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 깨지고 까여도 출사는 계속된다, 박찬원의 열혈 사진 공부 이야기
박찬원 지음 / 고려원북스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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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106



‘죽고 까무라칠’ 다짐으로 사진을 배우는 할배

―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박찬원 글·사진

 고려원북스 펴냄, 2016.1.5. 15000원



  무엇이든 배운다고 할 적에는 ‘새로움’을 배웁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영어를 배우든, 사내가 부엌일이나 뜨개질을 배우든, 나이 마흔 줄에 자전거를 처음으로 배우든, 나이 쉰이나 예순에 처음으로 운전면허를 따려고 배우든, 예순을 지나고 일흔이 되는 나이에 그림이나 사진을 배우든, 배우는 사람은 늘 ‘새로움’을 느끼려고 이 길을 걸어요.



“도대체 뭘 하는 거여? 아직도 찍을 게 남았어?” 나를 볼 때마다 한결같이 하는 단골 멘트다.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었을 것이다. 염전에 뭐 찍을 게 있다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그것도 몇 년씩이나 출근 도장을 찍느냔 말이다. (14쪽)




  1944년에 태어난 박찬원 님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신나게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며 책을 내는 ‘늦깎이 사진가’입니다. 예순다섯 언저리에 처음으로 그림(물빛그림)하고 사진을 나란히 배우고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고려원북수,2016)라는 사진책까지 선보입니다. 느즈막하다 싶은 나이에 예술대학원까지 다녔으니, 대학원에서는 거의 쉰 살까지 벌어지는 젊은이하고 함께 배운 셈입니다. 딸아들이 아니라 손주하고 함께 사진을 배웠다고 할까요.


  이 사진책을 읽으며 문득 ‘수채화가 박정희 할머니(1923∼2014)’가 떠오릅니다. 할아버지 박찬원 님하고 할머니 박정희 님은 다른 삶길을 걸었지만, 두 분은 예순이 넘은 나이에 ‘스스로 새길을 걸었다’는 대목에서 비슷합니다. 박정희 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마지막 숨을 쉬는 날까지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으셨어요.


  박찬원 님이 걸어온 길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이분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기업을 이끄는 일을 오랫동안 했다고 합니다. 그 일을 마친 뒤에는 대학교에서 석좌교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내로라하는 발자국을 남긴 셈인데, 이분이 그림이나 사진을 새로 배우려 한다면 ‘이제껏 쌓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해요.


  왜냐하면, 배움이란 ‘내려놓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려놓은 자리에 ‘채움’을 하지요. 그저 내려놓아서 비우기만 해서는 ‘명상’은 될는지 모르나 ‘배움’은 되지 않아요. 새롭게 배우려 하기에 이제껏 머릿속이나 몸에 채운 것을 모조리 뱉어냅니다. 이름값을 내려놓아야 하고, 나이를 내려놓아야 해요. 고집이 있다면 고집까지 꺾어야 하지요. 이름값이나 나이나 고집을 고스란히 붙잡는다면 아무것도 못 배워요. 그냥 ‘살아온 대로’ 앞으로 살아갈 테지요.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지도교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황한 내 표정 위로 혹평이 이어졌다. “패턴을 버리라고 했는데 똑같아요. 핀트가 안 맞는 건 사진이 아닙니다!” … 내게 화를 내준 교수가 고마웠다. 나이 많은 학생이란 이유로 마음에 안 들어도 완곡한 표현을 써 왔는데, 오늘은 정말 화가 많이 났던지, 아니면 작심하고 야단을 칠 각오를 했던 것 같다. (16쪽)



  박찬원 님은 대학원에서 사진을 배울 적에 어느 날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 하고 나무라는 말을 듣습니다. 큰 꾸중을 들어요. 아무래도 옛날 버릇을 말끔히 털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느낍니다. 버릇을 버리고 새로운 매무새가 되어야 ‘배울’ 수 있는데, ‘배우겠다면서 대학원까지 들어온 사람’이 낡은 틀을 단단히 붙잡은 채 제자리걸음이나 뒷걸음을 치니까, 지도교수로서는 더는 봐줄 수 없었을 테지요. 아무리 할아버지 나이인 분이라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따끔하게 나무랄 노릇입니다.


