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연필
음성에 계신 할아버지가 올 설날에 큰아이한테 연필 한 줌하고 연필주머니를 선물로 주셨다. 연필주머니에 든 연필을 보며 ‘할아버지다운 연필이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곰곰이 더 헤아리니 알록달록 무늬나 그림이 깃든 연필은 알이 잘 부러진다고 느낀다. 생김새가 투박하거나 수수한
연필은 알이 한결 야무지거나 단단했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이 연필은 ‘아버지 연필’이라 하고, 저 연필은 ‘할아버지 연필’이라 하며, 고 연필은 ‘보라 연필’이나 ‘벼리 연필’이라 한다.
문방구에서 누가 샀느냐라든지 누가 선물로 주었느냐에 따라 ‘아무개 연필’이라는 이름이 바뀐다. 다시금 헤아리면, 연필 한 자루를 쥐면서 누군가를
마음으로 그리는 셈이기도 하다. 마음으로 누군가를 그리면서 한결 즐겁게 손을 놀릴 수 있구나 싶다. ‘할아버지 연필’을 손에 쥐는 아이들은
할아버지가 나누어 주는 따순 손길을 느끼면서 글씨를 찬찬히 짓는다. 4348.11.2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