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삶자리에서 수수하게 가꾸면서 생각을 가꿀 수 있는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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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우리는 모두 배우는 사람입니다. 어린이도 배우는 사람이고, 어른도 배우는 사람이에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도 날마다 새롭게 배우면서 생각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아요. 그래서 새롭게 배우지 않을 적에는 새로운 생각이 흐르지 못할 뿐 아니라, 새로운 말을 하지 못해요. 새로운 생각이 없어서 새로운 말을 하지 못하면 새로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니, 새로운 웃음이나 새로운 기쁨을 짓지 못해요. 나는 우리 집 아이들하고 자전거를 함께 타고 나들이를 갈 적마다 “가자!” 하고 외쳐요. 말 그대로 자전거로 어딘가를 가니까 “가자!” 하고 외치지요. 버스를 타고 나들이를 가며 “가 볼까?” 하고 말하고, 두 다리로 걸어가며 “가 보자!” 하고 말합니다. “함께 가자!” 하고도 말하고, “같이 가자!” 하고도 말하는데, “천천히 가자!”라든지 “서둘러 가자!”라든지 “노래하며 가자!”라든지 “뚜벅뚜벅 가자!”라든지 “성큼성큼 가자!”고 말할 적도 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어버이인 내가 하는 말을 찬찬히 들으면서 배워요. 그냥 “가자!”라는 말만 하면 이 말만 배우지만, 어떻게 가는가 하는 모습이고 몸짓이며 마음인가를 늘 새롭게 말하면 언제나 새롭게 외치는 말을 웃음과 노래를 곁들여서 함께 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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뜯는곳


  과자나 라면은 으레 봉지에 담아서 팔아요. 과자나 라면을 뜯을 적에 잘 살피면 어느 한쪽에 조그마한 글씨로 적힌 ‘뜯는곳’이라는 말을 볼 수 있어요. 우유 같은 마실거리라면 한쪽에 잔글씨로 적힌 ‘여는곳’이라는 말을 볼 수 있고요. 때로는 ‘따는곳’이나 ‘찢는곳’이라는 말이 적힐 수 있어요. 예전에는 이런 자리에 ‘개봉선’ 같은 한자말만 적혔지만 요새는 어린이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쉬운 한국말로 고쳐서 적어 놓아요. 언뜻 보기에는 아무것이 아니라 할 만한 말마디이지만, 이런 자리에 어떤 말을 적어 놓느냐에 따라서 쓰임새가 무척 달라지겠지요? 어린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적어 놓은 과자하고 어린이가 알아듣기 어렵거나 못 알아들을 만한 말을 적어 놓은 과자는 사뭇 다를 테니까요. 맞붙은 것을 뗀다고 할 적에 ‘뜯는다’고 해요. 맞붙든 맞붙지 않든 잡아당겨서 가를 적에는 ‘찢는다’고 하고요. 서울말은 ‘뜯다’이고, 사투리로 ‘튿다’를 써요. 바느질을 한 자리가 풀릴 적에 ‘뜯어지다’라고도 하고, ‘튿어지다’라고도 해요. 몸에 꽉 끼는 옷을 입고 너무 신나게 뛰놀면 옷이 뜯어지거나 튿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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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렁뚱땅


  물을 흘리거나 밀가루를 쏟았는데 내가 하지 않은 척하면서 슬그머니 넘어가려고 한 적이 있나요? 그릇이나 접시를 깨뜨리고는 부리나케 치워 놓고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듯이 살그마니 넘어가려고 한 적이 있나요? 스리슬쩍 넘어가거나 슬며시 넘어가거나 슬쩍슬쩍 넘어가거나 사알짝 넘어가려고 하는 몸짓을 가리켜 ‘얼렁뚱땅’이라고 해요. ‘얼렁뚱땅’은 센말이고, ‘알랑똥땅’은 여린말이에요. 한국말은 느낌이나 소리나 시늉을 가리키는 말마디마다 센말하고 여린말이 있어요. 느낌이 세기에 센말이고, 느낌이 여리기에 여린말이에요. 그래서 ‘살짝·슬쩍’처럼 느낌이 다르고, ‘살며시·슬며시’처럼 느낌이 달라요. ‘살짝’하고 ‘살작’도 느낌이 다르지요. ‘스리슬쩍’이나 ‘사리살짝’도 느낌이 다릅니다. 어떤 일을 남이 모르게 이냥저냥 넘어가려 할 적에 ‘얼렁얼렁’이라든지 ‘알랑알랑’ 넘어가려 한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어설피 넘어가거나 엉성하게 넘어가려고 하는 셈인데,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면 처음부터 깨끗하게 털어놓고 지나가야 나중에 깔끔하기 마련이에요. 내가 모르는 척한다고 해도 남들은 다 알거든요. 누구보다 나 스스로 가장 잘 알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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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못


  집살림을 손질하다가 못이 다 떨어져서 못을 사려고 쇠붙이를 다루는 가게에 찾아가던 날이에요. 가게를 지키는 일꾼을 보며 “큰못 있어요?” 하고 여쭈었지요. 자그마한 못 말고 커다랗고 긴 못이 있어야 해서 ‘큰못’을 달라고 여쭈니 가게 일꾼이 이 말을 못 알아들으셔요. 한참 실랑이를 하다가 ‘대못’이라는 낱말이 떠올라서 “대못 말이에요.” 하고 다시 여쭈니 그제서야 알아들으셔요. 크니까 ‘큰못’이라 하고 작으니까 ‘작은못’이라 할 뿐인데, “작은못 있어요?” 하고 여쭐 적에는 곧바로 알아들으시면서 막상 ‘큰못’은 알아듣지 못하시고, 한자로 ‘대(大)’를 붙인 ‘대못’만 알아들으시니 알쏭달쏭하기도 해요. 그러고 보니까 요즈음 무척 많은 사람들이 ‘대박’이라고 하는 말을 써요. “대박이네!”라든지 “대박이 나야 할 텐데!” 하고 말하지요. 그러면 ‘대박’이란 무엇일까요? 그저 “커다란 박”인 ‘큰박’을 가리킵니다. 그렇지만 “큰박이네!”이라든지 “큰박이 나야 할 텐데!” 하고 말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워요. “대애애애!” 할 때뿐 아니라 “크으으은!” 할 때에도 크고 시원한 느낌이 들기는 마찬가지일 텐데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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