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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원점 - 남과 북에서 바라본 휴전선과 판문점
구와바라 시세이 지음 / 눈빛 / 2013년 7월
평점 :
찾아 읽는 사진책 219
평화로 하나될 남북을 꿈꾸는 사진
― 분단원점, 남과 북에서 바라본 휴전선과 판문점
구와바라 시세이 사진
눈빛 펴냄, 2013.7.27. 12000원
1936년에 일본에서 태어난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1960년대부터 한국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이녁은 196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도사진’ 한길을 걸었고, 《보도사진가》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는 《격동한국 50년》이라는 이름으로 1965년부터 2015년까지 지켜본 한국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이리하여 2015년에 ‘이해선 사진문화상’을 받았습니다. 지난 쉰 해에 걸쳐 한국 사회를 사진으로 찬찬히 짚으면서 밝힌 보람을 기리는 셈이라고 봅니다.
쉰 해에 걸쳐 ‘한국을 사진으로 찍는 손길’은 여러모로 애틋합니다. 한국에 있는 사진가 가운데 한국을 쉰 해 동안 찬찬히 지켜보면서 담은 분은 얼마나 될까요? 어느 모로 본다면,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이웃을 찬찬히 바라보지 못하는 눈길은 아닐까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진가이기에 꼭 한국을 사진으로 찍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한국 사진가로서 ‘일본을 지켜보며 사진으로 찍을’ 수 있어요. 중국이든 인도이든 티벳이든 미국이든 프랑스이든 얼마든지 두고두고 지켜보며 사진으로 찍을 만합니다. 다만, 오늘 한국에서 구와바라 시세이 님 사진을 살펴보면서 이 한 가지를 한국사람 스스로 물어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먼저, 한국에서 사진을 가르치거나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국을 얼마나 잘 아는가 하고 물어보야지 싶습니다. 한국에서 사진을 비평하는 사람은 서양 이론이나 예술 이론에 앞서, 한국에 있는 이웃을 얼마나 알거나 한겨레가 걸어온 발자국을 얼마나 아는가 하고 물어보아야지 싶습니다.
서울에서 미군 전용버스를 타고 온 한국 기자들은 북측 인사들과는 거의 대화를 않고 있었다. 북측 기자가 나를 일본 기자라 보고 일본말로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일본 담배와 자기네 북쪽 담배와 바꾸자고 하는 일도 있었다. 그 북쪽 담배를 서울로 가지고 와서 잡지사의 편집부원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사진책 《분단원점, 남과 북에서 바라본 휴전선과 판문점》(눈빛,2013)을 읽습니다. 이 사진책은 ‘분단이 비롯하는 첫자리(원점)’로 판문점을 꼽으면서 판문점 둘레를 가만히 살핍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한국사람이 아닌 일본사람이기에 남녘에서도 사진을 찍고 북녘에서도 사진을 찍습니다. 이 대목에서 한국 사진가는 여러모로 슬픕니다. 한국(남북녘 모두) 사진가는 판문점에서조차 사진을 마음대로 찍기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한국(남북녘 모두) 사진가는 남녘이나 북녘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하더라도, 남녘에서 북녘으로 간다든지 북녘에서 남녘으로 와서 사진을 찍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일본사람이기 때문’에 남녘과 북녘을 조금은 홀가분하게 드나들면서 두 갈래 눈썰미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한국 사진가로서는 ‘마음만 있을 뿐’이요 ‘몸으로 움직여서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일본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찍었다고 할 만합니다.
