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뼈들 삶창시선 42
김수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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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말하는 시 111



시와 말뼈

― 사랑의 뼈들

 김수상 글

 삶창 펴냄, 2015.3.25. 8000원



  한국말사전에서 ‘말뼈’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성질이 고분고분하지 못하고 거세어 뻣뻣한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옵니다. 다만, ‘말뼈다귀’라는 낱말은 올림말로 나오지 않아요. 문득 궁금해서 일본말사전까지 찾아보니, 일본말 가운데 ‘うまのほね(馬の骨)’가 있고, 이 낱말을 “말뼈다귀, 내력을 잘 모르는 시시한 자”로 풀이합니다. 일본말사전에 실린 보기글에는 “どこの馬うまの骨ほねだかわからない”가 있고, 이 글월을 “어디서 굴러먹던 말뼈다귄지 모르겠다”로 풀이해 놓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말뼈다귀’는 일본말에서 슬그머니 넘어온 말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쩌면 일제강점기에 살그마니 건너온 말투일 수 있겠지요.



인생 한 방이면 돼, 홍콩 느와르 같은 대사를 몇 번이나 혼자서 씨부리는 저 여자, 한쪽 무릎 세우니 흘러내린 치마 밑엔 허연 허벅지 (폐경)


징을 만드는 장인을 만났다 / 손톱엔 쇳물 때가 새까맸다 / 이가리를 만들고 사개질을 하고 / 한밤엔 담금질을 했다 (풋울음)



  김수상 님이 선보인 시집 《사랑의 뼈들》(삶창,2015)을 읽으면서 문득 ‘말뼈’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뼈’를 생각하면서 말로 집을 짓는 이야기가 흐르는 시집이기에 저절로 ‘뼈 + 말’이 떠오르고, ‘뼈가 되는 말’이나 ‘말이 되는 뼈’가 떠올라요. 단단한 얼음판을 지치면서 놀듯이 시를 쓰지는 못하고, 아슬아슬하다 싶은 살얼음판을 살금살금 걷듯이 시를 쓴다고 하는 김수상 님인데, 살얼음판을 걷는 말이란, 말뼈란, 뼛속으로 스미는 말이란 무엇일까 하고 헤아려 봅니다.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비누 냄새가 났다 얼마 전 새로 단장한 놀이터에 아이와 엄마가 비눗방울 놀이를 한다 크고 작은 방울들이 공중에 떠다녔다 까르르까르르, 했다 (얇은 막)


막내놈 가방을 모조리 비우니 코발트색 튜브물감 하나가 찌그러져 책이며 공책이며 가방에 푸른 떡칠을 해놓았다 게임할 시간은 있고 가방 정리할 시간은 없냐고 등교하는 아침에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을 냈다 보내놓고 젖은 걸레로 책이며 공책을 닦는데 (구름의 문장)



  어떤 말이 내 몸을 이루는 뼈로 단단하게 굳었을까 하고 돌아봅니다. ‘말에 뼈가 있다’는 말처럼, 이웃한테 들려주는 말에 어떤 마음을 싣는 삶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시인 김수상 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말)에는 어떤 뼈가 깃들어 이 사회와 나라와 삶을 돌아보도록 북돋우는가 하고 돌아봅니다.


  단단한 뼈처럼 단단한 말이 있습니다. 무른 뼈처럼 무른 말이 있어요. 뼈다귀 같은 말이라고 해서 꼭 단단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단단한 뼈가 있으면 무른 뼈가 있고, 억센 뼈가 있으면 말랑말랑한 뼈가 있어요. 단단한 뼈가 있어서 살점을 받친다면, 물렁한 뼈가 있어서 뼈랑 뼈가 이어져서 몸을 움직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삶이란 ‘단단뼈’하고 ‘물렁뼈’가 맞물리는 이야기꾸러미라고 할 만합니다. 어느 때에는 단단하지만 어느 때에는 물렁하기도 하는 삶이라 할 만하고, 이러한 삶을 어느 때에는 다부지거나 야무진 말마디로 그릴 수 있지만, 어느 때에는 말랑말랑 물컹물컹 부드러이 그릴 수 있어요. 누군가는 그야말로 씩씩하고 힘차게 한길을 걷고, 누군가는 그야말로 흔들흔들 비틀거리면서 이 길 저 길 들쑤시면서 걸어요.