  배우는 자리에 서면 우리는 모두 똑같습니다. 배우는 자리에서는 대통령이나 시장이나 군수가 따로 없습니다. 배우는 자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똑같이 ‘배움이(학생)’입니다. 배우려고 한다면, 흔한 말로 ‘계급장·훈장·밥그릇·가방끈·은행계좌·얼굴값’을 버려야 할 뿐 아니라, ‘이제껏 배워서 익힌 지식’마저 모두 내다 버려야 합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교사가 굽신굽신하면서 높임말을 써 가며 가르쳐야 하지 않아요. 대통령도 배움자리에 서는 배움이가 되려 한다면 교사한테 높임말을 쓰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고개숙여서 새롭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리하여, 박찬원 님은 “패턴을 버리라고 했는데 똑같아요!” 같은 말을 들어요. 사진학과 지도교수는 ‘패턴’이라는 영어를 씁니다만, 이 영어는 한국말로 하자면 ‘버릇’입니다. 오랫동안 몸에 길든 몸짓이 바로 버릇입니다. ‘길든 몸짓’을 버리고 ‘새 몸짓’이 되어야 새롭게 사진을 찍을 텐데, 길든 몸짓 그대로 제자리걸음에 머무니까 ‘길든 사진’만 찍을밖에 없어요. ‘길든 사진’이란 ‘낡은 사진’이요 ‘틀에 박힌 사진’이며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을 흉내내는 사진’이에요.


  다만, 지도교수는 “핀트가 안 맞는 건 사진이 아닙니다!” 하고 외쳤습니다만, ‘초점(핀트)’이 어긋나도 사진은 사진입니다. 왜냐하면, 초점이 안 맞아도 눈빛하고 이야기가 살아서 숨쉬면 사진이기 때문입니다. 초점이 잘 맞아도 눈빛이 흐리거나 이야기가 없으면 사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진에서 우리가 깊이 바라보면서 헤아릴 대목은 바로 ‘눈빛’이요 ‘마음’이며 ‘생각’이고 ‘이야기’입니다. 삶을 사랑할 줄 아는 몸짓이 되어야 비로소 새롭게 사진 한 장을 찍을 수 있어요.




물 위에서 익어가고 있는 소금 알들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 같았다. 나도 모르게 ‘그래, 나비는 죽은 것이 아니라 먼 하늘로 여행을 가고 있는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19쪽)


사진을 하면서 외모도 많이 달라졌다. 정확하게는 대학원을 다니면서부터다. 외모가 프리 스타일로 변하니, 마음도 따라 편하고 자유롭다 … 내가 운동화를 신기 시작하자 딸이 스니커즈를 선물했다. 식사 자리에서 지도교수는 내 신발이 바뀐 것을 눈치채고 패션도 바꿔 보라고 조언했다. 평생 처음으로 청바지를 샀다. (32∼33쪽)



  박찬원 님은 ‘전문(프로) 사진가’로 살아 보겠노라는 꿈을 일흔 가까운 나이에 품고서 사진을 처음으로 배우면서 ‘소금밭(염전)’을 이녁 사진감(사진 주제)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금밭이라는 곳을 적어도 백 차례는 찾아가서 들여다보고 사진으로 찍어 보겠노라 하고 다짐을 했다고 해요.


  날마다 소금밭을 찾아가지는 못했어도 아흔 몇 차례째 소금밭에 찾아갔다고 하는데, 백 차례 가까이 소금밭 나들이를 할 무렵 ‘소금밭 이야기’로 사진 전시회를 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숫자로 100에 이르지는 않았으나 그동안 소금밭에 들인 땀방울로 길어올린 사진을 지켜본 둘레 사람들이 ‘소금밭 이야기 사진잔치’를 열어도 넉넉하겠다고 말해 주었다고 해요.


  숫자 100은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숫자 10이나 1000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한 가지 주제로 열 장을 찍거나 백 장을 찍거나 천 장을 찍거나 하나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만 장이나 십만 장쯤 찍어 보아야 사진을 알 수 있지는 않아요.


  사진을 알려면 처음부터 ‘사진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사진을 배워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품을 때에 비로소 사진을 배워서 알지요.


  이리하여, 사진을 배워서 알려는 사람은 사진을 한 장 찍으면 ‘한 장 찍은 만큼 압’니다. 열 장을 찍으면 ‘열 장 찍은 만큼 알’아요. 백 장이나 천 장을 찍으면 ‘백 장 찍은 만큼’이나 ‘천 장 찍은 만큼’ 알기 마련이에요.




