골고루 살피고 헤아려야 하지요. 눈으로 읽고, 손으로 쓰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말하지요. 그리고 ‘읽고 쓰고 듣고 말하고’ 하는 동안 가슴(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해요. 온몸으로 말을 느끼고, 온마음으로 말을 헤아린다고 할 만해요. ‘읽기’는 ‘글읽기·책읽기’를 비롯해서 ‘그림읽기·영화읽기’로 나아가고, ‘사람읽기·사랑읽기·삶읽기’를 할 만하며, ‘사회읽기·문화읽기’까지 갈 수 있어요. ‘쓰기’는 ‘글쓰기’를 비롯해서 ‘책쓰기’도 할 만하고 ‘마음쓰기’나 ‘생각쓰기’도 할 만합니다. ‘듣기’를 할 적에는 가만히 듣다가 ‘귀여겨듣기’를 하지요. ‘말하기’는 내 뜻과 마음을 찬찬히 가누고 살펴서 알맞고 슬기로우면서 의젓하게 생각을 갈무리해서 들려주는 몸짓이 되어요. 읽기를 찬찬히 익히고 나면, ‘하늘읽기’나 ‘바다읽기’도 해요. ‘날씨읽기’나 ‘꿈읽기’도 하지요. ‘꽃읽기’나 ‘마음읽기’나 ‘생각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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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겹살
사이좋은 동무가 넷이면 이 넷을 아울러 ‘네동무’가 됩니다. 사이좋은 동무가 다섯이면 이 다섯을 아울러 ‘다섯동무’가 돼요. 동무는 ‘열동무’나 ‘스무동무’도 되고, ‘일곱동무’나 ‘두동무’나 ‘세동무’도 되어요. 고깃집에 가 보면 흔히 ‘삼겹살’을 파는데, 삼겹살은 “세 겹인 살”을 가리켜요. 그러니까 ‘세겹살’이라 하면 될 고기인데 ‘세(셋)’가 아닌 ‘삼(三)’이라는 한자를 넣은 셈이에요. 여럿으로 포갠 것을 셀 적에 ‘겹’을 써요. “한 겹·두 겹·세 겹·네 겹”처럼 쓰지요. “일 겹·이 겹·삼 겹·사 겹”처럼 쓰면 어딘가 안 어울려요. 한자인 숫자말 ‘일·이·삼·사’를 넣으려 할 적에는 똑같이 한자인 ‘중(重)’을 넣어서 ‘일중·이중·삼중·사중’처럼 써야 어울립니다. 그래서 ‘삼중주’라면 “세 악기 연주”인 “세 겹 연주”나 “세 가락 연주”인 셈이고, ‘사중창’이라면 “네 사람 합창”인 “네 사람 노래”나 “네 가락 노래”인 셈이에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