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젤리장수 다로 4
김민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593
서로 다른 삶이니 서로 다른 말
― 젤리장수 다로 4
김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 2012.1.30. 6000원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 넷째 권에서는 이 만화책 주인공 ‘다로’가 ‘공주님(인어 할아버지)’한테서 인어 비늘 하나를 얻어서 바닷속을 누비는 이야기가 첫머리에 나옵니다. 다로라는 아이는 인어 비늘을 잘못 붙였다가 몸 한쪽이 물고기 모습으로 바뀌는 줄 뻔히 알면서도 ‘공주님(인어 할아버지)’이 이녁 몸에서 떼어낸 비늘을 기꺼이 받아서 혀 밑에 붙입니다. 그러고는 공주님하고 함께 바닷속으로 들어가지요.
바닷속을 마음껏 가르는 다로는 ‘바닷속이 어떤 곳’인지 처음으로 깨닫습니다. 바닷속에 있는 수많은 물고기하고 물풀이 들려주는 말을 ‘입을 안 써’도 마음으로 다 알아듣습니다. 공주님이 하는 말도 입이 아닌 마음으로 알아듣고, 다로도 마음으로 공주님한테 마음으로 말을 건넵니다. 뭍에서 사는 사람일 적에는 반드시 입을 열어야 말이 나왔는데, 게다가 뭍에서 살 적에는 ‘사람들이 입으로 하는 말’ 가운데 거짓말이 많았는데, 바닷속하고 뭍이 이렇게 다른가 하고 새삼스레 느껴요.
“이봐, 불로장생의 약이란 게 있긴 있어?” “너도 그거 찾고 있는 거 아니었어?” “뭔 소리야?” “인어 잡아놨잖아.” “어찌 그런 불경한 소리를. 잡아놓은 게 아니라 모셔둔 거다.” (11쪽)
‘내가 어떻게 그 말을 거역할 수 있겠어. 거역하면 내 안에 아버지가 사라져버릴 것 같단 말야.’ (28쪽)
그런데, 바닷속을 마음껏 가르다가 뭍으로 올라오니 어쩐지 얄궂습니다. 몸이 무척 무겁습니다.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듯이 바닷속에서 헤엄치며 지내다가 뭍으로 올라서서 한 발짝을 디디려 하니 아주 죽을 노릇입니다.
이때에 다로는 크게 하나를 배웁니다. 공주님이 왜 뭍에서 힘을 잃고 늙수그레한 할아버지 모습을 하는가 하는 대목을 제대로 알아차려요. 다로 스스로 몸으로 겪은 뒤에야 비로소 공주님이 겪는 아픔하고 슬픔을 제대로 느끼지요.
누구라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몸으로 겪지 않고서는 몰라요. 스스로 몸으로 겪지 않고서 ‘책으로 얻은 지식’이나 ‘남한테서 들어서 얻은 정보’로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몸으로 겪어야 똑똑히 알지요. 김치찌개 맛을 책으로 읽거나 이야기로 듣는대서 알까요? 집집마다 다 다른 김치찌개 맛을 집집마다 찾아가서 밥상을 받지 않고서야 알까요?
‘인어의 말을 알아듣겠어. 아니, 이건 말이 아냐. 그냥 느껴진다. 상대방의 의사가.’ (32쪽)
‘진짜 기분 이상하다. 서서히 인간의 몸으로 돌아오고 있어. 물 대신 공기가 코로 들어오고, 이마로 맛도 느껴지지 않아. 발을 내딛는 게 무거워. 바다에서는 조금만 힘을 줘도 길게 물살을 갈랐는데 온몸으로 느껴지던 감각이 죽고 있어. 바다에서는 물이, 생물들이 모두 말을 걸었는데,’ (58∼59쪽)
서로 다른 삶이니 서로 다른 말을 씁니다. 서로 다른 삶이기에 서로 다른 말을 쓰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아요. 이리하여, 우리는 자칫 다투거나 싸우고 맙니다. 서로 다른 삶이라는 대목을 잊은 나머지, 서로 다른 말이 마치 서로 얕보거나 깔보는 줄 잘못 생각하고 말아요. 서로 다른 삶이기에 서로 다른 말을 쓰는 모습은 서로 낯설지만 서로 새로울 수 있는 아름다운 이웃으로 나아가는 얼거리라는 대목을 놓치는 사람이 매우 많아요.
“혼자 있을 때는 늘 평온한 기분 속에 살았어요. 여기 와서 다로 씨를 만나서, 정말 여러 감정을 알게 되었어요. 얄밉다, 가증스럽다, 괘씸하다, 열 받는다, 열 뻗친다.” (118쪽)
“내가 어떻게 광야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느냐면, 내게는 광야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광야가 내게 속삭이는 모든 말은 다 사실이거든.” (135쪽)
만화책 《젤리장수 다로》는 푸름이에서 어른으로 나아가려는 앳된 다로가 몸소 삶을 부대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으로 새로 배우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김민희 님은 이 만화책을 무겁게 이끌지 않아요. 때와 곳에 알맞게 재미난 우스개를 섞고, 가벼운 말놀이를 벌입니다. 무뚝뚝하거나 어둡거나 힘겹게 어른이 되는 길이 아니라, 즐겁게 노래하듯이 어른으로 나아가는 길을 보여주어요. 나비처럼 가벼운 날갯짓이 되고, 새처럼 고운 목소리로 거듭나는 길을 가만히 보여줍니다.
삶을 꾸밈없이 바라보면서 스스로 즐겁습니다. 삶을 허물없이 마주하면서 스스로 의젓합니다. 삶을 가없이 헤아리면서 스스로 아름답습니다. 너와 나는 서로 다른 곳에서 서로 다른 어버이한테서 태어난 서로 다른 숨결인 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으면, 서로서로 곱게 아끼면서 새롭게 어깨동무하는 길을 슬기롭게 깨달을 만합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어린 다로도, 어른 다로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도, 저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4349.1.11.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