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집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목 옮김 / 산처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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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21



수수한 것을 그러모으는 손길이 사랑스러워

― 수집 이야기

 야나기 무네요시 글

 이목 옮김

 산처럼 펴냄, 2008.6.5. 18000원



  나는 아이들하고 함께 살며 ‘재미난 모으기’를 한 가지 합니다. 무엇인가 하면, 아이들이 빚은 글조각이나 그림종이입니다. 두 아이가 꼬물꼬물 놀린 글씨가 깃든 작은 종잇조각을 모으고, 두 아이가 저마다 저희 마음을 담아서 신나게 빚은 그림종이를 모아요.


  큰아이가 여덟 살을 누리는 올해를 돌아보면, 두 아이가 내놓은 글조각하고 그림종이는 퍽 많습니다. 작은 상자로 여럿 됩니다. 앞으로도 글상자나 그림상자는 늘어날 테지요. 온누리에 오직 하나뿐인 ‘재미난 모으기’이고, 이웃집에서는 이웃 어버이가 이웃 아이한테서 이러한 글조각이나 그림종이를 모을 만하리라 느껴요. 저마다 그야말로 온누리에 오로지 하나 있는 멋진 모으기를 할 수 있을 테지요.



물건을 사 모으는 데에 돈도 힘이 될 테지만, 그 이상으로 뜨거운 마음이 힘이다 … 사물에 대한 사랑은 솔직해야만 한다. 사물은 사람과 사람의 훌륭한 중개자다. 마음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기물을 매개로 해서 만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18, 24쪽)


좋은 물건은 흠집이 있어도 좋고, 나쁜 물건은 완전해도 나쁘다 … 사물이 존재하니까 선택한다기보다는, 선택됐기 때문에 사물이 존재한다는 쪽이 맞다. (44, 54쪽)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수집 이야기》(산처럼,2008)를 읽습니다. 이 책은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민예품’을 모으면서 겪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아직 사람들이 제 값어치를 알아보지 못하던 물건을 처음 만나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더없이 수수해서 아무도 문화재라고 여기지 않는 여느 사람들 옷감이랑 옷에 깃든 오래된 숨결과 손길이 얼마나 고운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잘못이다. 물건을 보기 전에 지식을 움직이면, 대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방해받게 된다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 지식으로 무언가를 계산하면, 그 지식으로 측정 가능한 범위 이내의 요소로 말미암아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이다. (71쪽)


부자들은 유명 작품이 아니면 사지 않을 만큼, 또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81쪽)



  일본사람 야나기 무네요시 님은 《수집 이야기》라는 책에서 ‘일본 민예품’을 그러모은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한국 민예품’을 그러모은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거의 없다 싶으나, 예용해 님은 ‘인간 문화재’ 이야기를 썼고, 《뿌리깊은 나무》라는 잡지가 ‘한국 민예품’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러면 요즈음에도 이렇게 ‘한국 민예품’ 이야기를 다루거나 쓸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가만히 헤아려 보는데, 아무래도 요즈음에는 ‘한국 민예품’ 이야기를 다루거나 쓸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살림살이를 집집마다 손수 지어서 썼으나, 오늘날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게에서 물건을 사다가 써요. 집집마다 다 다르게 가꾸거나 보듬는 살림살이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큼 이제는 ‘한국 민예품’을 이야기하기는 몹시 어려우리라 느껴요.



우리가 내심 탄복했던 물건들을 수집해서 앞에 늘어놓고 보았을 때, 그 대부분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다뤄지지 않던 민기들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103쪽)



  가만히 보면, 요즈음에는 ‘명품’이나 ‘진품’ 이야기를 다루는 글이 퍽 많습니다. 그리고, 수수한 살림살이 이야기를 다루는 글은 몹시 드물 뿐 아니라, 여러 회사에서 나온 공산품을 견주어서 따지는 글이 아주 많아요. 이른바 ‘상품평’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벌이는 몸짓이나 모습을 놓고 ‘관전평’을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스스로 짓는 삶이나 살림이 사라지면서, 수수한 이야기가 사라지는 흐름입니다. 스스로 가꾸는 삶이나 살림이 자취를 감추면서, 수수한 사랑과 꿈을 노래하는 숨결이 잊혀지는 흐름입니다.


