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는 마을 - 좋은 삶을 살아낸 아미쉬 공동체의 기록
스콧 새비지 지음, 강경이 옮김 / 느린걸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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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87



우리가 사는 마을에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나

― 그들이 사는 마을

 스콧 새비지 엮음

 강경이 옮김

 느린걸음 펴냄, 2015.10.2. 13000원



  다섯 살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서 까마중을 훑습니다. 잠옷을 입은 채 까마중을 신나게 훑습니다. 곧 십일월이지만 우리 집 마당과 뒤꼍은 까마중밭입니다. 이 까마중은 참으로 재미있는데, 사람이나 새가 열매를 훑으면 자꾸자꾸 새 줄기가 오르거나 돋습니다.


  사람이나 새가 열매를 훑지 않으면 조금 자라다가 더 자라지 않아요. 작고 새까만 알을 훑으면 곧 새 줄기가 나오면서 천천히 하얀 꽃이 피고, 하얀 꽃이 지면서 푸른 알이 영글고, 푸른 알은 이내 보랏빛으로 바뀐 다음에, 곧 새까만 알로 거듭나요. 이리하여 이 까마중은 십일월을 지나서 십이월까지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까마중 열매를 먹고, 나는 까마중 잎사귀를 먹습니다. 아이들도 까마중잎을 먹지요. 왜냐하면, 까마중잎은 날풀로도 먹고, 반찬을 할 적에 함께 넣기도 하니까요.



정보고속도로가 미래의 물결이라면 저는 정보시골길을 만들어 여행자들이 더 느린 걸음으로, 더 빨리 진실에 닿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41쪽)


저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어요. “아버지, 저 말들을 없애고 다른 걸 이용하면 열 마리가 넘는 젖소를 키울 수 있어요.” 아버지의 대답은 늘 똑같았지요. “하지만 그러면 그 좋은 말똥거름을 얻지 못하잖니. 게다가 말 대신 트랙터를 쓰면 땅이 너무 굳어지고 만단다.” (47쪽)



  스콧 새비지 님이 엮은 《그들이 사는 마을》(느린걸음,2015)을 읽습니다. 이 책은 미국에 있는 아미쉬 마을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담는데, 〈플레인(Plain)〉이라는 잡지에 실은 글을 갈무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플레인〉이라는 잡지는 손으로 활자를 모아서 엮고, 나무판그림을 새기며, 햇볕힘을 쓰는 수동인쇄기로 찍는다고 해요. 더군다나 이 잡지를 받아보고 싶은 사람이 늘어나도 발행부수를 늘리지 않는다지요.


  더 많은 독자를 받아서 더 많은 돈을 벌겠다고 하는 잡지가 아니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알맞게 엮어서, 함께 나눌 이야기를 사랑스러운 이웃하고 조촐하게 주고받는다고 할까요.



평균적으로 1달러를 벌어야 60센트 어치 채소나 에너지를 살 수 있다. 그 정도의 돈을 벌기 위해서 더 많은 돈이 들어갈 때도 종종 있는데, 통근비나 옷 구입비까지 써야 하기 때문이다. (65쪽)


좋은 일을 하는 사람, 가치 있는 상품을 만드는 사람에게 우리 돈을 쓸 때 그들은 살아갈 힘을 얻는다. (67쪽)


휘발유 자동차는 마차만큼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런 재생불가능한 연료는 지상의 모든 사람이 전형적인 미국 시민처럼 낭비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 (85쪽)



  《그들이 사는 마을》은 이야기책입니다. 수수한 꿈을 수수한 사랑으로 가꾸어 수수한 삶으로 일구려는 사람들이 나눈 이야기를 모은 책입니다. 이 책에 실은 글이 처음 실린 잡지 〈플레인〉에서 ‘plain’은 ‘수수한’을 뜻한다고 하고, ‘꾸미지 않은’이나 ‘있는 그대로’를 뜻한다고도 합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이 이웃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이 말마디처럼 ‘수수한’ 노래이고, ‘꾸미지 않은’ 웃음이며,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바람결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수수한 노래일까요? 손수 흙을 가꾸는 하루가 수수한 노래입니다. 무엇이 꾸미지 않은 웃음일까요? 아이랑 오순도순 어깨동무하면서 놀고 일하고 살림을 짓는 하루가 꾸미지 않은 웃음입니다. 무엇이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바람결일까요? 하늘을 사랑하고 땅을 사랑하며 숲이랑 냇물이랑 바다랑 들을 모두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그대로 어우러지는 바람결입니다.



