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외버스에서 읽다 만 책을 집에서



  어제 저녁에 장흥에서 바깥일을 보고 오늘 아침에 고흥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을 읽으려고 예닐곱 권을 챙겼다. 시외버스에서 여섯 시간 즈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오늘 빗길에 구불구불 흔들리는 길을 시외버스가 빠르게 달리면서 뱃속에 많이 힘들었다. 어인 일인지 뱃속이 매우 힘들고 어지러워서 책을 거의 못 보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머리와 몸을 달래면서 드러눕다가 책을 조금 펼쳐 보았다. 시외버스에서는 도무지 눈에 안 들어오던 책이 집에서는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시외버스에서도 씩씩하게 어떤 책이든 잘 읽을 수 있도록 몸을 다스렸다고 여겼으나 아직 멀었네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집에서 느긋하게 몸을 쉬면서 저녁밥도 못 차린다. 곁님이 아이들 저녁을 챙겨 주었다. 드러누워 책을 보다가,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이들하고 영화를 보다가, 문득 한 가지를 더 헤아린다. 내 마음에 심는 씨앗이 무엇인가 하고. 아이들하고 이 보금자리에서 가꾸려는 꿈이 무엇인가 하고. 초 한 자루를 켜면서 고요히 마음을 돌아본다. 4348.10.1.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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