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페 일기 3 - 행복이란, 분명 이런 것 다카페 일기 3
모리 유지 지음, 권남희 옮김 / 북스코프(아카넷)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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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 읽는 사진책 223



곁에 있는 고운 사람을 찍는 사진

― 다카페 일기 3

 모리 유지 사진·글

 권남희 옮김

 북스코프 펴냄, 2012.12.10. 15000원



  ‘사진’을 말할 적에 문화나 예술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테고, 기록이나 보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테며, 다큐멘터리나 패션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사진’이라고 하면 “즐거운 자리를 오래도록 그릴 수 있도록 웃으면서 찍는 일”이라고 떠올리는 사람이 가장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진을 다루는 잡지나 매체를 보면 ‘생활사진’은 거의 안 다루거나 아예 안 다루거나 아주 적게 다루기 일쑤입니다. 여느 사람이 수수한 자리에서 기쁜 사랑을 꽃피우는 이야기를 담는 사진은 ‘사진’으로 여기지 않기 일쑤이지 싶어요. 문화나 예술쯤 되어야 사진으로 여긴다든지, 기록이나 보도를 하려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다큐멘터리나 패션을 헤아리는 전문 작가여야 비로소 사진을 한다고 여기기 일쑤로구나 싶어요.



2009년 2월 21일 토. 바다. 매화를 찍다.

2009년 4월 28일 화. 유치원 등산에 참가.



  모리 유지 님이 빚은 사진책 《다카페 일기》(북스코프,2012) 셋째 권을 읽으면서 사진을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다카페 일기》는 모두 세 권이 나왔습니다. 첫째 권은 2008년에 한국말로 나왔고, 둘째 권은 2009년에 한국말로 나왔으며, 셋째 권은 2012년에 한국말로 나왔어요.


  이 사진책을 선보인 모리 유지라는 일본사람은 ‘전문 사진가’라 여길 수 있으나, 그저 ‘아이를 사랑스레 사진으로 찍고 싶은 사람’ 가운데 하나이리라 생각합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다카페 일기》라는 사진책에 흐르는 사진은 빼어난 솜씨나 뛰어난 재주를 드러내는 사진을 그러모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큰아이가 태어난 삶을 찬찬히 아로새기고, 작은아이가 찾아온 이야기를 가만히 되새기며, 집안에서 함께 사는 개가 차츰 느는 얼거리도 곰곰이 돋을새김하는 이야기가 이 사진책에 나와요.


  다시 말하자면, 《다카페 일기》라는 사진책에는 ‘이야기가 흐르는 사진’만 나옵니다. 이야기가 흐르지 않는 사진은 안 나와요. 멋을 부리는 사진이라든지, 그럴듯해 보이는 사진은 이 사진책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모리 유지 님을 둘러싼 사랑스러운 한집 사람들 이야기가 새록새록 피어나는 사진이에요.




2009년 5월 16일 토. 바다가 만화를 읽어 주는 동안 잠이 들어 버렸다.

2009년 6월 9일 화. 좁은 곳에 앉기.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사진을 문화로 볼 수도 있고 예술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기록이나 역사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진을 다큐멘터리나 패션으로 볼 수도 있을 테지요. 그러나, 사진이라고 하면 저로서는 맨 먼저 ‘곁에 있는 고운 사람을 찍는 사진’일 때에 사진다운 사진이 되리라 느낍니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언론이나 역사나 사회나 문화나 예술이나 상업이라는 틀보다도 먼저 ‘삶’이라는 자리에서 수수한 여느 사람들이 이녁 이야기를 한결같이 아끼면서 언제나 사랑하려는 숨결로 빚는 ‘빛그림’이라고 할 만하다고 느낍니다.


