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놀이' 이야기 네 가지를 새롭게 손질하고 고쳐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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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은지



  개구리는 어떤 소리를 내면서 노래할까요? 개구리가 내는 소리를 ‘노래한다’고 여기면서 듣는 사람이 있고, ‘운다’고 여기면서 듣는 사람이 있어요. 노래하는 소리하고 우는 소리는 사뭇 달라요. 매미가 노래하거나 울 적에도 소리가 사뭇 다를 테고, 비둘기나 제비나 참새가 노래하거나 울 적에도 소리가 사뭇 달라요. 자, 그러면 가만히 생각을 기울여서 노랫소리나 울음소리를 들어 보기로 해요. 병아리랑 닭은 어떻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소랑 돼지는 어떻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귀뚜라미랑 방아깨비는 어떻게 노래하거나 울까요? 냇물은 어떤 소리를 내면서 흐를까요? 빗방울은 어떤 소리를 내면서 떨어질까요? 빨래를 손으로 비빌 적에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달걀을 부치거나 소시지를 익히거나 감자를 볶을 적에는 어떤 소리가 날까요? 밥이 끓는 소리랑 국이 끓는 소리는 어떠할까요? 참새는 ‘짹짹’이라 하는데 참말 참새 노랫소리나 울음소리는 ‘짹짹’ 하나뿐일까요, 아니면 다른 소리가 있을까요? 시냇물은 ‘졸졸’ 소리만 내면서 흐를까요, 아니면 새로운 소리가 있을까요? 우리 집 큰아이가 다섯 살이던 때에 우리 집 마당에 찾아온 멧새를 보더니 “아버지, 저 새는 ‘은지은지’ 하고 우네?” 하고 말했어요. 그때 우리는 그 멧새한테 ‘은지은지새(또는 은지새)’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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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누리



  네 식구가 면소재지 마실을 하면서 중국집에 들르던 날입니다. 중국집에서 몇 가지를 시켜서 먹은 뒤 값을 치르려는데 아주머니가 “500원은 깎아 줄게요.” 하고 말씀합니다. 중국집에 이어서 면소재지 빵집으로 갑니다. 몇 가지 빵을 산 뒤 값을 내려는데 아주머니가 “이건 어제 거니까 디시(DC)해 줄게요.” 하고 말씀합니다. 면소재지 마실을 마친 뒤 군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합니다. 한곳에서는 ‘깎는다’고 말씀하고, 다른 한곳에서는 ‘디시(디스카운트)’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는 한국말이고 하나는 영어예요. 값을 깎는 일을 놓고 한국말로는 따로 ‘에누리’라 하기도 해요. 그리고 ‘에누리’를 한자말로는 ‘할인’이라 하기도 하지요. 한국에서는 한국말 ‘깎다’랑 ‘에누리’도 쓰지만, 영어 ‘디시’나 ‘디스카운트’도 쓰고, 한자말 ‘할인’도 써요. 한국사람은 한국에서 한국말을 올바로 쓸 줄 알아야 합니다만 여러 가지 말을 재미나게 쓸 수도 있어요. 그나저나 값을 깎는 일을 가리킬 적에는 어떤 말을 주고받을 적에 즐거울까요? 어린이랑 어른이 한국에서 즐거이 함께 쓸 낱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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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콩



  우리가 먹는 여느 밥은 쌀밥이고, 쌀밥은 쌀알로 지어요. 쌀알은 볍씨를 심어서 거둔 열매인 ‘벼알’에서 껍질을 벗겨 얻습니다. 벼알 껍질인 겨를 살짝 벗기면 누르스름한 빛깔이 감도는 ‘누런쌀(현미)’이고, 겨를 많이 벗기면 하얀 빛깔이 감도는 ‘흰쌀(백미)’이에요. 겨를 많이 벗긴 흰쌀은 노란 쌀눈까지 깎이기 마련인데요, 노란 쌀눈은 이 열매(벼알)를 흙에 심어서 자라도록 하는 바탕입니다. 볍씨를 심어서 얻은 벼알을 껍질을 벗기지 않고 잘 건사하거나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심으려고 하면, 이 볍씨를 ‘씨나락’이라고 따로 가리켜요. 씨(씨앗)가 되는 ‘나락’이라는 뜻입니다. 감자는 열매이면서 씨앗이에요. 감자가 묵으면 눈이 돋고 싹이 나오지요. 이 눈이나 싹이 돋은 자리를 알맞게 잘라서 밭자락에 심으면 줄기가 오르고 잎이 돋으면서 새로운 감자알이 맺어요. 이렇게 새 감자알을 얻도록 따로 건사하거나 갈무리하는 감자는 ‘씨감자’라 하지요. 밥에 함께 넣는 콩이라든지, 된장이나 고추장이나 두부로 바뀌는 콩도 열매이면서 씨앗이에요. 이듬해에 새로 심을 콩이라면 이때에는 ‘씨앗콩’이거나 ‘씨콩’이에요. 가만히 보면 우리가 먹는 모든 열매는 열매이면서 씨앗이에요. 밭에서 자란 씨앗을 먹으면서 마음밭에 생각이라는 새로운 씨앗을 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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볏짚말이



  가을에 아이들하고 논둑길을 걷는 나들이를 다니다 보면, 아이들은 으레 묻습니다. “아버지, 저기 저 똥그랗고 커다란 건 뭐야?” “뭘까? 너는 뭐라고 생각해?” “어! 아, 음, 음. 잘 모르겠어.” “그러면, 이름을 한 번 붙여 봐.” “이름? 글쎄, 음, 그래, 똥그라니까 똥그라미!” 큰아이가 일곱 살이던 때까지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하고 주고받았는데, 큰아이는 만화책에서 저 논바닥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를 보았고, 제대로 이름을 알려 달라고 묻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한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기 저 논에 있는 커다란 동그라미는 ‘볏짚말이’라고 해.” “‘볏짚말이?’” “응, 볏짚을 동그랗게 말아서 볏짚말이라고 하지. 달걀말이도 달걀을 동글동글 말지.” “아하, 그렇구나.” “볏짚을 동그랗게 말면 ‘동글볏짚말이’나 ‘둥근볏짚말이’라 하면 되고, 볏짚을 네모낳게 여미면 ‘네모볏짚말이’라 하면 돼.” “응, 알았어.” 이렇게 큰아이하고 ‘볏짚말이’라는 이름을 놓고 생각을 나눈 뒤에 인터넷으로 ‘볏짚말이’를 무어라 가리키는가 하고 찾아보았어요. 그랬더니 ‘원형(梱包) 곤포(梱包) 사일리지(silage)’라는 이름을 쓴다더군요. 어떤가요? ‘원형 곤포 사일리지’라 하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만할까요?


(최종규/숲노래 . 2016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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