《분단원점》을 살펴보면, 남녘에 있다는 ‘자유의 마을’을 담은 사진이 있습니다. 북쪽에서 훤히 내다보이는 자리이기에 이름부터 ‘자유의 마을’처럼 붙였을 테지요. 여느 사람은 드나들 수 없는 마을이라니,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일본 취재기자’라는 이름으로 들어갔을 텐데, 예나 이제나 남녘 정부에서는 북녘한테 ‘남녘은 이렇게 자유로운 곳’이라고 알리려는 뜻에서 이 마을을 비무장지대 안쪽에 꾸민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저 수수하게 살림을 짓습니다. ‘자유’ 마을이건 ‘안 자유’ 마을이건 아이들이 태어나고, 아이들이 뛰놀며, 아이들이 어버이 곁에서 웃어요. 고운 옷차림이든 허름한 옷차림이든 대수롭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정치권력자처럼 정치나 권력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학력이나 재산을 가리면서 놀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놉니다.
그런데 남북녘에서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저마다 아이들한테 총이나 칼을 손에 쥐고 춤추도록 시킵니다. 정치권력을 거머쥔 이들은 남녘에서도 북녘에서도 ‘저쪽에 나쁜 놈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저 너머에 ‘이웃이 산다’거나 ‘동무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아요. ‘유사시(전쟁이 터질 때)’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많이 ‘적군 죽이기’를 하라고 윽박지르지요.
북측 실태는 잘 알 수가 없지만, 한국의 ‘자유의 마을’은 세금이 부여되지 않는 특수한 마을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두 마을은 결국은 남북 간 최전선의 견본과 같은 ‘쇼윈도’라고들 했다.
평화로 하나될 남북을 꿈꾸는 사진이 될 수 있을까요? 사진 한 장은 남북녘에 평화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사진을 찍는 사람은 이 사진으로 남북녘에 골고루 평화로운 바람을 흩뿌리는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평화를 헤아리며 쉰 해쯤 사진을 찍으면, 남녘이나 북녘 모두 조금이나마 평화를 바라보아 줄 수 있을까요?
《분단원점》에 실은 사진 가운데 ‘판문점 회담’ 사진을 보면, 남녘이나 북녘에서 ‘별을 단 군인’이 모여서 담배 연기를 내뿜는 모습이 있습니다. 이른바 ‘평화회담’이라고 할 터인데, 이런 모임자리가 그리 평화스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름은 평화라 하지만, 막상 ‘전쟁 훈련을 이끄는 사람들’만 모임자리에 앉았기 때문입니다.
여느 때에 늘 전쟁과 전쟁 훈련과 전쟁 무기만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인 ‘평화회담’은 참말 평화로 나아갈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참다이 ‘평화회담’을 하자면 대통령이나 장교가 아닌, 수수한 여느 사람이 모여야 하지 않을는지요. 정치 우두머리나 군대 우두머리는 서로 눈치를 보면서 한 발짝도 물러설 낌새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와 달리 수수한 여느 사람은 어깨동무나 두레나 품앗이를 하지요.
평화를 생각하자면, 평화를 찾자면, 평화를 노래하자면, 이리하여 평화를 이루자면 정치도 권력도 무기도 전쟁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이른바 ‘계급장을 떼고’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평화회담을 할 만합니다. ‘돈도 이름도 힘도 내려놓고’ 모여야 비로소 평화로 가는 길을 이야기할 만하리라 느낍니다.
사진이란, 사진 한 장이란, 사진책 한 권이란, “분단이 비롯한 첫자리”를 밝히는 사진책을 보여주려고는 사진가 한 사람이란, 바로 이러한 대목을 짚는구나 싶습니다. 분단이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바로 정치권력자한테서 비롯합니다. 분단은 어디에서 태어났을까요? 바로 군인과 전쟁 훈련과 전쟁 무기에서 태어나지요. 총도 칼도 대포도 미사일도 남북녘이 저마다 서로서로 겨누는 오늘날 모습에서는 어느 구석에서도 평화가 태어나지 못하고, 그저 분단만 흐를 뿐입니다.