“왜 아마추어 때 찍은 사진이 더 좋은가요?”라고 물어보았다. “대학원에 들어와 찍은 사진들엔 힘이 들어가 있어요. 억지로 찍은 것 같아요.” (57쪽)


단체 관광을 가더라도 미술관을 갈 때는 혼자서 다닌다 … 작품 감상이란 나와 대화하는 시간이다. (77쪽)



  사진을 쉰 해쯤 찍은 분이 사진을 더 많이 잘 알지는 않습니다. 그저 ‘쉰 해 동안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을’ 뿐입니다. 사진을 다섯 해쯤 찍은 분이 사진을 더 적게 알지는 않습니다. 그저 ‘다섯 해 동안 사진을 찍은 경험이 있을’ 뿐이에요.


  대학교를 다녔기에 사진을 더 잘 알지 않습니다. 대학원을 다녔거나 유학을 다녔기에 사진을 더 깊거나 넓게 알지 않습니다. 그저 ‘대학교 사진’하고 ‘대학원 사진’하고 ‘유학 사진’을 마주하고 배웠을 뿐이지요. 그런 경험을 그동안 쌓았을 뿐입니다.


  아이를 낳아서 키울 적에 ‘육아 강의’를 들어야 아이를 잘 낳거나 슬기롭게 키우지 않습니다. 모든 어버이는 저마다 다른 살림을 꾸리면서 다른 사랑으로 아이를 보살펴요. 이러한 얼거리처럼, 사진을 배워서 찍을 적에도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길을 걸으면서 저마다 다른 눈길·눈빛·눈높이·눈매·눈짓·눈썰미에 따라서 사진을 받아들이고 찍습니다.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를 읽으면, “대학원에 들어와 찍은 사진들엔 힘이 들어가 있어요. 억지로 찍은 것 같아요.”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요. 힘이 들어간 사진은 ‘힘이 들어간’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억지로 찍은 사진은 ‘억지로 찍은’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담아 찍은 사진은 ‘사랑스러움’을 숨기지 못해요. 웃고 노래하는 기쁨으로 찍은 사진은 ‘웃음·노래·기쁨’이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나요.




사진을 하면 눈이 좋아진다 …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환해졌다. 매일 출퇴근길에서 보던 나무, 꽃, 도로, 자동차, 건물인데 그것들이 새롭게 보였다 … 벚꽃, 개나리, 철쭉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와 저녁에 지는 노을이 그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몰랐다. (120쪽)


사진을 하면서 얼굴이 두꺼워졌다. 욕을 먹어도 아무렇지가 않다. 욕을 하던 분들도 다음에 만나면 수그러든다. 사진을 하려면 우선 사람과 친해져야 하고 그들 세계에 들어가야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끈기가 생긴 것이다. 염전은 다시 인간을 배우게 해 주었다. (145쪽)



  새롭게 배우는 길을 걷기에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사내(아버지) 자리에 서는 이들이 기저귀 갈기라든지 집안일을 잘 안 합니다만, 아이키우기나 집안일을 즐겁게 맞아들여서 새롭게 배우려 한다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새로움’에 눈뜰 수 있어요. 새로움에 눈을 뜨면, 집안일만 하는 분들, 이를테면 가정주부도 사진기를 손에 쥘 적에 ‘새로운 사진’을 찍어요.


  외국으로 나간다든지, 출사여행을 한다든지, 낯선 마을을 걷는다든지 해야 ‘새로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마음과 몸짓과 생각이 새로움으로 가득할 때에 비로소 ‘새로운 사진’을 찍어요. 마음과 몸짓과 생각이 새로움이 아닌 ‘낡은 버릇’이라면, 외국으로 나가거나 출사여행을 하거나 낯선 마을을 걷더라도 늘 똑같이 ‘낡은 버릇(똑같은 패턴)’대로 사진을 만들어 내고 말아요.


