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사랑하는 넋으로 새롭게 가꾸는 길을 돌아보면서, 예전에 쓴 글을 뜯어고쳐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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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모임


  반가운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반갑습니다. 즐거운 사람은 날마다 만나도 즐겁습니다. 어여쁜 사람은 날마다 만나며 어여쁘고, 아름다운 사람은 날마다 만나면서 새롭게 아름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좋구나 하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만날 적에 좋구나 하는 느낌이 새삼스레 일어나겠지요. 서로서로 만납니다. 어깨동무를 하면서 살갑게 사귑니다.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즐겁게 노래하기도 하고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해요. 그런데 저마다 여러 가지 일이 바쁠 수 있고, 사는 자리가 좀 멀리 떨어졌다면, 날마다 보고 싶어도 날마다 못 볼 수 있어요. 이레에 한 차례 만난다든지, 열흘에 얼굴을 한 번 본다든지, 보름에 한 차례 만난다든지, 한 달에 한 차례 만난다거나, 달포나 철마다 겨우 한 번 만날 수 있어요. 날마다 만나면 ‘날마다모임’이 되거나 ‘날모임’이 됩니다. 이레마다 만나면 ‘이레모임’이 되겠지요. 보름마다 만나면 ‘보름모임’이거나 ‘열닷새모임’이요, 달마다 만나면 ‘달모임’입니다. 한 해에 한 차례 만나는 ‘해모임’도 있으리라 생각해요. 반가운 이라면 날마다 보든 달마다 보든 해마다 보든, 때로는 열 해나 스무 해만에 보든, 환한 웃음을 북돋우며 밤늦도록 이야기잔치를 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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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


  밤에 다니는 버스를 타 보았나요? 도시에서 깊은 밤에 달리는 버스라면 찬찬히 잠들면서도 밤새 불빛이 밝은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골에서 깊은 밤에 달리는 버스라면 그야말로 깜깜한 밤빛을 느낄 수 있어요. 밤에 다니는 버스이기에 ‘밤버스’가 되면, 밤에 다니는 기차는 ‘밤기차’예요. 밤에 다니는 배일 때에는 ‘밤배’가 될 테고, 밤버스랑 밤기차를 아울러 ‘밤차’라고도 해요. 어느 날에는 밤길을 고즈넉히 걸을 수 있어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밤마실’이나 ‘밤나들이’를 하자면서 밤길을 걷는 날이 있겠지요. 밤길은 낮길하고 달라 모두 새롭거나 낯설게 보일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밤마실을 하는 동안 밤하늘을 새삼스레 올려다볼 만하지요. 낮에는 새파랗게 환한 하늘에 새하얗게 맑은 구름이 흐르는 낮하늘이고, 밤에는 초롱초롱 곱게 빛나는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이에요. 별은 밤에 뜨는데 때로는 낮에도 볼 수 있어서 ‘낮별’이라는 이름이 있고, 낮에 보는 달한테도 ‘낮달’이라는 이름이 있어요. 그러면 별이랑 달도 ‘밤별’하고 ‘밤달’이라는 이름을 붙여 볼 만하겠지요. 밤별을 보며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해 보면 ‘밤놀이’도 무척 재미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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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거리


  요즈음 겨울은 한번 추위가 찾아온다 싶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그치지 않기 일쑤예요. 이러다가도 포근한 날씨가 찾아온다 싶으면 보름이고 한 달이고 이어지기 일쑤이지요. 지구별 날씨가 무척 크게 바뀐 탓이라 할 텐데요, 예전에는 이 나라 날씨가 이와 같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보름이고 한 달이고 똑같은 추위나 포근함이 잇따르는 날씨가 아니라, 사흘 추우면 나흘 포근한 날씨였어요. 추위보다 포근한 날씨가 살짝 긴 겨울이었다고 할까요. 이처럼 사흘 춥다가 나흘 포근한 날씨일 적에는 ‘사흘거리’나 ‘나흘거리’라는 말을 써요. 사나흘에 한 번씩 어떤 날씨가 되기에 ‘-거리’를 붙이거든요. 닷새마다 어떤 일이 되풀이된다면 이때에는 ‘닷새거리’라 할 만하고, 엿새나 이레마다 어떤 일을 되풀이한다면 이때에는 ‘엿새거리’나 ‘이레거리’라 할 만해요. 그러면 ‘하루거리’나 ‘이틀거리’도 있을 테지요. ‘한달거리(달거리)’라든지 ‘두달거리’도 있고, ‘철거리(석달거리)’라든지 ‘한해거리(해거리)’도 있을 테고요. 그러고 보니 추위나 포근함이 한 달씩 간다면 ‘한달거리 추위’나 ‘한달거리 포근’이라 할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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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한국말은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휴먼(human)’이라 적고, 한자로는 ‘인간(人間)’이라 적습니다. 나라마다 쓰는 말이 같다면 모두 같은 말을 쓸 테지만,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달라서 모두 다른 말을 씁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는 영어로 말밑이 있어 ‘휴먼’을 즐겁게 쓰고, 한자를 쓰는 나라에서는 한자로 말뿌리가 있어 ‘인간’을 즐겁게 씁니다. 한국에서는 한국대로 말넋이 있어 ‘사람’을 즐겁게 써요. ‘사람’은 ‘살다’라는 낱말에서 나왔고, ‘살다’는 바로 오늘 이곳에서 눈을 뜨고 숨을 쉬면서 생각을 하고 마음을 기울여서 사랑으로 하루를 일구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에서 살기에 사람일까요? 바로 이 땅에 발을 디디면서 삽니다. 이 땅은 거칠거나 메마른 땅이 아니라 풀과 나무로 우거지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숲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들숨(들녘 목숨)이면서 숲넋(숲자락 넋)인 셈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두 씨앗이 만나서 새로운 한 씨앗으로 태어나고, 가슴에 사랑이라는 마음씨앗을 품습니다. 사람이 혼자 살 수 없다고 할 적에는 ‘이웃과 기대야’ 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들과 숲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바람과 흙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느낍니다. 생각으로 꿈을 짓고, 이 꿈이 이 땅에 고요히 나타날 적에 비로소 사람으로서 산다는 뜻이지 싶어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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