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논하다 論


 인생을 논하다 → 삶을 얘기하다 / 삶을 말하다 / 삶을 읊다

 국내외 정세를 논하면서 → 나라 안팎 정세를 말하면서

 시비를 논하다 → 옳고 그름을 말하다 / 옳고 그름을 따지다

 남의 잘못에 대해 논하기 전에 → 남이 한 잘못을 말하기 앞서


  ‘논(論)하다’는 “1. 의견이나 이론을 조리 있게 말하다 2. 옳고 그름 따위를 따져 말하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한국말로는 ‘말하다’를 ‘論하다’ 같은 외마디 한자말로도 적는 셈입니다. 그런데 “대선을 논하다”라든지 “문학을 논하다”라든지 “예술을 논하다”처럼 ‘論’이라는 한자를 쓰려고 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시론(時論)’이나 ‘정론(正論)’이나 ‘여론(輿論)’이나 ‘언론(言論)’ 같은 자리에 ‘論’이라는 한자가 깃듭니다. 더군다나 옥편에서 ‘論’을 살피면 첫째 풀이가 “논할 논”이에요. 이래서야 한국말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옥편을 더 들여다보면 “3. 말하다 5. 따지다 6. 문제 삼다” 같은 풀이를 더 엿볼 수 있습니다.


  바탕은 ‘말하다’입니다. 이 다음으로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수수하게 ‘말하다’로만 적어도 될는지, ‘따지다’나 ‘살피다’나 ‘가리다’를 넣으면 될는지, ‘이야기하다·얘기하다’를 넣으면 될는지, ‘짚다’나 ‘다루다’나 ‘읊다’를 넣으면 될는지 헤아려 줍니다.


  대선이나 문학이나 예술은 말할 수 있고, 밝힐 수 있으며 따질 수 있습니다. 짚을 수 있고 얘기할 수 있으며, 살필 수 있어요. ‘시론·정론·여론·언론’ 같은 낱말은 즐겁게 쓸 수 있기도 하고, 저마다 나름대로 새로운 이름을 붙여 볼 수도 있습니다. ‘시론’이라면 ‘오늘 말’이나 ‘밝은 말’로 쓰면 재미있고, ‘정론’이라면 ‘옳은 말’이나 ‘곧은 말’로 써도 재미있습니다. 4348.12.5.흙.ㅅㄴㄹ



사랑을 논할 자격이 없어요

→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어요

→ 사랑을 말할 만하지 않아요

→ 사랑을 말할 수 없어요

《서갑숙-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엠엔비,1999) 272쪽


구체적으로 논할 때

→ 하나하나 말할 때

→ 낱낱이 살필 때

→ 꼼꼼히 이야기할 때

《존 아일리프/이한규·강인황 옮김-아프리카의 역사》(이산,2002) 230쪽


이 문제를 논했는데

→ 이 문제를 말했는데

→ 이 일을 얘기했는데

→ 이 일을 살폈는데

→ 이를 다뤘는데

→ 이를 따졌는데

《오다 마코토/양현혜·이규태 옮김-전쟁인가 평화인가》(녹색평론사,2004) 44쪽


담배가 흡연자에게 끼치는 영향을 논했는데

→ 담배가 흡연자한테 끼치는 영향을 말했는데

→ 담배가 흡연자한테 끼치는 영향을 따졌는데

《에릭 번스/박중서 옮김-신들의 연기, 담배》(책세상,2015) 96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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