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에 ‘시골에 안 가’고 ‘시골에 있’기
오른무릎이 다 낫지 않았기에 올 한가위에는 시골집에 안 가고 시골집에 남는다.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계신 시골집으로 가는 아홉 시간 걸리는 마실길을 안 가고, 우리 고흥 시골집에 머문다. 한가위 기차표를 끊어야 할 즈음에는 ‘한가위 기차표 예약’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채 몸져누워 하루 내내 끙끙 앓기만 했다. 제법 많이 나아져서 그제는 군내버스를 타고 읍내를 다녀오기도 했는데, 고작 읍내를 다녀오는 길이어도 무릎과 몸은 겨우 버텨 주었다. 한 시간 반 즈음 읍내마실을 하는 데에도 고단한 무릎이랑 몸이라면 아홉 시간 마실길을 못 버티겠지. 이런 몸으로 아이들을 건사하기란 참으로 어려울 테고.
한가위를 하루 앞둔 오늘 집안 청소를 한다. 스물닷새 가까이 제대로 하지 못한 청소를 오늘 몰아서 한다. 걸을 만큼 오른무릎이 나았어도 부엌일을 하려고 한 시간 즈음 서면 오른무릎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저려서 주저앉는다. 비질하고 걸레질을 할 적에도 한 시간이 넘어가니 오른무릎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진땀이 난다. 한참 청소를 하다가 밥물을 안친다. 걸레를 빨고 닦고 빨고 닦고 하면서 청소를 하는데 머리가 빙빙 돈다. 쓰러질랑 말랑 하네. 아이들이 배고플 텐데 밥은 먹여야지 하고 생각하며, 밥을 마저 한다. 밥이 끓는 사이에 베갯잇을 빨아서 마당에 넌다. 베갯잇을 널고 나서 밥을 마저 짓고 밥상을 차린다. 아이들을 불러 밥을 먹으라 하고, 나는 땀으로 흥건한 옷을 벗고 씻는다. 내 옷가지도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넌다. 곧장 드러누울까 하다가 아이들하고 밥상맡에 앉아서 몇 숟가락 뜬다.
아침부터 해바라기를 시킨 널나무를 방으로 들여서 편다. 아이들 깔개도 널나무에 편다. 햇볕을 잘 받아서 해내음이 듬뿍 배었다. 베개도 들이고 아이들 이불도 들인다. 몸을 움직일 수 있어서 집일도 하고 이불도 말릴 수 있는 하루란 얼마나 기쁘며 고마운가 하고 새삼스레 느낀다. 다만, 앓아눕고 일어난 뒤에 이렇게 몰아서 하지 말고, 여느 때에 늘 꾸준히 잘 하자고 새롭게 생각한다. 이제 두 아이 사이에 누워서 낮꿈을 꾸어야지. 한가위에 우리 시골집에서 우리끼리 아주 조촐하고 조용하게 보내겠네. 4348.9.26.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아버지 육아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