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우리 겨레가 크게 치르는 명절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한가위’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설’이라는 말만 쓰지 않고 ‘신정·구정’ 같은 일본 한자말도 쓰고, ‘한가위’라는 말만 쓰지 않고 ‘추석’이나 ‘중추절’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한자말도 써요. 설을 ‘설날’이라고도 하듯이 ‘한가위’는 ‘가위·한가위·가윗날’이라고도 해요. 가윗날이 더없이 크다는 뜻으로 ‘한’을 앞에 붙여 ‘한가위’라 하지요. 설날 뒤에 찾아오는 보름날은 보름달이 더없이 크다고 해서 따로 ‘큰보름’이라고도 해요. 설날에는 ‘설빔’을 마련해서 입고, 한가위에는 ‘한가위빔’을 마련해서 입어요. 설날에는 연날리기나 윷놀이나 널뛰기나 그네뛰기 같은 ‘설놀이’가 있고, 한가윗날에는 강강술래나 씨름이나 줄다리기 같은 ‘한가위놀이’가 있어요. 옛날에는 날에 맞추어 즐기는 놀이가 다 달랐어요. 요새는 따로 어느 날에만 즐기는 놀이라기보다 여느 때에도 마음껏 즐기는 놀이가 되었지요. 윷놀이나 씨름을 딱히 설이나 한가위에만 하지 않거든요. 제기차기나 그네뛰기도 언제라도 할 수 있고요. 활쏘기를 할 만한 데는 드물 테지만, 고누는 집에서도 놓을 수 있고, 연도 아무 때나 날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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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하다


  꽉 차고도 남는다든지, 모자라다고 느끼지 않는다든지, 마음이 바다와 같다든지 할 적에 ‘넉넉하다’라 말해요. ‘넉넉하다’하고 비슷하게 쓰는 낱말로 ‘푸짐하다·푸지다’고 있고, ‘넓다·널찍하다·너르다’가 있으며, ‘너끈하다·너그럽다’가 있어요. 그리고 ‘널널하다’라는 낱말도 있어요. ‘널널하다’는 함경도 고장말이라고도 하는데, 남녘에서는 1990년대 무렵부터 차츰 쓰임새가 넓어졌어요. 어떤 일이 수월하다든지, 자리가 제법 넓다든지, 시간이 꽤 있어서 느긋하다든지 할 적에 쓰는 ‘널널하다’예요. 한국말에는 센말하고 여린말이 있기에 ‘널널하다’뿐 아니라 ‘늘늘하다’라든지 ‘날날하다’처럼 재미나게 쓸 수 있어요. ‘녈녈하다’라든지 ‘냘냘하다’처럼 써도 뜻이나 느낌이 재미있어요. ‘빵빵하다’라는 낱말을 사람들이 쓴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이 낱말도 무척 재미나지요. 풍선이 빵빵하게 부푼다든지, 빵을 구울 적에 빵이 빵빵하게 부푼다든지 하면서 써요.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빵빵하게 넣는다든지, 추워서 방바닥에 불을 빵빵하게 넣는다든지, 노랫소리를 빵빵하게 큰 소리로 듣는다든지, 선물이나 덤을 빵빵하게 많이 준다든지 할 적에도 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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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라미, 세모, 네모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부터 ‘네모빵’을 말합니다. 어른들은 ‘식빵’이나 ‘샌드위치빵’이라 말하지만, 큰아이로서는 이도저도 못 알아들을 만한 이름이라 여겼는지, 그냥 ‘네모빵’이라 말해요. 그래서 나는 큰아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네모빵’이라 말합니다. “먹는 빵”을 뜻하는 ‘식빵’이라는 이름보다 ‘네모빵’이라는 이름이 한결 잘 어울린다고 느껴요. 동그랗게 생긴 빵을 보면 ‘동글빵’이라고도 해요. ‘도넛’이라는 영어 이름이 있지만, 나는 또 큰아이 말을 받아들여서 써요. 동글빵은 때때로 ‘동글구멍빵’이 돼요. 동그랗게 생겼으면서 가운데에 구멍이 있으니까요. 이리하여 세모낳게 생긴 빵을 보면 우리는 ‘세모빵’이라 하지요. 김밥 가운데 세모낳게 생긴 김밥은 ‘세모김밥’이라 해요. 그러고 보면 김밥은 으레 동그랗게 말기에 여느 김밥은 ‘동글김밥’이라는 이름을 따로 붙일 만해요. 동글동글하게 생긴 햄은 ‘동글햄’이 되고, 네모지게 생긴 햄은 ‘네모햄’이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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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름택시


  집에 자동차가 있으면 택시를 탈 일이 없을 테지요. 집에 자동차가 없으면 버스나 전철을 타거나 택시를 잡아서 타요. 집에 자동차가 있어도 이 자동차를 두고 움직일 적에는 택시를 잡아서 타지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자동차를 몰지 않으니,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힘들거나 짐이 많을 적에는 택시를 불러서 탈 수 있어요. 길가를 걷다가 택시를 보면 곧바로 탈 수 있고, 어느 때에는 우리가 있는 곳으로 택시가 오기를 바라면서 미리 전화를 할 수 있어요. 이때에 우리가 부르는 대로 찾아와 주는 택시를 ‘부름택시’라고 해요. 우리가 부르는 대로 찾아와서 도와주는 이웃이 있으면 이분들을 ‘부름이’나 ‘부름이웃’이나 ‘부름님’이라 할 수 있지요. 전화를 걸면 택시가 고맙게 우리한테 찾아오는데, 봄을 부르면 봄이 우리한테 올까요(봄부름)? 꽃이 피기를 바라면서 꽃을 부르면 꽃이 우리한테 올까요(꽃부름)? 기쁨이나 웃음을 부르면 기쁨이나 웃음이 우리한테 올까요(기쁨부름·웃음부름)? 돈을 부르고 싶은(돈부름) 사람이 있고, 그리운 님을 부르고 싶은(님부름) 사람이 있을 테고, 밥을 불러서 집에서 받고 싶은(밥부름) 사람이 있을 테지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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