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누구셔요
“똑똑, 누구십니까. 꼬마입니다.” 하고 첫머리를 여는 어린이노래를 우리 집 아이들하고 함께 부릅니다. 이 노래를 듣고 부르는 아이들은 누구나 방문을 열기 앞서 ‘똑똑’ 두들긴 다음 안쪽에서 “누구셔요?” 하고 묻는 소리를 기다리겠지요. 아이가 방에 있을 적에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들긴다면, 아이는 문 바깥에 대고 “누구셔요?” 하고 물을 테고요. 문을 똑똑 두들기면서 안에 있느냐 하고 물으니 ‘똑똑질’입니다. 영어로는 ‘노크’라고 하지요. 문을 두들길 적에는 한 번만 ‘똑’ 하고 두들길 수 있어서, 한 번만 두들기는 손짓은 ‘똑질’이라 할 만하고, ‘똑똑똑’ 하고 세 번 두들긴다면 ‘똑똑똑질’이라 할 만해요. 그런데 문을 쾅쾅 두들기거나 쿵쿵 찰 수 있어요. 좀 거친 몸짓일 텐데, 이때에는 ‘쾅쾅질’이나 ‘쿵쿵질’이에요. 수박이 잘 익었나 하고 통통 두들기면 ‘통통질’일 테고, 가볍게 콩콩 뜀뛰기를 하는 모습은 ‘콩콩질’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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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모든 것에는 빛이 있어요. 아는가요? 또는 느끼는가요? 빛이 없는 것은 없어요. 흔히 밤이 캄캄하다고, 아주 어둡다고, 어두워서 빛이 하나도 없다고 하지요? 그렇지만 밤에는 ‘밤빛’이 있어요. 그리고 이 밤빛을 ‘검정’으로 나타내지요. 아무 빛이 없는 밤이 아니라 검정이라고 하는 빛이 있는 밤이에요. 그림자에도 ‘그림자빛’이 있어요. 꽃만 ‘꽃빛’이 아니라, 풀은 ‘풀빛’이고, 나무는 ‘나무빛’이에요. 물은 ‘물빛’이고, 흙은 ‘흙빛’이지요. 노루는 ‘노루빛’이고, 토끼는 ‘토끼빛’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사람빛’이 있다고 할 만합니다. 어떤 사람은 밝은 사람빛으로 사랑을 나누고, 어떤 사람은 어두운 사람빛으로 슬픔에 잠겨요. 어떤 사람은 환한 사람빛이지만 좀처럼 못 웃고, 어떤 사람은 캄캄한 사람빛이지만 마음에 꿈을 심으면서 씩씩하게 살아요. 자, 둘레를 가만히 살펴보아요. ‘구름빛’을 보고, ‘바람빛’을 느껴요. ‘햇빛’처럼 ‘별빛’하고 ‘눈빛’하고 ‘비빛’도 느껴요. ‘이슬빛’하고 ‘노을빛’을 느껴 볼까요. 냇물을 보며 ‘냇빛’을 느끼고, 샘터에서 ‘샘빛’을 느껴요. 밥 한 그릇에서 ‘밥빛’을 느끼고, 살림을 가꾸는 어버이한테서 ‘살림빛’을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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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가수찾기
노래를 좋아하는 여러 사람이 얼굴을 숨긴 채 오직 목소리만 들려주면서 사람을 찾도록 하는 방송 ‘히든 싱어’가 있습니다. ‘히든 싱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을 적에 무슨 말인가 하고 알쏭달쏭했는데, 이 방송을 얼핏 들여다보니 사회를 맡은 이가 “숨은 가수 찾기, 히든 싱어입니다!” 하고 말합니다. 어, 그래, 그렇구나, ‘히든 싱어’란 ‘숨은가수찾기’로구나 하고 뒤늦게 알아차렸어요.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재미나게 즐기는 놀이로 ‘숨은그림찾기’가 있어요. ‘숨은가수찾기’는 ‘숨은 + (무엇) + 찾기’ 꼴로 재미나게 지은 이름이에요. 그러고 보면, 얼굴을 가린 채 손이나 발만 내밀며 ‘숨은엄마찾기’ 놀이를 할 수 있어요. 책에 나오는 몇 줄만 적어 보여주면서 ‘숨은책찾기’ 놀이를 할 수 있습니다. ‘숨은돈찾기’라든지 ‘숨은보물찾기’라든지 ‘숨은아이찾기’를 해 볼 만하고, 동무네 집을 찾아가면서 자꾸 길을 잃고 헤맨다면 마치 ‘숨은집찾기’를 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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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지기, 곁님
말뜻으로만 본다면 ‘옆’이나 ‘곁’은 같은 낱말이라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옆에 빈자리 있나요?” 하고 물을 뿐, “곁에 빈자리 있나요?” 하고 묻지 않아요. 왜 그러한가 하면, ‘곁’이라고 하는 낱말은 “가까이에서 보살펴 주거나 도와줄 만한 사람”을 가리키기도 하는 낱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옆’이 ‘곁’보다 못한 낱말이지 않아요. “네 옆에서 늘 도와줄게” 하고 들려주는 말도 “네 곁에서 늘 도와줄게” 하고 들려주는 말처럼 따사롭습니다. 뜻은 같아도 쓰임새가 살며시 다른 ‘옆·곁’이기에, 두 낱말 뒤에 새로운 말마디를 붙여 봅니다. 이를테면 ‘옆사람·옆지기’처럼 써 보고, ‘곁사람·곁님’처럼 써 봅니다. 그저 내 둘레에 있는 사람이라면 ‘옆사람’이고, 내 둘레에서 나를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옆지기’입니다. 내 둘레에서 나를 보살피거나 도와주는 사람이라면 ‘곁사람’이고,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으면서 마음으로 아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곁님’이에요.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서로 ‘곁님’이 되고, 어버이와 아이 사이도 서로 ‘곁님’이 됩니다.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