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소년 12
시무라 타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00



내가 나를 밝히며 걷는 길

― 방랑 소년 12

 시무라 타카코 글·그림

 이상은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12.25. 5000원



  “벽장에서 나오다”를 가리키는 ‘커밍아웃’이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벽장에 스스로 갇힌 채 바깥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훌훌 털어내겠다고 하는 커밍아웃이라 할 만합니다. 영어로는 ‘커밍아웃’이나 ‘컴 아웃 오브 클로셋’이 될 테고, 한국말로는 ‘벽장열기’나 ‘빗장풀기(빗장열기)’가 될 테며, 때로는 ‘털어놓기’나 ‘나를 밝히기’나 ‘나를 말하기’가 될 테지요.


  시무라 타카코 님이 빚은 만화책 《방랑 소년》에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나이인 때부터 ‘내가 누구인가?’를 스스로 돌아보면서 ‘내가 나를 밝히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바깥에서 바라보는 눈길로 따지는 사내나 가시내가 아니라, 내가 나를 바라보면서 나한테서 느끼는 ‘숨결’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이를 씩씩하게 밝히면서 길을 걷는 아이들이 나와요.



“싫어, 애들이 놀릴 텐데.” “아무렴 어때. 어차피 이제 곧 졸업이잖아. 적당히 무시하면 돼.” (13쪽)


“둘 중 한 명이 남자래.” “뭐? 진짜? 누구?” “몰라. 둘 다 남자일지도.” “거짓말.” (20쪽)



  ‘사내스러운’ 가시내는 치마를 벗으면서 바지를 입곤 합니다. 그러면 ‘가시내스러운’ 사내는 바지를 벗으면서 치마를 입어도 될까요? 바지 입는 가시내를 놓고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은(그러나 말이 안 많다고 할 수도 없지만) 사회 얼거리라 할 수 있는데, 치마 입는 사내를 놓고는 대단히 말이 많은 사회 얼거리라 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학교에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가시내’가 있고, 학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주지만, ‘치마를 입고 다니는 사내’를 받아들여 줄 만한 학교가 있을는지 궁금해요. 회사라면 더더구나 ‘치마 입는 사내’를 받아들여 줄 만한 곳이 매우 드물다고 하겠지요.



“나는 줄 게 없는데.” “아니야. 그런 거 필요 없어. 선물 같은 건 됐으니까! 나랑 사귀자. 저기, 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들면 고칠게. 무신경하게 굴지 않도록 조심할게. 좀더 의젓해질 테니까.” (40∼42쪽)


“눈이다.” “쌓이려나?” “집에 갈 때 어떡하지?” (91쪽)



  만화책 《방랑 소년》에 나오는 주인공은 딱히 한 사람이 아니지만, 이 만화책에서 한복판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야기 흐름을 이끄는 아이는 ‘니토린’이나 ‘슈이치’라는 이름인 아이입니다. 어릴 적에는 어른들이 ‘귀엽다’면서 이 아이를 바라보았을 테지만, 이 아이가 누나 옷을 몰래 입어 볼 적에는 ‘싫다’고 하거나 ‘끔찍하다’고 여기곤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이 커다란 울타리는 무엇일까요? 벽장에서 나온다고 하는 일은 ‘나를 밝히는 아이’가 하는데, 어느 모로 본다면 울타리를 높이 쌓고서 ‘벽장에서 나오지 않는 사람’은 ‘나를 스스로 밝히는 아이’를 마주보는 다른 사람들이지는 않을까요? 한 아이는 그야말로 씩씩하고 의젓하게 벽장 문을 열고 나왔는데, 스스로 빗장을 풀고 바깥으로 나왔는데, 막상 이 아이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은 이녁 마음자리에 단단히 빗장을 걸고서 외려 벽장으로 숨어들려 하는 셈은 아닐까요?



“나참,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좋아하잖아.” “음, 좋아해. 아마도. 하지만 고백하고 싶은 건 아니야.” (97쪽)


“‘빨강머리 앤’ 놀이? 너도 이제 고등학생이야.” “미안.” “그보다 이게 뭐니? 머리가 새빨개! 그런데, 앤이 돼서 어디 가려고?”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106쪽)



  만화책 《방랑 소년》 첫 권(2007)에는 초등학생인 아이들이 나오고, 열두째 권(2015)에는 어느덧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로 가는 아이들이 나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열기’도 하고 ‘빗장풀기’도 하고 ‘털어놓기’도 하면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갑니다. 더는 뒤를 돌아보려 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차근차근 내딛습니다.


  마음을 열었다가 마음이 다치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닫으려 하지 않습니다. 빗장을 풀다가 그만 괴롭거나 고단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다시 빗장을 걸려 하지 않습니다. 씩씩하게 생각을 털어놓고, 의젓하게 나 스스로 어떤 숨결인가 하는 대목을 밝힙니다.


  가만히 본다면, ‘내가 나를 말하는 일’이란 나부터 스스로 거듭나려고 하는 몸짓일 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사람들도 함께 새로운 숨결로 거듭나자고 외치는 목소리라고 할 수 있구나 싶어요. 혼자서 새로워질 수는 없으니까요. 다 같이 새로워질 때에 다 같이 홀가분하면서 기쁜 살림과 삶과 사랑이 될 수 있으니까요.



“초조해 하는 마음은 이해해. 나도 그랬어. 어른들이 하는 말도 안 듣고. 하지만 이제 나도 어른이니까, 안 된다고 할 수밖에 없어.” (134∼135쪽)


‘하지만 뿌듯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의외로 남을 쳐다보지 않는구나.’ (156쪽)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 이상하잖아? 사실대로 털어놓자.’ (161쪽)



  만화책 《방랑 소년》에 나오는 ‘니토리 슈이치(니토린 또는 슈이치)’는 고등학생이 된 뒤에 알바 자리를 찾아나섭니다. 이도 저도 다 막히다가 어느 찻집 한 곳에서 알바 자리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누나 이름을 걸고 알바를 하는데, 언제까지나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줄 스스로 묻고 되물은 뒤, 찻집지기한테 속내를 털어놓기로 해요.


  이제껏 수없이 새로운 걸음을 한 발짝씩 떼었다면, 여기에서 또 떼는 한 발짝은 더욱 무겁고 힘듭니다. 그렇지만 새로 떼는 한 발짝이니 더욱 새로울 뿐 아니라, 더욱 씩씩하고 의젓하게 거듭나는 걸음걸이라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다가 너무 괴로워서 ‘나하고 비슷한 길을 걸은 어른’을 찾아가서 물어보기도 하지만, 내 길은 언제나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부딪히고 찾고 열어야 할 뿐입니다. 남이 나를 도와줄 일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나를 도와야 할 뿐이에요.


  만화책에서뿐 아니라 삶자리에서도 온누리 아이들이 저마다 씩씩하게 기운을 내어 한 발짝씩 내딛을 수 있기를 빕니다. 마음 가득 꿈을 심고 사랑을 담아서 언제나 새롭게 한 발짝씩 나아가면서 내 삶부터 바꾸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한테도 새로운 숨결을 나누어 줄 수 있기를 빌어요. 4349.1.25.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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