  그래도 인터넷과 사진기가 널리 퍼지기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 이야기가 부쩍 늘어요. 지난날에는 누구나 흙을 일구었으니 굳이 이런 밭짓기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지도 않고 글로도 안 남겼다고 할 만한데, 오늘날에는 조그마한 텃밭에 씨앗을 심어서 손수 기르는 이야기를 사진으로도 찍고 글로도 남기는 사람이 많아요.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는 어린이책이나 어른책으로 두루 나옵니다.



잘못 보는 많은 사람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빈손으로 사물과 접하지 않기 때문이다 … 직관이 고마운 까닭은 망설임을 동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떤 명성 따위에 의지할 필요가 사라진다. (152쪽)


나는 너무도 행복했다. 이런 책과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는 현실에. 멋진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에. 그 아름다움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까지 주어졌다는 것에. 그리하여 그것을 원할 수 있고 신변 가까이에 둘 수 있을 만큼 좋은 환경에 있다는 것에. 더욱이 이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많은 친구들까지 있다는 것에. (223쪽)



  수수한 것을 그러모으는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이를테면, 젓가락이나 숟가락을 손수 나무를 깎아서 지을 수 있는 손길이 사랑스럽다고 느낍니다. 지난날에는 신 한 켤레도 손수 빚었어요. 옷이야 아주 마땅히 손수 지었고, 밥도 언제나 손수 지었지요. 집도 언제나 손수 지으면서 가꾸었지요.


  따로 전문가를 두지 않은 옛사람 삶입니다. 몇몇 전문가가 있는 삶이 아니라, 누구나 손수 삶을 짓는 삶이었기에, 참말 옛사람이 빚은 수수한 살림살이는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 모두 ‘멋지거나 사랑스러운 민예품’이 될 만했지 싶어요.


  어떤 솜씨를 뽐내려고 짓는 살림살이가 아니거든요. 뭔가 놀라운 재주를 부리려고 짓는 살림살이도 아니에요. ‘민예품’이란 수수한 사랑으로 수수한 손길을 뻗으면서 태어납니다. 여느 살림집에서 쓰는 살림살이는 수수한 꿈으로 수수한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하나하나 빚습니다.



자연에서 보자면 애초 그 같은 상하의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 저마다의 특색이 있기 때문에 이 흙에 순종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어떠한 흙이라도 그 나름대로 소생할 것이다. (251쪽)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다기라고도 불리는 각발은, 발견됐을 당시만 하더라도 일반 농민 집에서 닭모이를 담아 두는 그릇이었다고 나카니시 씨한테서 직접 그 사연을 들었다. (256쪽)



  야나기 무네요시 님이 쓴 《수집 이야기》는 그야말로 수수한 사람들이 지은 살림살이를 만난 기쁨을 노래하는 책입니다. 멋부리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노래가 흐르고, 꾀부리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이야기가 자랍니다. 멋내지 않은 살림살이에서 외려 멋이 흐르고, 꼼수가 없는 살림살이에서 더없이 환한 숨결이 자랍니다.


  앞으로 2050년이나 2500년 무렵이 되면 2000년대 첫무렵 요즈음 사람들이 쓰는 살림살이를 어떻게 바라볼 만할까요? 2000년대 첫무렵 요즈음 우리가 쓰는 살림살이는 참말 ‘살림살이’라고 할 만할까요, 아니면 어느 만큼 쓰다가 버릴 수밖에 없는 플라스틱 쓰레기라고 할 만할까요. 4348.10.3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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