독일과 베트남은 통일되어 냉전은 이제 소멸되고 말았다. 더욱이 사회주의 국가와 맹주였던 소련도 와해되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였건만, 한반도에서는 이제는 화석이 되어 버린 냉전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구와바라 시세이 님이 찍은 사진이 ‘역사를 바꾸’지는 않으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구와바라 시세이 님 스스로도 ‘역사를 바꿀’ 뜻으로 사진을 찍는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면, 구와바라 시세이 님은 왜 쉰 해에 걸쳐 한국을 이토록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끔찍한 분단’을 자꾸 사진으로 찍을까요?
한국사람 스스로 여느 때에 제대로 깨닫지 못하는 삶을 새롭게 보여주려는 뜻으로 분단 사진을 보여주려는 마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판문점 언저리 사진으로 엮은 《분단원점》입니다만, 한국 사회를 둘러보면 어디에서나 군인이 있고 군대가 있습니다. 남녘도 북녘도 군인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젊은이가 많습니다. 해병대를 나왔다는 분들은 마흔이나 쉰이나 예순 살이 되어도 군인옷을 벗을 마음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군대를 나온 사내는 남녘이나 북녘 모두 군번에 따라 거수경례를 붙이는 바보스러운 계급 질서를 아직 그대로 이어갑니다.
삶을 노래하지 않고 군대 이야기를 나누는 한국 사회입니다. 사랑을 가꾸지 않고 전쟁 무기를 더 키우려고 하는 한국 사회입니다. 꿈을 북돋우는 사회 얼거리가 아니라, 군부대를 더 늘리고야 마는 한국 사회입니다. 한국 사회가 분단과 냉전이라는 어리석은 껍데기를 벗지 못하는 까닭은 스스로 ‘전쟁 비용 투자’에 지나치게 기울어진 탓이 아닐는지요. ‘전쟁 비용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전쟁이 난다는 두려움을 정치권력자가 퍼뜨리면서, 남녘도 북녘도 더욱 무시무시한 전쟁 무기와 훈련이 뿌리를 내리고, 이렇게 늘어난 전쟁 무기와 훈련을 버티느라 어마어마한 돈을 해마다 더 많이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북한을 방문해서 북한 쪽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북한 병사에게 렌즈를 향했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긴박감은 보이지 않았다. 한국 쪽에서 판문점을 방문해서 북한 병사를 촬영했을 때에 보이던 날카로운 시선의 긴장감은 전혀 없었다.
사진책 《분단원점》에 실린 ‘철길이 끊어진 곳으로 빨래광주리를 이고 가는’ 사진이 무척 곱습니다. 철길이 끊어진 풀밭에 넌 빨래가 눈부시게 빛납니다. 참말 이 사진처럼, 사람들은 늘 빨래를 하고, 밥을 짓고, 아기한테 젖을 물리고, 씨앗을 심고, 나락을 거두고, 집을 짓고, 두레를 하고, 일노래를 부르고, 아이들은 멱을 감고, 감을 따고, 열매를 나누면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꿉니다. 남녘하고 북녘을 가로지르는 쇠가시울타리는 이처럼 수수한 여느 삶을 짓밟습니다. 그리고, 남북녘이 바라 마지 않는 평화란 바로 이처럼 ‘풀밭에 빨래를 너는 눈부시게 빛나는 삶과 살림’을 찾으려는 몸짓이 되어야지 싶습니다.
제식훈련은 아무것도 낳지 않아요. 그러나 씨앗을 심고 김을 매는 손길은 삶을 낳습니다. 온갖 무기로 젊은이를 옥죄는 전쟁 훈련은 아무것도 낳지 않아요. 그러나 아이를 낳고 마을을 북돋우며 밥을 짓는 손길은 살림을 아름답게 낳습니다. 판문점을 열고, 쇠가시울타리를 걷고, 총칼을 녹여서 호미와 쟁기로 바꾸고, 지뢰 묻힌 땅을 짙푸른 숲으로 가꾸고, 군인 아닌 젊은 일꾼으로 이 나라를 살찌우려 할 적에 비로소 분단이나 냉전을 가뭇없이 녹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348.12.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사진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