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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 - 격렬하기 짝이 없는
유복렬 지음, 세린.세아 그림 / 눌와 / 2015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배움책 36
아이들이 ‘어머니 일기’를 읽으며 자라다
― 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
유복렬 글
세린+세아 그림
눌와 펴냄, 2015.12.22. 13000원
한국말에 ‘아이키우기’나 ‘아이돌보기’는 따로 한 낱말로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으레 붙여서 쓰는 분도 있지만, ‘아이키우기’나 ‘아이돌보기’는 한국말사전에 안 나옵니다. 한국말사전에는 한자말 ‘육아(育兒)’만 나와요.
한자말 ‘육아’는 “아이 기르기”를 뜻합니다. ‘기르다’는 씨앗을 심어서 남새나 나무를 기르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고, 이러한 몸짓처럼 아이 마음속에 사랑이라는 씨앗을 말과 생각으로 심어서 기르는 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얼거리를 아우르면서 “사람을 가르치는 일”도 ‘기르다’로 나타내요. 다음으로는 몸을 다스리는 일이라든지 버릇을 몸에 익히는 일도 ‘기르다’라고 해요.
매일 벌어지는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외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셨다. “기저귀 못 떼서 학교 못 간 아이는 내 생전 본 적이 없다! 때가 되면 다 가리게 될 것을 왜 아이한테 쓸데없이 스트레스를 주고 야단들이냐!” (34쪽)
나는 아이의 말에 대꾸를 하려다 그만뒀다. 할 말이 없었다. 밥, 국, 반찬, 이것들을 한 상에 차려놓고 함께 먹는 우리 식습관이 프랑스에서는 아무렇게나 ‘돼지처럼 먹는’ 식습관으로 취급받은 것이다. (55쪽)
나는 아이를 하나씩 낳아서 두 아이하고 함께 사는 동안 ‘아이키우기·아이돌보기·육아’를 늘 새롭게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마땅한 노릇일 텐데,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지 않고서는 키우기이든 돌보기이든 기르기이든 알 길이 없어요. 아이를 낳아서 함께 살기에 비로소 이 아이들을 어떻게 보살피거나 아끼거나 사랑할 때에 즐거운 삶이 되는가를 알아요. 함께 살면서 늘 지켜보고 언제나 마주하는 동안 어버이로서 들려줄 이야기를 새롭게 깨닫습니다. 함께 살면서 밥을 함께 먹고 잠을 함께 자는 동안 어버이로서 보여줄 몸짓을 새롭게 알아차려요. 함께 살면서 말을 섞고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버이로서 어떤 사람으로 슬기롭게 서는 마음이 될 때에 아름다운가 하는 대목을 새롭게 익힙니다.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두 아이를 낳아 돌본 나날을 되새긴 이야기를 담은 《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눌와,2015)를 읽으면서 키우기나 돌보기나 기르기란 무엇인가 하고 다시금 되짚습니다. 우리는 어른으로서 어버이가 되었기에 아이를 낳습니다만,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밥만 ‘얻어먹’거나 옷만 ‘받아입’거나 잠만 ‘한집에서 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아이는 어버이가 보여주는 모든 몸짓을 고스란히 바라보면서 배워요. 아이는 어버이가 들려주는 모든 말씨를 낱낱이 들으면서 따라하지요.
외교관 어머니를 둔 아이라면 아주 마땅하고도 부드러이 여러 외국말을 듣고 자랍니다. 이러면서 여러 이웃나라 삶과 사람을 마주하고요. 여러 외국말을 듣는 대서 더 열린 마음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러 외국말은 그저 여러 외국말일 뿐이고, 어버이로서 열린 마음으로 살림을 가꿀 적에 아이는 어버이한테서 열린 마음을 익힐 수 있어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이가 프랑스에서 겪었던 힘겨운 과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단호한 태도는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68쪽)
프랑스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 가하는 가장 큰 벌은 엉덩이 때리기 같은 게 아니라 바로 ‘디저트 생략’이다. (87쪽)
《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를 읽어 보면, 이 책을 쓴 유복렬 님은 외교관으로서 몹시 바쁩니다. 그래서 갓난쟁이인 아이들을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한테 맡기면서 이녁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러고 나서는 퍽 이른 나이부터 유치원에 다녀야 하고, 어린이집을 거쳐서 학교를 다니지요.
유복렬 님은 어머니 자리에 있습니다만, 집 바깥에서 보내는 겨를이 훨씬 긴 터라, 아침하고 저녁(웬만하면 밤)에서야 아이들 얼굴을 마주합니다. 아이를 가르치는 몫은 시설(유치원·어린이집)하고 학교가 맡지요. 다만, 아이들이 시설하고 학교에서 배우더라도 유복렬 님은 집에서 할 일을 젖혀두지 않아요. 집에서는 집살림이 있고, 집은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보금자리입니다. 프랑스를 돌고 알제리에 머물다가 미국에도 가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삶이라 하더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유복렬 님네 아이들은 ‘집 아닌 보금자리’에서 삶하고 살림을 새로 가꾸는 하루를 누려요. 비록 아이들로서는 좀 고단할 수 있는 터전이 된다 할 터인데, 아이들은 아예 새로운 말을 써야 하는 곳에 가더라도 의젓합니다. 그냥 받아들여서 그냥 배우거든요.
