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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프랑세즈 - 유월의 폭풍
이렌 네미로프스키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에마뉘엘 모아노 그림 / 이숲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51
아무도 군대에 끌려가야 하지 않아
―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
이렌 네미로프스키 글
에마뉘엘 모아노 그림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이숲 펴냄, 2015.9.10. 15000원
1903년에 키예프에서 태어난 뒤, 1917년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삶터를 옮긴 이렌 네미로프스키라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독일이 두 번째로 전쟁을 일으켜서 프랑스를 차지한 뒤에는 프랑스에서 책을 펴내는 길이 모두 막혔다고 하는데, 전쟁이 삶과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다가 프랑스 헌병한테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갔고, 수용소에서 한 달 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분 곁님도 수용소로 끌려가서 죽었는데, 어린 두 딸은 살아남았고, 두 딸 가운데 동생이 1996년에 죽자, 맏이은 드니스는 어머니가 수용소로 끌려가기 앞서 아버지가 저한테 맡기면서 꼭 건사하라고 했던 가방을 처음으로 열었다고 해요.
어머니 가방에서 나온 것은 5부작으로 쓰려고 했던 소설 가운데 2부였고, ‘할머니 나이로 늙은 어린 맏딸’은 어머니가 미처 마무리짓지 못하고 남긴 소설 원고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이숲,2015)은 바로 이렌 네미로프스키 님이 남긴 소설을 바탕으로 엮은 만화책입니다.
“엄마! 전쟁 중인데 아직 거리에 오가는 남자들은 뭐죠? 16세부터 60세 사이 남자는 모두 전쟁터로 가야 하잖아요!” “그런 건 어른들한테 맡기고 넌 가서 손이나 씻고 오렴. 곧 저녁 먹을 거야.” (19쪽)
“아빠, 저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 함께 있을래요! 뜻있는 동지들을 만나면 저항군을 조직할 수도 있어요! 할 수 있다고요!” “너무 늦은 것 같구나.” “에? 뭐예요? 전쟁에 진 거예요?” (23쪽)
나는 군대라는 곳에 1995년부터 1997년 사이에 있었습니다.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짝에서 스물여섯 달을 보냈습니다. 그무렵 육군 보병으로 무엇을 느꼈는가 하면, 소대장이나 중대장이나 하사관을 비롯한 간부를 비롯해서 대대장이든 연대장이든 하는 사람들은 우리 ‘육군 보병’을 ‘총알받이’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는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기도 합니다. 나라에서 세운 군사작전에서 육군 보병은 ‘총알받이’입니다. 전방이나 최전방에 수십만 젊은이가 바글바글 몰려야 하는 까닭도 남녘이나 북녘 모두 젊은 사내를 총알받이로 써서 ‘웃사람’은 3분이라도 틈을 내어 뒤로 내빼려는 뜻이거든요.
언제나 3분만 버티면 된다고 하지만, 3분 동안 어떻게 버틸까요? 남녘이든 북녘이든 저마다 온갖 미사일을 끝없이 쏘아댈 텐데요. 그저 남북이 모두 잿더미가 되면서 젊은 사내 수십만이 하루아침에 사라집니다. 전쟁이란 그렇지요. 젊은 사내는 그저 잿더미에 갇혀서 주검도 못 건지도록 하고, 웃사람은 전쟁공로를 거머쥐면서 더 많은 돈과 이름을 얻도록 할 뿐입니다. 평화를 바라는 전쟁이란 없고, 평화를 지키려는 전쟁이란 없습니다.
“가브리엘! 다행히 방을 구했는데, 대체 왜 그래요?” “다행? 저런 쥐구멍이 다행이야? 빈대에다 하수구 냄새 진동하는 끔찍한 다락방이야! 내가 누군지 몰라? 나 코르트 가브리엘이야! 나보고 저런 방에 있으라고?” (51쪽)
‘왜 죽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까. 저들은 전쟁이나 죽음하곤 상관없는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저렇게 형편없는 몰골을 하고 있지만, 똑똑하고 다정한 사람들이었을지도 몰라.’ (70∼71쪽)
만화책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을 보면, 첫 대목에서 어머니한테 ‘열여섯 살∼예순 살’ 사내 가운데 전쟁터에 안 간 사람이 왜 이리 많으냐 하고 묻는 열여덟 살 아이가 나옵니다. 이 아이도 스스로 잘 모릅니다. 저도 열여덟 살이니까 군대에 가야 하지만, 아버지 권력으로 군대에서 아예 안 부릅니다. 이 아이네 집안에서 일하는 집사며 요리사며 시중꾼이며, 게다가 ‘아버지’조차 전쟁터에 갈 마음이 아예 없습니다.
이밖에 은행장이나 미술관장이나 예술가나 부자는 저마다 ‘뭔가 줄을 대었는’지 소집영장을 아예 안 받습니다. 그리고 귀중품을 자가용에 가득 싣고 ‘여느 사람들은 모르는 일곱 정보’를 일찍 건네받은 다음 피난길에 올라요.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아마 한국에서도 이 만화책과 똑같은 얼거리대로 흐르리라 느낍니다. ‘멋모르는 착하고 앳된 젊은 사내’만 ‘나라를 지킨다는 거룩한 뜻’에 불타올라서 총을 쥐려 하겠지요. 그러고는 며칠 만에 총알받이로 죽어 버리겠지요. 돈과 이름과 권력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미리 고급정보를 손에 쥐었을 테니 언제 어디로 피난길을 떠나면 되는 줄 압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젊은 사내’한테 군인이 되라는 선전을 목청 높이 외칠 테고, ‘사회 양극화’는 더 깊게 벌어지리라 느낍니다.
