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이 고운 말을 재미나게 살려서 쓰는 길을 곰곰이 짚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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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봄맞이


  추운 겨울에는 이 추위가 언제 끝나려나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에요. 추운 겨울에는 으레 새봄이 얼른 찾아왔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래서 ‘새봄맞이’를 반가이 기려요. 새봄맞이를 하면서 대문에 글씨를 정갈히 써서 붙이기도 합니다. 더운 여름에는 이 더위가 언제 스러지려나 하고 생각하기 마련이지요. 더운 여름에는 으레 시원한 바람이 넉넉히 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그러니 ‘겨울맞이’를 새롭게 할 만해요. 봄에는 봄맞이를 하고 여름에는 여름맞이를 해요. 가을에는 가을맞이를 할 테지요?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기쁘게 반기면서 ‘손님맞이’를 해요. 아침에는 ‘해맞이’를 하고, 밤에는 ‘달맞이’나 ‘별맞이’를 하고요. 학교나 마을에서 동무를 기다리며 ‘동무맞이’를 합니다. 바람 한 점 없이 더운 여름이라면 바람을 부르면서 ‘바람맞이’를 하고플 수 있어요. 겨울에 눈송이를 뭉치며 신나게 놀고 싶으면 ‘눈맞이’를 하고, 봄에 흐드러지는 꽃을 바라보며 ‘꽃맞이’를 해요. 어머니나 아버지가 차려 주는 밥상을 받으면 ‘밥맞이(밥상맞이)’가 될까요? 살가운 이웃집에서 놀러와서 ‘이웃맞이’를 하고, 내 동생이 태어나면 기쁘게 ‘동생맞이’나 ‘아기맞이’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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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달리기


  어른들은 아이들더러 으레 “뛰지 말아라” 하고 말해요. 마루나 방에서 뛰지 말라 하고, 길이나 건물에서 뛰지 말라 해요. 학교에서는 교실이나 골마루에서 함부로 뛰지 말라 하지요. 그런데 “뛰지 말아라” 하는 말에서 ‘뛰다’는 어떤 몸짓일까요? 이는 ‘뜀뛰기·높이뛰기·제자리뛰기·멀리뛰기’ 같은 말에서 나오듯이 발을 굴러서 하늘로 솟구치듯이 오르려고 하는 몸짓입니다. ‘뛰놀다’라는 말이 있지요? 뛰면서 논다는 말인데, 어린이는 으레 발을 콩콩 구르면서 몸을 하늘로 덩실덩실 올리면서 놀기에 ‘뛰놀다’라는 말을 써요. 이리하여 어른들이 흔히 하는 “뛰지 말아라”는 “‘달리지’ 말아라”라 해야 할 말을 잘못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달리기·오래달리기’ 같은 말에서 나오듯이 걸음을 빨리하는 몸짓을 ‘달리다’로 나타내요. 길이나 교실이나 골마루 같은 데에서 아이들은 흔히 걸음을 빨리하는 몸짓으로 이리저리 오가니, 이렇게 하지 말라는 뜻에서 “달리지 말아라” 하고 말하지요. 그리고 “뛰지 말아라” 하고 말할 적에는 촐싹거리지 말고 얌전하고 차분하게 다니라는 뜻이라고 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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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바라기


  시골에서 노는 아이들은 늘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바라봅니다. 차츰 찬바람으로 바뀌는 늦가을에도 풀이랑 꽃이랑 나무를 바라보기는 똑같지만, 이무렵에는 해가 잘 드는 곳을 찾아서 ‘해바라기’를 합니다. 겨울에도 해바라기를 하며 놀아요. 낮에는 ‘풀바라기·꽃바라기·나무바라기’를 하면서 놉니다. 밤에는 ‘별바라기·달바라기’를 하며 놀지요. 해나 별을 보려고 하늘로 고개를 돌려서 눈길을 두기에 ‘하늘바라기’입니다. 자전거를 달려 바다로 나들이를 가면 ‘바다바라기’예요. 샛노란 가을들을 누리려고 논둑길을 거닐 적에는 ‘들바라기’입니다. 나무가 우거진 숲을 사랑하기에 ‘숲바라기’가 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온갖 놀이를 즐기니 ‘놀이바라기’가 되고요. 어버이는 아이를 사랑하고 아이는 어버이를 사랑합니다. 서로 ‘사랑바라기’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가슴에 꿈을 품기에 ‘꿈바라기’입니다. 살림을 함께 짓는 곁님을 보살피면서 ‘님바라기’입니다. 책을 좋아하면 ‘책바라기’이고, 영화를 즐기면 ‘영화바라기’입니다. 돈이 좋으면 ‘돈바라기’일 테며, 노래가 좋으면 ‘노래바라기’예요. 비 내리는 소리와 냄새를 좋아해서 ‘비바라기’요, 눈 내리는 결이랑 빛을 좋아해서 ‘눈바라기’입니다. 떡바라기나 빵바라기나 과자바라기도 있을 테지요? 수박바라기나 딸기바라기나 참외바라기도 있을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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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자굽기


  과자나 빵을 집에서 마련하여 먹어 본 적 있나요? 과자가게나 빵집에서 과자나 빵을 장만해서 먹을 수 있고, 집에서 손수 밀반죽을 하고 불판을 달구거나 오븐에 넣어서 과자나 빵을 구울 수 있어요. 밥을 짓는다고 할 적에는 ‘밥짓기’라 해요. 말 그대로이지요. 밥을 한다고 할 적에는 ‘밥하기’라 해요. 이처럼 과자나 빵을 굽는다고 할 적에는 ‘과자굽기’나 ‘빵굽기’라고 합니다. 밀반죽을 알맞게 떼어서 뜨거운 불 기운에 굽기 때문에 ‘과자굽기·빵굽기’예요. 그런데 과자를 파는 과자가게 이름으로는 ‘과자가게’보다는 ‘제과점’ 같은 이름을 쓰는 데가 훨씬 많아요. 과자를 굽는 솜씨를 익혀서 자격증을 딸 적에는 ‘제과 자격증’이라 하거든요. 그러면 빵집에서 일하는 분들은 어떤 자격증을 딸까요? 이분들은 ‘제빵 자격증’을 따요. 구워서 먹으니 ‘굽는 과자’이고 ‘굽는 빵’이지만, 어른들은 ‘과자굽기·빵굽기’나 ‘과자짓기·빵짓기’ 같은 말보다는 ‘제과·제빵’ 같은 한자말을 더 좋아하는구나 싶어요. 그래도 ‘빵굼터(빵을 굽는 터)’ 같은 이름을 빵집에 붙이는 슬기로운 어른도 함께 있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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