한국말에서 프랑스말로 넘어가든, 프랑스말에서 다시 한국말로 넘어오든, 한국말에서 또 프랑스말로 넘어가거나 영어로 건너뛰든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아이들은 저희 어머니하고 아버지하고 함께 짓는 보금자리에서 스스로 씩씩하게 일어서는 길을 슬기롭게 알아요. 그래서 아이들 나름대로 새로운 외국말을 즐겁게 배우고, 새로운 생각을 기쁘게 키우면서, 어머니랑 아버지하고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하루를 누립니다.
우리나라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일회용 물건을 쓰지 못하도록 하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일회용이라는 개념 자체가 싫어서 일회용 물건을 쓰지 않는다. 좋은 물건을 사서 반질반질하게 손때가 묻도록 오래 쓰는 것을 좋아하고, 또 남이 그렇게 아끼면서 썼던 중고품을 사서 쓰는 것을 전혀 꺼려하지 않는다. (116쪽)
“왜 다음 학년에 배울 것을 미리 공부하는 거죠? 그럼 학교에서는 뭘 하죠?” 아이의 얼굴은 정말 심각해 보였다. “아마 좀 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겠지. 선행 학습을 한다고 해도 완전히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면 확실하게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럼 학교에서는 복습을 하는 거네요. 좀 이상해요.” (121쪽)
어느 나이에 꼭 무엇을 알아야 할 교육이나 육아는 아니라고 느낍니다. 모든 아이가 다 다르니까요. 다만, 나이에 맞추어서 하는 교육이나 육아는 아니더라도 늘 지키거나 다스려야 할 대목은 하나가 있어요. 바로 사랑입니다. 아이가 어느 나이라 하더라도 어버이는 늘 사랑으로 아이를 마주할 노릇이에요.
유복렬 님이 ‘떠돌이’ 같은 외교관 노릇을 하며 여러 나라를 서너 해마다 올겨야 하지만, 아이들은 어머니를 떠돌이로 여기지는 않아요. 그저 어머니인걸요.
한곳에 뿌리를 내려 내처 살기에 아이들이 더 잘 배우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다니기에 더 열린 마음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언제나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어떤 몸짓하고 눈빛하고 마음하고 사랑으로 아이를 마주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한곳에 뿌리를 내리며 살더라도 어버이 마음이 흔들리면 아이들도 흔들려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도 어버이 마음이 씩씩하고 의젓하면 아이들도 씩씩하고 의젓하지요.
《외교관 엄마의 떠돌이 육아》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살가운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대목이로구나 싶어요. 어머니로서(또 아버지로서) 수많은 어버이가 아이하고 함께 나눌 삶이란 한결같이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보듬는 살림입니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 눈빛을 나누며, 서로 손을 맞잡을 수 있는 보금자리를 가꾸면 돼요.
일본어를 배우는 세린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데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냥 배우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것이다. (152쪽)
아이들은 자기가 속한 환경에서 또래와 어울려 놀면서 각자의 방법으로 언어를 체득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늦다고 조급해 할 필요도, 오류가 많다고 잔소리할 필요도 없다. (183쪽)
아이는 어버이를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어버이도 아이를 바라보면서 배웁니다. 어버이는 아이한테 새로운 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르칩니다. 아이는 어버이한테 새로운 웃음이랑 노래랑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새로운 사랑을 가르쳐요.
어버이만 아이를 가르치지 않고, 아이만 어버이한테서 배우지 않아요. 예부터 어느 나라 어느 겨레에서도 ‘키우기·돌보기·기르기’는 함께 주고받는 사이가 될 때에 이루어졌지 싶습니다.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아이를 키우거나 돌보거나 기를 적에는 즐겁게 웃으면서 가르치고 기쁘게 노래하며 배우는 동안 이루리라 느껴요.
이 책을 쓰는 내내 아이들은 엄마가 자기들 이야기를 쓴다는 사실에 신나 보였다. 꽤 관심을 보이며 이따금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둘이 붙어 앉아 엄마는 모르는 자기들끼리의 속내를 서로 주고받기도 했다. 내가 초고를 완성하여 원고를 건네자 두 아이 모두 끝까지 읽어 주었다. (238쪽)
외교관으로 일하며 무척 바쁠 유복렬 님이지만 늘 아이를 헤아리는 하루이기에 아이들이 더없이 사랑스레 잘 자라리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이쁘장한 육아일기를 쓰면서 아이한테 읽히기에 아이들은 어버이한테서 새로운 숨결을 바라보고 배우고 마주하면서 즐겁게 자라겠네 하고 느껴요.
어버이는 어떻게 육아일기를 쓸 수 있을까요? 아이한테서 배우니까 육아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어버이는 육아일기를 왜 쓸까요? 아이한테서 날마다 새롭게 배우는 이야기를 가슴에 품으면서 짠한 눈물이랑 웃음이 피어나기에 육아일기를 씁니다.
오늘 어버이가 쓰는 육아일기에는 오늘 아이하고 마주한 삶을 되새기면서 즐겁게 배운 이야기가 깃듭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읽을 ‘어머니 육아일기’는 앞으로 아이들이 새로운 어른이 될 무렵 저희 어릴 적이랑 발자국을 되돌아볼 뿐 아니라 저희 어머니가 어떠한 마음으로 저희를 사랑하며 돌보았는가 하는 마음자리를 살피는 길잡이가 되어요. 나도 시골집에서 두 아이랑 날마다 새로운 하루를 열고 닫으면서 살몃살몃 육아일기를 씁니다. 나 스스로 우리 아이들한테서 새롭게 배운 이야기를 쓰는데, 이 이야기는 머잖아 우리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 읽으면서 새로운 삶이랑 사랑을 배우며 슬기롭게 일어서는 밑돌이 될 수 있겠지요. 4349.1.10.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