마을 사람들은 피난민들을 동정했지만, 내심 자신들 처지가 그렇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57쪽)
“알린은 피죽도 못 먹었는데, 그놈들이 음식 바구니를 들고 시시덕거리는 꼴을 보니 눈이 확 뒤집히더라고!” “정중하게 부탁할 수도 있잖아. 안 그래, 오르탕스?” “생각 좀 하고 살아라! 저런 사람들은 우리를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아. 개처럼 굶어죽게 내버려뒀을 거야.” (91쪽)
나는 한국 군대에서 육군 보병으로 있으면서, 백예순다섯 사람에 이르는 한 내무반 사람들 가운데 ‘부잣집 사람’이나 ‘이름 있는 집안 사람’이나 ‘힘이나 뒷줄 있는 사람’을 아무도 못 보았습니다.
나는 강원도 양구 깊은 멧골짝에 있는 군대에서 총알받이로 스물여섯 달을 지내는 동안, 시골 농사꾼이던 젊은이, 공장 노동자이던 젊은이, 안경 수공업자인 젊은이, 조폭이나 건달로 놀다가 끌려온 젊은이, 학교 성적이 그리 좋지 않던 고만고만한 대학생, 학교 성적이 괜찮으나 학생운동 경력이 있는 대학생, 열아홉 살에 혼인도 안 했으면서 벌써 두 아이를 여자친구가 낳게 하고 끌려온 젊은이, …… 들을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바탕을 이루지만 제대로 두드러진 적이 없고 드러나 보인 적이 없으며 알려진 적조차 없는 ‘수수한 한겨레 이웃’하고만 지냈습니다.
부산에서 조폭이었다는 아이나 봉화에서 주먹깨나 썼다는 아이도 육군 보병이 되어 줄맞춰 세우면 똑같은 총알받이입니다. 나이도 어린 하사관한테 반말과 막말을 마구 들으면서, 이를테면 ‘네가 그렇게 주먹을 잘 쓰면 나 좀 때려 봐?’ 같은 이죽거림을 으레 들으며 바보가 되어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그렇다! 모두 여기 있었다. 전직 장관인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부터 거물 실업가, 출판인, 신문 편집장, 상원의원, 극작가에 이르기까지. 한곳에 모여 있는 유명 인사들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이 들었다. 모두 한배에 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전보다도 훨씬 잘 지내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자 코르트는 마음이 느긋해졌다. 그들은 자기네 세상이 절대 사라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신전심으로 서로 확인해 주었다. 이들 지배 계층은 무너진 과거 체제의 잔해 위에 세워질 새로운 체제 역시 단숨에 장악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81쪽)
만화책 《스위트 프랑세즈, 유월의 폭풍》은 소설책을 바탕으로 합니다. 소설책을 쓴 분은 ‘독일 점령군’이 아닌 ‘프랑스 과도 정부’한테서 모든 활동을 못 하도록 가로막혔고, 바로 ‘프랑스 헌병’이 이분을 붙잡아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아는 참모습은 무엇일까요? 점령군은 무엇이고, 지배자는 누구일까요? 한국이 일본 제국주의한테 식민지가 되어야 하던 때에도 ‘한국을 아낀 일본사람’은 틀림없이 있었고, ‘한국을 저버린 한국사람’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모두들 말하지요. 제 한몸 살아야 한다고. 그러니까, 제 한몸 살아야 하니까 다른 사람은 죽거나 말거나 쳐다보지 않는다고.
전쟁이란 이렇습니다. 전쟁이란 사람됨을 모두 망가뜨립니다. 착한 사람을 바보로 망가뜨리는 전쟁입니다. 고운 사람이 다치게 하거나 그예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전쟁입니다.
독일군이 침공하자 그는 예비역 장교로 다시 군에 입대했다. 그의 병력은 거의 전부가 적의 수중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에게는 살아남을 기회가 있었고, 그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비록 패전 장교였지만, 부인과 귀여운 딸들이 기다리는 저택으로 돌아와 편히 지낼 수 있었다. (192쪽)
우리는 무엇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모습을 참모습으로 알면서 살까요? 왜 집권자는 평화를 가꾸는 데에는 돈을 아주 조금만 쓰고, 전쟁무기와 군대를 거느리는데에는 아낌없이 펑펑 쓸까요? 게다가 우리는 집권자가 전쟁무기와 군대에 돈을 펑펑 쓰는 일에 왜 찬성표를 던지고 마는가요? 한국 사회에 평화가 없는 까닭은 ‘북한 탓’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엄청난 전쟁무기와 군대를 끌어안고서 스스로 ‘총알받이 구실’에 길든 탓은 아닐까요?
왜 우리 세금은 새만금을 메우는 데에 바쳐야 했을까요? 왜 우리 세금은 독재자가 엄청난 돈을 빼돌리는 데에 빼앗겨야 했을까요? 왜 우리 세금은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짓는 데에 쓰여야 할까요? 왜 우리 세금은 사대강이나 제주해군기지 같은 곳에 퍼부어야 할까요?
‘프랑스 이웃’ 손에 붙들려서 죽음길로 가야 한 ‘프랑스 작가’ 한 사람이 남긴 이야기는 이 대목을 우리가 스스로 묻고 스스로 풀어내기를 바라지 싶습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 전쟁무기와 군대를 꽉 끌어안고서 ‘입으로만 평화’를 외칠까요? 4348.9.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