냉장고가 운다 내일이 입춘이라는데 한밤에 혼자 깨어 냉장고가 울고 있다 반쯤 남은 소주병이 울고 젖은 시래기가 울고 아버지가 먹다 남기고 간 간처녑도 벌겋게 울고 있다 (생활의 발견)



  삶이 여기에 있고, 시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뼈 같은 시가 있고, 소뼈나 닭뼈 같은 시가 있습니다. 양뼈나 개뼈 같은 시가 있고, 참새뼈나 박새뼈 같은 시가 있어요. 커다란 짐승을 받치던 뼈 같은 시여야 더 크지 않습니다. 자그마한 새가 하늘을 가볍게 날도록 받치던 뼈 같은 시이기에 하염없이 작지 않습니다.


  사회를 비평할 적에도 시가 되고, 삶을 바라볼 적에도 시가 됩니다. 사회와 부딪힐 적에도 시가 태어나고, 살림을 가꿀 적에도 시가 태어나요. 그러니까, 《사랑의 뼈들》을 쓴 김수상 님이 이녁 막내아이를 꾸짖는 하루를 보내면서도 문득 이녁 모습을 되새기며 시가 태어나고, 파란 물감으로 젖은 가방을 조용히 닦으며 시가 새롭게 흐릅니다.


  냉장고를 열다가 시가 태어나지요. 냉장고를 다시 닫으면서 시가 태어나요. 쌀을 씻거나 밥을 지으면서 시가 태어나고, 설거지를 하거나 그릇을 떨어뜨려 깨면서 시가 태어나요. 언제 어디에서나 삶이 흐르기에, 이 삶을 고스란히 바라보고 고이 껴안을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구나 시인이 되어 기쁨과 슬픔을 골고루 노래할 수 있습니다.



척추도 지느러미도 없이 지식만 빨다가 얼마 전에 죽은 내 친구 시간강사는 죽어서도 대가리에 먹물만 잔뜩 넣고 응급실 시트에 널브러져 있었다 먹물 제대로 한 번 쏘지도 못하고 (어느 쭈꾸미의 죽음)



  쭈꾸미는 죽어서 바다로 돌아가기도 하고, 쭈꾸미는 죽지 않고 산 채로 잡혀서 사람들한테 먹히기도 합니다. 쭈꾸미가 죽은 바다에서 사람들은 헤엄도 치고 낚시도 하며 여행도 해요. 쭈꾸미를 먹은 사람은 쭈꾸미 숨결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새롭게 기운을 내요.


  시집 《사랑의 뼈들》에 흐르는 사랑이란 뼈란 노래란 삶이란 꿈이란 말이란 머나먼 별나라에 있지 않습니다. 언제나 김수상 님 삶자리에 있습니다. 김수상 님이 바라보는 대로 삶이 흐르면서 시가 흐릅니다. 김수상 님이 스스로 새롭게 가꾸려 하는 삶처럼 시가 한 줄 두 줄 흐릅니다.


  나는 두 아이를 밤에 살뜰히 재우면서 이마를 쓸어넘기고 볼에 뽀뽀를 하고 이불깃을 여미고 자장노래를 부르고 가슴을 살며시 토닥이고는 시집을 조용히 펼칩니다. 등불을 켤 수 없어서 촛불을 켜고 시집을 고요히 읽습니다. 고단하면서도 즐겁게 누린 하루를 마무리하기 앞서 두 아이하고 누린 살림 이야기를 짤막하게 수첩에 적어 봅니다. 내가 우리 보금자리에서 아이들하고 나누는 말마디도 날마다 새삼스레 노래가 되어 새롭게 거듭나겠지요. 4349.1.23.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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