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집안에 빨래를 너는 철



  늦가을이 차츰 저물면서 겨울이 코앞이다. 이제 큰아이는 “겨울이야. 쉬 하러 살짝 밖에 나갔다가 들어와도 손이 차.” 하고 말한다. 이런 날에는 볕이 곱게 내리쬐더라도 바람이 싱싱 불면 빨래가 영 안 마른다. 해가 떨어지기 앞서 마당에서 빨래를 걷어야 하고, 덜 마른 옷가지를 집안 곳곳에 걸거나 널거나 펼쳐야 한다. 바야흐로 집안에 빨래를 너는 철인데, 아버지가 혼자서 바삐 빨래 널 자리를 살펴서 옮기면, 어느새 큰아이가 일손을 거들겠다면서 나선다. 작은아이는 스스로 일손을 거들겠노라 먼저 나서는 일이 거의 없다. 작은아이는 마냥 놀기를 바라는데, 놀이에 온마음을 쏟으니 둘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거의 못 느낀다.


  바삐 일손을 놀리는 모습을 느끼고는 한손을 거들겠노라 하는 아이는 어떠한 숨결이요 넋이며 마음인가 하고 문득 헤아려 본다. 빨래를 곳곳에 걸다가 살짝 일손을 쉬면서 사진기를 잡으며 살림순이를 바라보면서 오늘 이곳에서 내가 누리는 삶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하고 새삼스레 되새긴다. 의젓한 아이가 의젓한 어버이를 키운다. 씩씩하고 야무진 아이가 씩씩하고 야무진 어버이를 기른다. 4348.11.26.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빨래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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