  값비싸거나 값진 장비나 기계가 있어야 ‘아이 사진’을 더 잘 찍지 않습니다. 더 뛰어난 장비나 기계를 어깨에 걸쳐야 ‘곁님이나 애인 사진’을 더 잘 찍지 않아요. 중형사진기나 대형사진기쯤 있어야 ‘내가 사랑하는 풍경 사진’을 더 잘 찍지 않지요.


  사랑으로 다가서려는 마음이 있을 적에 비로소 즐겁게 찍는 사진입니다. 즐겁게 찍고 사랑스레 찍는 사진이라면, 이렇게 찍은 사진은 모두 ‘잘 찍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사랑으로 다가서면서 찍는 사진에는 늘 이야기가 흐르니까요.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찍는 사진에도 노상 이야기가 흘러요.




2009년 7월 13일 월. 유치원 수영장에서 배운 발차기를 보여주는 하늘.

2009년 12월 17일 목. 카펫 위에서는 비눗방울이 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 하늘의 의기양양한 짝다리.



  사진이라는 갈래를 더 헤아린다면, 보도사진이나 예술사진에도 ‘이야기가 있을’ 때에 한결 돋보입니다. 이야기는 없이 ‘충격스러운 모습’만 보여주거나 ‘멋들어지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이 같은 사진은 다시 들춰보기 어려워요. 처음에는 뭔가 대단하다고 느낄 ‘충격스러운 모습’도 한 번 보고 두 번 보는 사이 충격스러움은 사라집니다. 멋들어진다는 모습도 ‘더 멋들어진다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있으면 그만 시들시들해져요.


  사진책 《다카페 일기》를 다시 헤아려 봅니다. 이 사진책에 깃든 사진은 예술도 아니고 문화도 아니며 보도나 기록이나 다큐멘터리나 패션도 아닙니다. 그저 삶인 사진입니다. 더 뛰어나지도 않지만 덜 무르익거나 떨어지는 사진이 아니에요. 오직 사랑이 흐르는 사진입니다.


  사랑이 흐르는 사진은 보면 볼수록 감칠맛이 나요. 사랑으로 빚은 사진은 세월이 흐르고 흐를수록 더욱 빛나요. 사랑을 담아서 즐겁게 찍은 사진은 언제까지나 가슴에 품으면서 웃음꽃을 피우고 꿈노래를 길어올리지요.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카페 일기》라는 사진책을 좋아해 줄 수 있던 바탕에는 ‘멋지게 찍은 훌륭한 사진’이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으로 다가서면서 사랑을 담으려 한 사진’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2010년 2월 18일 목. 콜라만 마시던 바다가 드물게 따뜻한 홍차를 주문. 집에 돌아오니 39도 2분.

2010년 4월 19일 월. 날지 못하는 원인은 점프가 부족해서라고 착각하는 하늘.



  모리 유지 님은 책끝에 “소중한 사람을 찍은 사진은 단지 그 사실만으로도 소중한 사진입니다(뒷이야기).” 하고 밝힙니다. 참말 이 이야기 그대로 사진을 바라볼 수 있을 적에 누구나 즐겁게 ‘내 사진’을 찍을 만하리라 생각해요. 온 나라 사람들이 사진기를 손에 쥐든 손전화를 손에 쥐든 태플릿을 손에 쥐든 그야말로 즐겁게 사진을 찍어요. 사랑하는 님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은 ‘예술을 한다’거나 ‘문화를 한다’거나 ‘기록을 한다’는 생각이 아니에요. 오늘 이곳에서 마주보는 님을 사랑으로 찍어서 더욱 기쁜 하루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진가입니다. ‘전문 사진가(전문가)’가 아니라 ‘삶을 사랑하는 사진가’입니다. 값싸거나 가벼운 사진기로도 얼마든지 살을 사랑하면서 이야기 한 자락을 사진으로 담는 사진가입니다. 사진기가 없으면 ‘손가락 사진기’로 찰칵 찍어서 마음자리에 애틋하게 아로새길 줄 아는 ‘꿈 사진가’입니다. 434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6 - 사진비평/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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