  그러니, 사진을 찍을 적에는 더 값진 장비가 있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렌즈를 골고루 갖추지 않아도 됩니다. 사진을 찍을 적에는 대형필름이나 중형필름을 구태여 써야 하지 않습니다. 나 스스로 어떤 ‘새로운 마음’이요 ‘새로운 눈길’이며 ‘새로운 생각’을 건사하거나 다스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지으려 하는가를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렌즈 하나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잘 찍는 사진가가 있습니다. 낡고 작으며 값싼 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사진을 즐겁게 찍는 사진가가 있어요. 사진은 마음으로 찍어서 마음에 새깁니다. 마음으로 먼저 찍지 않는다면 사진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에 먼저 새기지 않으면 ‘필름이나 메모리카드나 종이’에 새로운 숨결을 사진으로 새기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나는 손주들 사진 찍어 주려고 사진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100일 사진은 직접 찍기로 했다. 간단한 조명을 설치하고 배경을 만들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217쪽)



  사진책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를 읽는 동안 ‘할아버지 사진가’ 모습이 자꾸 떠오르면서 즐겁습니다. 박찬원 님은 할아버지 나이로 사진가 길을 걷겠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것을 가볍게 내려놓겠다고 하면서 사진을 배웁니다. 다만, 사진을 배우는 동안 아직 다 가벼이 내려놓지는 못한 탓에 ‘젊은(그렇지만 많이 젊다고는 할 수 없는) 교수’한테서 꾸지람을 듣기도 하는데, 이런 꾸지람을 달게 받아들이면서 씩씩합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죽기살기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사진을 배운다고 할까요.


  왜 그러한가 하면, 낡은 버릇을 ‘죽여야’ 새로운 몸짓이 ‘태어나’거든요. 사진을 새롭게 찍으려면 오래되어 낡은 틀을 스스로 ‘죽이’듯이 ‘깨서 부수어’야 해요. 스스로 새로운 마음을 끌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박찬원 님은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청바지를 장만하는 일’을 겪습니다. 흰머리를 ‘처음으로 그대로 두기’로 합니다. 흰머리를 까맣게 물들이지 않기로 합니다. 청바지에 운동화를 차려입고서, 흰머리를 그대로 나풀거리면서, 어깨에는 사진기를 걸고서 활짝 웃는 몸짓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길을 나섭니다.


  아마 이런 삶은 박찬원 님으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 되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처음으로 느즈막하게 겪으면서 새로운 바람을 마셨으리라 느낍니다. 바야흐로 ‘남 눈치를 안 보는’ 몸짓이 된다고 할까요. 남 눈치가 아니라 ‘내 눈길을 생각하는’ 몸짓으로 거듭난다고 할까요.


  사진을 찍을 적에는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이는가’를 따질 까닭이 없습니다. ‘사진에 얹히는 빛과 그림과 그림자와 이야기’가 내 마음속에 눈부시게 피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박찬원 님이 양복을 벗고 염색을 그만두면서 청바지와 운동화와 흰머리인 모습을 꾸밈없이 받아들이면서, 시나브로 새로운 눈길로 씩씩하게 서는 사진길이 펼쳐집니다.



자기가 잘 찍었다고 생각되는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 놓으면 그것이 작품이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 든다 … 일 년 동안 찍은 가족사진을 모아 탁상용 캘린더를 만들어도 좋다. 항상 흐뭇한 추억과 함께 할 수 있다. (153쪽)



  할아버지가 손주를 찍는 사진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할아버지가 흰머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골목을 걷고 소금밭을 걷고 숲을 걷고 시내를 걷고 시골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얼마나 예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진감(사진 주제)은 남달라야 하지 않습니다. 남다른 것을 찾아내려 한다면 ‘남다른 것’은 되더라도 ‘새로운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늘 곁에 있는 가장 흔하고 수수한 것이어도 스스로 새로운 눈길이 될 적에 ‘새로운 사진’을 찍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진책 《사진하는 태도가 틀렸어요》는 바로 이 대목을 즐겁게 건드려 줍니다.


  일흔 넘고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사진가로 거듭나려고 하는 몸짓은 ‘사진 역사에 이름을 남기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버릇을 버리고, 새로운 몸과 마음으로 거듭나서 신나게 새로운 삶·살림·사랑을 가꾸는 ‘새로운 사람’이 되려는 뜻이지 싶습니다. ‘할아버지 사진가’가 앞으로 선보일 새로운 사진과 사진책을 즐겁게 기다려 봅니다. 4349.1.31.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책 읽는 줄거움/사진비평)


(이 글에 넣은 사진은 박찬원 님한테서 받아서 올립니다. 사진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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