우리는 분명 건강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위기를 유발한 자들이나 치유한다는 자들이나 이 위기로부터 엄청나게 높은 수익을 올린다는 것이다. (107쪽)


왜 우리는 화학성분 없는 식품보다 무지방이나 무균식품을 훨씬 좋아할까? 왜 의료산업계는 흡연에 대해선 그토록 격렬히 반대하면서 항생제를 비롯한 약품을 육용동물에 대량 사용하고 유독 물질을 작물에 살포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가? (114쪽)



  수수한 사람은 도드라져 보이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은 도드라지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수수한 사람은 그저 하루를 찬찬히 짓습니다. 더 나아가려 하지 않고 뒤로 가려 하지도 않습니다. 언제나 차근차근 한 걸음씩 걷습니다. 한 걸음을 가만히 내딛고, 두 걸음을 새롭게 내딛습니다. 세 걸음을 웃으며 내딛고, 네 걸음을 노래하며 내딛어요. 다섯 걸음을 춤추며 내딛다가는, 여섯 걸음을 꿈꾸며 내딛지요.


  스스로 삶을 짓기에 수수할 수 있습니다. 수수함이란 꾸밈없음이기도 한데, 오늘 하루가 언제나 즐거우면서 새롭기 때문에 부러 꾸밀 까닭이 없습니다. 수수함이란 있는 그대로이기도 한데, 나 스스로 언제나 사랑스러운 살림을 가꾸기 때문에 애써 덧보태거나 겉치레를 해야 하지 않아요.


  잘나 보이는 옷을 입지 않습니다. 멋져 보이는 자동차를 몰지 않습니다. 대단해 보이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놀랍구나 싶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한 걸음을 차근차근 내딛으면서 천 리 길을 가듯이 한결같은 숨결이기에 수수합니다. 백 걸음을 한 걸음처럼 늘 첫머리를 돌아보기에 수수합니다.



기업식 농업에는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사고방식이 따라올 수밖에 없고 우리는 그런 관계를 피하고자 한다. (142쪽)


이곳 미국에서는 TV를 보고 싶다면 거의 모든 사람이, 심지어 교도소 수감자들도 볼 수 있다. 미국인은 하루 평균 세 시간 이상을 TV 앞에서 보내는데, 일하고 잠자는 것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셈이다. (168쪽)


고요를 채울 것이라곤 나의 목소리밖에 없었기에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이제 두 살이 된 딸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노래를 불러 주곤 했지만 그냥 이 노래 저 노래를 조금씩 불렀을 뿐이었다 … 무엇보다 나는 내가 노래 부르길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루 종일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세 살짜리 딸아이도 그렇다. (174∼175쪽)



  밥을 빨리 지어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즐겁게 밥을 지어서 먹으면 즐겁습니다. 밥을 많이 지어서 먹어야 하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기쁘게 밥을 차려서 알맞게 먹으면 기쁩니다.


  바깥에서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으려고 하면 막상 즐거움이나 기쁨을 찾지도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합니다. 오늘 내가 누리는 삶이 어떻게 즐겁고 얼마나 기쁜가 하고 돌아보면서 바라볼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즐거움이나 기쁨이 언제 어떻게 샘솟는가를 찾거나 느끼거나 압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노래하면 됩니다. 가수가 된 뒤에 노래를 부를 일이 아닙니다. 그저 내 목소리를 즐겁게 뽑아서 함께 노래하면 됩니다. 아이들하고 함께 악기를 켜면 됩니다. 전문 연주가로 된 뒤에 악기를 켜지 않아도 됩니다.


  선수처럼 잘 달려야 하지 않고, 선수처럼 자전거를 잘 타야 하지 않아요. 언제 어디에서나 홀가분하게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웃을 수 있으면 돼요. 멋진 올레길이나 둘레길을 찾아가서 관광이나 여행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사뿐사뿐 걸어서 마실을 하면 됩니다. 우리 집 마당을 가만가만 거닐면 됩니다.



