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꽃


  별꽃이랑 코딱지나물꽃이랑 봄까지꽃은 이월을 밝히는 눈부신 꽃입니다. 앉은뱅이 봄꽃 세 가지는 마당이며 논둑이며 들판을 덮습니다. 냉이꽃이랑 꽃다지꽃이랑 꽃마리꽃도 앉은뱅이 봄꽃 둘레에서 나란히 앉아서 한들한들 어깨동무를 합니다. 숲에서는 할미꽃이랑 복수초랑 현호색이 곱게 고개를 내밉니다. 삼월로 접어들 무렵에는 참달래(진달래)가 하나둘 기지개를 켜고, 유채꽃하고 갓꽃이 피기도 하고, 닥나무꽃이랑 매화나무꽃이랑 수유나무꽃이 해맑게 흐드러집니다. 삼월에 피어나며 눈부신 꽃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동백꽃은 삼월꽃일까요, 이월꽃일까요? 제비꽃도 삼월에 방긋방긋 고개를 내미니 삼월꽃이라 할 테지요. 그런데 제비꽃은 삼월뿐 아니라 사월에도, 때로는 이월이나 일월에도 피어요. 그러면 제비꽃은 ‘어느 달 꽃(몇 월꽃)’이 될까요? 사월에는 사월을 빛내는 하얀 딸기꽃이 피고, 딸기꽃에 앞서 앵두꽃이 곱습니다. 요즈음은 앵두꽃이나 딸기꽃을 누리는 사람은 드물고 으레 벚꽃만 누리는데, 달마다 이 꽃하고 저 꽃을 즐기면서 꽃한테 이름을 하나씩 새롭게 붙여 봅니다. 너희는 삼월꽃이로구나, 너희는 이월에도 피고 사월에도 피니 삼월꽃이면서 이월꽃이요 사월꽃이로구나, 너희는 사월에 흐드러지지만 삼월부터 피어나니 사월꽃이면서 삼월꽃이로구나, ……. 봄꽃이고 봄맞이꽃이며 삼월꽃입니다. 봄내음꽃이고 봄바람꽃이며 봄빛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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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전거


  아이는 어른하고 함께 서면 키도 몸집도 작아요. 아직 작기에 아이요, 앞으로 무럭무럭 자랄 꿈이 있으니 아이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숨결인 아이를 가리켜 ‘작은이’라 할 수 있어요. 그저 작으니까 ‘작은이’입니다. 그러면 어른은 ‘큰이’라 해 볼 수 있을까요? 몸집만 놓고 본다면 ‘작은이·큰이’처럼 부를 만합니다. 어른은 아이를 낳은 뒤 어린이를 바라보며 ‘큰아이·작은아이’처럼 부르기도 해요. 처음에 낳은 아이는 언니가 되면서 큰아이 자리에 서고, 나중에 낳은 아이는 동생이 되면서 작은아이 자리에 서지요. 어른하고 대면 몸이 작은 어린이는 어른처럼 커다란 자전거를 타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지요. 그런데 어른 가운데에도 자그마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있어요. 어른이라고 해서 굳이 커다란 자전거만 타야 하지 않거든요. 작고 가벼우면서 예쁜 자전거를 어른도 얼마든지 탈 만합니다. 자, 그러면 어른도 아이도 즐겁게 타는 자그마한 자전거 이름은 무엇일까요? 네, 바로 ‘작은자전거’입니다. 우리가 자전거로 산을 타면 ‘산자전거’가 되고, 바퀴 하나인 자전거는 ‘외발자전거’가 되며, 짐을 실어 ‘짐자전거’가 되고, 이밖에 ‘놀이자전거’나 ‘여행자전거’나 ‘씽씽자전거’나 ‘눕는자전거’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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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짝마실


  공원이나 놀이터로 놀러 갑니다. 혼자서 놀러 가서는 동무를 만나기도 하고, 어머니나 아버지 손을 잡고 놀러 가기도 하며, 집에서 키우는 귀염짐승인 개를 데리고 놀러 가기도 해요. 마을 한 바퀴를 빙글 도는 나들이를 가기도 하는데, 가까운 이웃한테 놀러 가는 일을 가리켜 ‘마을’이나 ‘마실’이라고도 해요. 여러 집이 모인 곳을 ‘마을’이라고도 하니, 같은 낱말을 놓고 두 가지로 쓰는 셈이에요. 공원에 가는 길이라면 ‘공원마실’이 돼요. 바다에 가는 ‘바다마실’이 있고, 들에 가는 ‘들마실’이나, 숲에 가는 ‘숲마실’이나, 산에 가는 ‘산마실’이 있어요.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면 ‘극장마실’이나 ‘영화마실’이고, 책방에 가면 ‘책방마실’이요, 도서관에 가면 ‘도서관마실’이지요. 자전거를 타고 떠나서 ‘자전거마실’이 되고, 두 다리로 걸어서 ‘걷기마실’이 됩니다. 골짜기에 가서 여름을 시원하게 누리고 싶으면 ‘골짝마실’이에요. ‘냇가마실’이나 ‘섬마실’도 재미있습니다. 도시에서는 ‘시골마실’을 갈 테고, 시골에서는 ‘도시마실’을 갈 테지요.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마실’을 간다면,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마실’을 갑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꿈나라로 갈 적에는 ‘꿈마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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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바람


  혼자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있어야 나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혼자서 하는 말이라면 혼잣말입니다. 말은 다른 사람이 없어도 읊을 수 있으나,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둘레에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말’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하고, ‘글’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쓰지만, ‘이야기’가 되려면 적어도 두 사람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여럿이 모여서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면 ‘이야기꽃’이 핀다고 해요. 서로서로 재미나게 ‘이야기보따리’를 푼다고 하지요. ‘이야기밥’을 먹는 어린이는 슬기롭게 자라고요, ‘이야기잔치’를 벌이면 다 같이 웃고 노래하면서 ‘이야기마당’이 벌어지는 셈이에요. 이야기는 바다처럼 너르거나 바람처럼 싱그러울 수 있어요. ‘이야기바다’가 되고 ‘이야기바람’이 되지요. ‘이야기밭’이나 ‘이야기나무’는 어떤 느낌일까요? ‘이야기별’이나 ‘이야기나라’나 ‘이야기숲’이라면, 또 ‘이야기빛’이나 ‘이야기동무’나 ‘이야기사랑’이라면 어떤 뜻이 깃들까요? 서로서로 마음을 기울이면서 사이좋게 ‘이야기집’을 가꿉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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