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즐겁게 살리는 길을 놓고 짤막하게 쓴 글 네 가지입니다. 예전에 쓴 밑글을 거의 몽땅 고쳐서 새로 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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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아파트


  자전거를 타고 읍내 저잣마당을 다녀오던 날이었어요. 등에 진 가방에 먹을거리를 잔뜩 담은 뒤 자전거를 천천히 몰아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요. 자전거 왼쪽으로 지나가는 자동차를 살피다가 문득 내 왼쪽에 우뚝 선 아파트를 보았는데, 이 아파트 이름이 ‘무지개’아파트이더군요. 그저 아파트에 붙은 흔한 이름 가운데 하나라고 여길 수 있지만, 영어로만 멋을 부린 아파트 이름이 떠올라서 새롭구나 하고 느꼈어요. 영어로만 멋을 부린 아파트 이름도 재미있는데, 한국말로도 아파트 이름을 곱거나 이쁘장하거나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알뜰살뜰 붙일 수 있어요. ‘실개천’아파트라든지 ‘솜구름’아파트라 이름을 붙일 수 있고, ‘사랑’아파트라든지 ‘꿈’아파트라 이름을 붙일 수 있어요. ‘숲마을’아파트나 ‘노래마을’아파트가 될 수 있고, ‘조약돌’아파트나 ‘봄제비’아파트가 될 수 있지요. ‘달빛마을’이나 ‘선돌마을’이나 ‘새싹마을’이 될 수 있고, ‘푸른마을’이나 ‘하얀나라’나 ‘새빛누리’가 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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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빔, 설빔, 잔치빔


  ‘한겨레’는 “한 + 겨레”입니다. 한겨레가 쓰는 글은 “한 + 글”인 ‘한글’이기에, 옛날부터 쓰던 말은 “한 + 말”인 ‘한말’이라 할 만해요. 이런 얼거리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사는 나라는 “한 + 나라”인 ‘한나라’이고, 이밖에 ‘한춤’이나 ‘한노래’ 같은 말을 지을 수 있어요. 한겨레가 입는 옷은 ‘한옷’이라 할 수 있고요. 옷 가운데 새로 마련하는 옷은 따로 ‘빔’이라고 해요. 설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설빔’이 되고, 한가위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한가위빔’이 되지요. 생일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생일빔’이고, 잔칫날에 새로 마련하는 옷이라면 ‘잔치빔’이에요. 새로 장만하는 옷에 꽃무늬가 곱게 깃들면 ‘꽃빔’입니다. 새로 장만한 꽃빔을 두고두고 입어서 더는 새 옷이 아니라면 그냥 ‘꽃옷’이라 하겠지요. 여러 빛깔로 무늬를 넣은 옷을 ‘색동옷’이라 하는데, 이러한 옷은 ‘무지개옷’이라 할 수 있어요. 위아래가 한 벌인 옷이라면 ‘한벌옷’이고, 위아래를 둘로 나눈 옷이라면 ‘두벌옷’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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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더


  밥을 한 그릇 먹고 나서 한 그릇을 더 먹고 싶으면 “한 그릇 더 주세요” 하고 말합니다. 한 그릇을 먹은 뒤 두 그릇을 더 먹을 수 있다 싶으면 “두 그릇 더 주세요” 하고 말하지요. 물을 한 잔 마시고서 목마름이 가시지 않으면 “한 잔 더” 바라기 마련이에요. 책을 한 권 읽고 나서 더 읽고 싶을 적에는 “한 권 더” 읽고 싶습니다. 노래를 한 가락 듣는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몹시 아름답거나 멋있거나 훌륭하거나 그윽하거나 즐겁게 불렀으면 “한 가락 더” 불러 주기를 바랄 수 있어요. 이때에 우리는 ‘앙코르’나 ‘앙콜(앵콜)’ 같은 프랑스말로 외치기도 하지만 “한 번 더” 같은 말로 외치기도 해요. 때로는 “두 번 더”를 외치지요. 한 번 더 부르는 노래로는 어쩐지 아쉽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세 번 더”나 “네 번 더”를 외칠 수 있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손뼉물결을 뜨겁게 받으면 한 번 더이든 두 번 더이든 세 번 더이든 그야말로 목청이 터져라 하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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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별


  별 일곱이 꼭 국자처럼 생겼구나 싶은 별을 가리켜 ‘국자별’이라고도 하고 ‘바가지별’이라고도 하며 ‘주걱별’이라고도 해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바라보면서 재미난 이름이 붙어요. ‘국자별·주걱별·바가지별’이라 하는 별에는 ‘북두칠성’이라는 이름도 있어요. 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듯이 흐르는 별은 ‘꼬리별’이나 ‘꽁지별’이라 하고, ‘살별’이라고도 해요. 이 별에는 ‘혜성’이라는 이름도 붙어요. 밤하늘을 올려다볼 적에 꼬리가 늘어지는듯이 흐르면서 반짝 빛나다가 곧 사라지는 별은 ‘별똥’이나 ‘별똥별’이라 해요. 이 별에는 ‘유성’이라는 이름도 붙어요. 음력으로 쳐서 팔월 십오일에는 견우랑 직녀가 만난다는 옛이야기가 있지요. 이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두 가지 별이 아주 가까이 맞닿는다고 해요. 자, 어느 별이 이때에 가까이 맞닿듯이 보일까요? 바로 ‘견우별’이랑 ‘직녀별’일 테지요. 수많은 별이 가득한 밤이기에 별밤이면서 ‘별잔치’예요. 마치 ‘별비’가 쏟아지듯이 별똥이 잔뜩 흐르는 날이 있고, 별이 냇물처럼 이어진 미리내가 짙게 보이는 날이 있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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