자동차를 끌면 보험이나 면허증과 관련된 비용도 들어간다. 자동차 대신에 말과 마차를 이용해 지역에서 농사를 지으며 일한다면 멀리 떨어진 직장에 출퇴근할 때보다 수입이 수천 달러는 줄겠지만 사실상 돈이 더 많이 남는다. (214쪽)


여러 세대 동안 간단한 수공구만을 사용하던 평범한 사람들도 집에서 아이들과 연로한 부모님을 돌볼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이 모든 발명품과 노동 절약형 장비를 갖추고도 병든 부모님을 돌볼 시간이 없다. (232쪽)



  고단한 날에는 세탁기 힘을 빌어서 빨래를 합니다. 고단하지 않은 날에는 틈틈이 손빨래를 합니다. 나는 두멧시골에서 살고, 우리 마을 어귀에는 오래된 빨래터가 있기에, 아이들을 이끌고 빨래터로 가볍게 나들이를 와서 빨래를 할 만합니다. 빨래터에 물이끼가 끼면 막대솔을 어깨에 이고 노래하면서 찾아온 뒤에 신나게 빨래터를 치워요. 이러고 나서 물놀이를 하지요.


  수영장이나 워터파크라 하는 데도 재미있을 텐데, 빨래터도 재미있습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워서 마을 뒷산 골짜기로 나들이를 간 뒤에 그곳에서 골짝물놀이를 해도 재미있어요.


  해수욕장에 여름철에 맞추어 가야 즐겁지 않습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여느 바닷가에 가서 바닷바람을 쐬다가 도시락을 먹어도 즐겁습니다. 네 식구가 자전거를 천천히 달려서 바닷가 나들이를 해도 즐겁습니다. 함께 햇볕을 쬐고, 나란히 바람을 마시며, 다 같이 들내음을 맡으면 즐거운 하루입니다.



두 살짜리 딸 사라에게 물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니?” “아빠.” 이튿날에는 일곱 살인 딸 줄리아에게 물었다. “네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 뭐야?” “내 동생 사라.” (256∼257쪽)


오늘날 학교 교육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집단으로 모아 둔다고 사회성이 자라는 게 아니다. 우리가 도처에서 목격하듯 오히려 적대감을 키울 때가 많다. (269쪽)



  이야기책 《그들이 사는 마을》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아주 쉽습니다. 누구나 쉽게 하면서 누릴 수 있는 삶을 가만히 들려줍니다. 너도 나도 함께 사랑스러운 이웃이 되어 기쁘게 어깨동무하는 살림을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아이한테는 어머니나 아버지가 장난감이 될 만합니다. 거꾸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는 아이가 장난감이 될 만합니다. 아이는 어머니 등을 타거나 아버지 목을 타면서 놉니다. 어머니는 아이 배를 간질이면서 웃고, 아버지는 아이 궁둥이를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면서 노래합니다.


  학교는 졸업장을 따려고 다니지 않습니다. 학교는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기쁨이 흐르는 놀이마당이라고 할 만합니다. 집은 부동산이 아닌 보금자리요, 마을은 좋은 학군이나 첨단시설이 있는 데가 아니라 오순도순 이야기꽃이 피어나는 삶자리입니다.


  미국에 있는 이쁘장한 아미쉬 마을에서 피어난 이야기가 《그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책으로 태어난다면, 한국에 있는 어여쁘고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사는 마을” 같은 이야기가 조촐히 태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손으로 짓고, 사랑으로 지으며, 꿈으로 짓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알뜰살뜰 해맑게 태어날 수 있기를 빌어요. 4348.10.29.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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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2015-10-2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을 집단으로 모아둔다고 해서 사회성보단 적대감을 키울때가 많다는 말.. 리뷰보다가 오오 하고 멈춰지게 되었습니다.. 진짜 공감가는 말이네요! 수수하고 정말 플레인스럽게 살아간다면 모두가 행복감을 느끼며 욕심부리지 않고 살아갈 것 같네요ㅎㅎㅎ

숲노래 2015-10-29 20:32   좋아요 1 | URL
서로 아낄 줄 아는 아이(어른)들이 모인 자리일 때에 비로소
따스한 사랑이 흐를 수 있다고 느껴요.

그냥 집단으로 모아 놓으면...
이런 데에서 사회성을 키우기란 그야말로
어려운 노릇이나 말이 안 되는 노릇이지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