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리밭
고마리가 아주 잘 자란 물가를 걷는다. 북한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흐르는 골짝길 한쪽인데, 이 자리를 건드린 공무원이 없어서 아주 고맙게 수풀이 올망졸망 예쁘다. 우리 집 둘레에서 고마리를 보았으면 ‘아이 참 통통하니 맛있게 생겼네.’ 하면서 톡 따서 바로 먹었을 텐데, 골짝물이 흐르는 한쪽에서 만나는 고마리이기는 하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코로 살갗으로 바람을 마시며 기뻐하기로 한다. 다음에 고흥에서 고마리를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우리 집 뒤꼍이나 마당에까지 고마리가 씨앗을 퍼뜨려서 함께 살 수 있으면, 그때에는 고마리 잎이며 꽃도 밥상에 올리고 싶다.
생각해 보면, 풀밭은 풀내음이랑 풀바람을 늘 베푼다. 풀은 함부로 벨 일이 아니다. 풀밭은 풀짐승 밥상이기에 풀짐승을 헤아려서 고이 아낄 수 있어야 한다. 먹을 만큼 훑고, 쓸 만큼 베는 데에서 끝낼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오늘날에는 풀짐승한테 풀이 아닌 화학사료만 먹이다시피 하니까 풀밭을 어찌해야 할는지 모를 테지. 오늘날에는 시골에서 풀밭을 신나게 헤치며 놀 아이들이 없으니까 풀밭에 함부로 농약을 마구 뿌릴 테지. 4348.10.18.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꽃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