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돈


  무엇을 사고 싶다면 돈이 있어야 해요. ‘사다’는 돈을 치러서 내 것으로 삼는 일을 가리켜요. 이와 비슷하게 쓰는 ‘사들이다’는 “사서 들여오다”를 뜻하고, ‘장만하다’는 “사거나 만들어서 갖추다”를 뜻하며, ‘마련하다’는 “헤아려서 갖추다”를 뜻해요. ‘사다·사들이다’는 돈을 치러서 내 것으로 삼는 일만 나타낸다면, ‘마련하다·장만하다’는 돈을 치러서 내 것으로 삼는 일뿐 아니라 돈을 쓰지 않고도 어떤 것을 갖추는 일을 나타내요. 아무튼, 우리가 무엇을 돈을 치러서 갖추려 한다면 돈이 있어야지요. 어린이한테 돈이 없으면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돈 좀 주세요”나 “쓸 돈 좀 주세요”나 “용돈 좀 주세요” 하고 말할 테지요. 이때에 ‘용돈’은 한자 ‘용(用)’을 붙여서 ‘용돈’인데, ‘용(用)’이라는 한자는 “쓸”을 뜻해요. 그러니, ‘용돈’이란 ‘쓸돈(쓸 돈)’인 셈이랍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어린이한테 다달이 또는 주마다 어느 만큼 ‘쓸돈(쓸 돈)’을 준다면, 한 달이나 보름을 헤아리면서 살림을 잘 꾸리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살림돈’을 받아서 한 달이나 보름을 알뜰살뜰 꾸린다고 할 만해요. 이 살림돈은 알맞게 쓰임새를 찾아서 쓰는 돈이니 ‘쓰임돈’이라 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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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주머니


  “연필을 방바닥에 굴리지 말고, 다 쓴 연필은 연필주머니에 넣어야지.” ‘필통’이 무엇인지 모르는 퍽 어린 아이하고 글놀이를 하다가 문득 한마디를 했습니다. 이 한마디를 하고는 나 스스로 놀랍니다. 아이가 꽤 어려서 ‘필통’이라 안 하고 ‘연필주머니’라고 했어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라 필통을 모르지만 연필이나 주머니는 알기에 두 낱말을 더해서 ‘연필주머니’라고 해 보았는데, 아이는 잘 알아듣고, 이 말을 하는 나도 말이 부드럽게 술술 나왔어요. 학교에서는 ‘신주머니’를 쓰기도 하지요? 신을 담는 주머니이니 신주머니예요. 모래를 담으면 ‘모래주머니’이고, 콩을 담으면 ‘콩주머니’이지요. 돈을 담으면 ‘돈주머니’이고, 안경을 담으면 ‘안경주머니’요, 빗을 담으면 ‘빗주머니’예요. 인형을 담으면 ‘인형주머니’가 될 테고, 책을 담으면 ‘책주머니’가 될 테지요. 주머니에 담는 것에 따라 이름이 새롭게 붙어요. 때로는 생각을 담는 ‘생각주머니’라든지, 꿈을 담는 ‘꿈주머니’라든지, 사랑을 담는 ‘사랑주머니’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온갖 이야기가 샘솟는 동무가 있으면 어디엔가 ‘이야기주머니’가 있을는지 몰라요. 잘 웃는 동무는 ‘웃음주머니’가 있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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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터


  요즈음은 집집마다 빨래를 하는 기계를 두어요. 빨래를 하는 기계를 가리켜 ‘세탁기’라는 이름을 쓰는데, ‘빨래 기계’나 ‘빨래틀’이라 할 만해요. 요즈음은 집안에 따로 ‘빨래 기계’를 두지만, 예전에는 샘가나 냇가에서 빨래를 했어요. 빨랫바구니에 빨랫감을 담고서 옆구리에 끼고는‘빨랫방망이’를 들고서 빨래터에 가지요. 빨래터에 가면 빨래를 펼쳐서 빨랫방망이로 두들길 수 있는 빨랫돌이 있어요. 옛날에는 빨래비누가 없어도 빨랫방망이하고 빨랫돌을 써서 빨래를 했어요. 기름때를 벗겨야 할 일이 드문 옛날에는 싱그러운 냇물에 옷가지를 담가서 통통통 두들기기만 해도 빨래가 잘 되었지요. 빨래를 마친 옷가지는 바지랑대로 세운 빨랫줄에 널어서 해바라기를 시키면 햇볕하고 바람이 보송보송 말려 주지요. 가만히 생각하면 옛날에는 누구나 손발로 빨래를 했으니 빨래라면 그냥 ‘빨래’였는데, 요즈음은 빨래를 맡아 주는 기계가 있으니 ‘기계빨래’하고 ‘손빨래·발빨래’를 따로 나누어요. 행주나 걸레쯤은 으레 손빨래를 하기 마련이고, 이불이라면 발로 꾹꾹 누르는 발빨래를 하지요. 집에 빨래틀이 있어도 여름에 발로 꾹꾹 누르며 이불빨래를 해 보셔요. 무척 시원하면서 재미나고 보람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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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밥집, 밥옷집, 집밥옷


  남녘하고 북녘에서 쓰는 말이 꽤 달라서, 남녘에서는 ‘의식주’라 하고 북녘에서는 ‘식의주’라고 해요. 이런 말을 들어 봤나요? 그런데 말이지요, 남녘이나 북녘 모두 한결 쉬우면서 새롭게 말하는 길을 좀처럼 잘 뚫지 못해요. 옷을 앞세운 ‘의식주’이든, 밥을 내세운 ‘식의주’이든 어린이한테는 살갗으로 와닿기 어려운 말마디예요. 어린이하고 함께 나눌 말마디를 헤아린다면 ‘옷밥집’이라 하거나 ‘밥옷집’이라 할 적에 뜻이나 느낌이 또렷하게 드러나요. 옷밥집이라 하든 밥옷집이라 하든, 아니면 ‘집밥옷’이라 하든 크게 대수롭지는 않아요. 어느 이름을 쓰든 옷이랑 밥이랑 집, 또는 밥이랑 옷이랑 집, 또는 집이랑 밥이랑 옷이 아주 대수롭다는 뜻을 나타내요. 이 세 가지가 있어야 삶을 이루고 살림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예부터 ‘옷짓기·밥짓기·집짓기’는 무척 커다란 일일 뿐 아니라, 어버이가 아이한테 삶을 가르치거나 물려주면서 가장 마음을 기울이던 일이에요. 옷이랑 밥이랑 집을 누구나 손수 지어서 누릴 수 있도록 마음을 썼지요. 그래서 옷밥집을 손수 지을 줄 안다면 ‘삶짓기’를 할 수 있다는 뜻이요, ‘살림짓기’를 기운차게 한다는 뜻이에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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