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 시공주니어 문고 1단계 29
베아트리스 퐁타넬 지음, 마르크 부타방 그림, 이정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33



말을 더듬어서 놀림감이 된 적 있니?

―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

 베아트리스 퐁타넬 글

 마르크 부타방 그림

 이정주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2008.5.30. 5500원



  베아트리스 퐁타넬 님이 글을 쓰고, 마르크 부타방 님이 그림을 그린 어린이문학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시공주니어,2008)를 읽는데 가슴이 짠합니다. 마치 내 어린 나날에 겪은 모습이 나오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말더듬이로 어린 나날을 보낸 어른이라면,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 같은 어린이문학을 읽기는 수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더듬이 모습을 말끔히 털었기에 새삼스레 이러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요.



누가 녀석을 ‘어버버’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좋은 말은 아니지만, 녀석한테는 잘 어울렸지요. 녀석도 아무 대꾸를 못했어요. 솔직히 그 말은 금방 입에 붙었어요. 우리는 화장실 문을 쾅쾅 차며 장난쳤지요. “경찰이다! 빨리 문 열어! 안에 누가 있냐?” “나 어버버야. 얘들아, 다다다른 데로 가 줘…….” 글쎄, 녀석도 이렇게 대답했지 뭐예요. (12쪽)



  어린이문학에 나오는 말더듬이 아이는 동무들한테서 놀림을 받습니다. 동무들은 이 아이가 쉬를 하러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 문을 발로 쾅쾅 차면서 놀려요. 이렇게 놀리는 짓을 하는데 말리는 아이가 딱히 없습니다. 게다가 말더듬이 아이가 ‘말더듬질’을 하지 않으려고 ‘낱말을 바꾸어서 말하’면 담임 교사는 버럭 부아를 내요. 이 아이더러 왜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여러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나무라고는 교장실로 보내기도 해요.


  말더듬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동무들뿐 아니라 담임 교사마저 이러하다면, 이 아이는 학교에 오기가 얼마나 싫을까요? 마치 학교를 끔찍한 불구덩이로 여기지 않을까요?


  동무들 사이에서는 늘 놀림감이 되는데다가, 담임 교사는 아이를 제대로 바라보아 주지 못하니 더없이 괴로울 텐데, 이 아이는 앞으로 학교를 모두 마칠 때까지 늘 놀림감으로 살아야 할까요? 나중에 사회에서도 똑같이 놀림감이 되어야 할까요?


  놀림감이 되어 보지 못한 사람은 놀림감으로 지내는 나날이 얼마나 끔찍한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놀림쟁이 짓을 하는 아이들은 여린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이 찢어지거나 힘든가를 알아채기 어렵지요. 놀림쟁이 아이들이 여린 아이들 마음을 안다면 함부로 괴롭히지 않아요. 슬프고 괴롭고 아픈 아이들 마음을 조금이라도 엿본다면 섣불리 따돌리거나 못살게 굴지 않아요.



“너도 귀머거리가 아니니까 알지. 내가 다다, 바바, 보보, 그그그런 바바발음을 잘 못하잖아. 내 이름을 말할 때마다 웃음거리가 되는 게 싫어. 정말 싫어. 끄끔찍해!” (20쪽)



  말을 더듬는 아이한테는 ‘말을 더듬는 목소리’를 ‘말을 안 더듬는 목소리’하고 똑같이 여기는 동무나 이웃이 있어야 합니다. 이 아이가 주눅이 들지 않도록 따사로이 바라보면서 마주해 줄 수 있는 동무하고 이웃이 있어야 해요.


  ‘발음 교정 교육’으로는 말더듬질을 바로잡지 못합니다. 말더듬질은 ‘바로잡아야’ 하는 ‘잘못된 목소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몸짓이나 모습이나 숨결 가운데 하나예요. 누군가는 다리를 절 수 있고, 누군가는 눈이 나빠서 안경을 낄 수 있고, 누군가는 귀가 잘 안 들릴 수 있고, 누군가는 말을 더듬을 수 있어요. 웅변을 배우거나 합창 연습을 하면서 말더듬질을 찬찬히 고칠 수 있기도 하지만 꽤 오래 걸리기 일쑤예요. 말을 좀 더듬었대서 함부로 놀리거나 섣불리 웃지 않는 포근하고 살가운 터전이 있어야 하지요.



“저 안 뛰어내려요! 다들 무슨 생각하는 거예요? 그냥 혼자 있고 싶어요! 저 좀 내버려 두세요! 다들 할 일이 그렇게 없어요?” 진짜 말도 안 돼요. 어버버는 말을 전혀 더듬지 않았어요. (39쪽)



  어린이문학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는 퍽 짧게 이야기를 끊습니다. 어느 모로 보면 너무 갑작스레 ‘말더듬이 아이를 괴롭히던 동무들이 괴롭힘질을 멈추’는 모습이 나오는구나 싶습니다. 말더듬이 아이한테 아버지가 없다는 대목을 아이들이 알고, 말더듬이 아이가 학교 지붕에 올라가서 ‘혼자 있고 싶다!’고 소리를 지른 뒤에, 갑자기 ‘괴롭힘질·따돌림질’이 사라져요.


  아이들 사이에서는 아주 작은 일 하나로도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말 이렇게 동무들이 하루아침에 따돌림이나 괴롬힙을 멈출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바탕이 나쁘지 않았을 동무들’이라 할 테니까, 괴롭힘질이나 따돌림질을 스스로 부끄러이 여겨서 뚝 그칠 수 있어요.


  아무래도 어린이책이기에 말더듬이 아이가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까지는 차마 안 그렸을 수 있지요. 다만, 어린이한테 ‘말을 더듬는 동무를 괴롭히지 말고 아끼자’고 하는 줄거리를 들려주려고 한다면, 한 발짝 더 다가서면서 손을 내미는 얼거리를 보여주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말더듬이 아이 목소리를 듣고, 말더듬이 아이가 좋아하거나 즐기거나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이야기도 담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해요.


  내 어릴 적을 떠올립니다. 내가 동무들 앞에서 말을 더듬거릴 적에 갑자기 둘레가 조용해요. 나는 이내 알아차리지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 말더듬이 듣기 싫었나? 내 말더듬이 웃긴가?’ 이때에 누구 하나라도 웃음을 터뜨리면 다 웃어 버리지만, 슬기로운 동무가 다른 쪽으로 눈길이 쏠리도록 말을 꺼내면 ‘말더듬’은 쉽게 잊고, 놀림감으로 삼지 않을 수 있어요. 그리고 내가 말을 더듬거리더라도 내 말을 듣는 아이가 차분히 내 눈만 똑바로 바라보면서 들어 주면, 다른 아이들도 웃지 않고 가만히 ‘말더듬이 목소리’를 들어 주면서 상냥한 흐름으로 바뀝니다.


  어린이문학 《말더듬이 내 친구, 어버버》에서는 이런 이야기나 실마리나 모습이 잘 나타나지 않아요. 그래도 “그날 뒤로 어버버는 말을 덜 더듬었어요. 어버버의 말투에 익숙해져서 그렇게 느끼는지도 모르겠어요(41쪽).” 하고 나와요. 짧은 한 마디로 슬그머니 넘어가는 셈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익숙하게 받아들이기’를 해 주기만 해도 말더듬이 아이는 씩씩하게 기운을 찾을 수 있습니다. 4349.2.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어린이문학 비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