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으로 글쓰기



  한글날에 맞추어 선보이는 책이 있다. 출판사에 보낸 원고는 닷새쯤 앞서 애벌편집을 마친 파일로 날아온다. 구월에 인쇄를 마쳐야 시월에 배본을 할 테니까 바지런히 글손질을 해야 한다. 그런데 출판사에서 애벌편집 파일을 보내 준 날 자전거 사고가 났고, 여러 날 끙끙 앓으며 아무것도 못 하는 몸이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쉬엄쉬엄 해도 된다고 말씀해 주지만, 편집과 제본과 인쇄 같은 흐름을 살피면 아슬아슬할 수 있다. 너무 아파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며 넋을 잃기도 하고, 땀을 쪽 빼면 한동안 개운하면서 넋을 차리지만, 기운을 내기란 만만하지 않다. 다친 지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 두 다리로 살짝 설 수 있어서 집일을 조금 했더니 다시 온몸이 욱씬거렸고, 주말에 글손질을 하려던 생각은 깨질 듯했다.


  아이들이 먹을 밥을 차려 놓기만 하고 들여다보지는 못하는 몸으로 드러누워서 새롭게 앓으며 생각했다. 어떡해야 하나? 길은 하나다. 몸이 얼른 나으면 된다. 몸이 얼른 나을 길을 찾으면 된다. 아침 낮 저녁 어찌저찌 밥을 차릴 적에만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저 이부자리에 드러누워서 ‘다 나은 몸’인 모습만 마음속에 그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잠든 저녁 여덟 시 조금 지나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부은 자리를 찬물로 식혀 보기로 한다. 시골마을에서 흐르는 그야말로 차가운 물은 얼음장 못지않다. 이 찬물이라면 아주 좋겠지. 더군다나 아주 깨끗한 물이고.


  십 분 남짓 오른다리를 찬물로 식히니 쩌렁쩌렁 울리도록 시리다. 아주 좋아. 잘 되었어. 잘 식힌 다리를 천천히 들고 책상맡으로 와서 셈틀을 켠다. 책상맡에 앉을 수 있는 겨를은 무척 짧으니 온마음을 쏟아서 원고를 살핀다. 그런데 막상 애벌편지 원고를 살피니 내가 손질해야 할 곳이 거의 없다. 편집부에서 ‘이 대목은 덜자’고 밑줄을 그은 대여섯 군데를 지우기만 하면 끝이다.


  마음을 푹 놓는다. 출판사에 손질을 마친 파일을 보낸다. 셈틀을 끄고 자리에 눕는다. 이튿날부터는 아이들하고 밥을 아주 조금씩 먹어 보기로 한다. 새롭게 기운을 내기로 하고, 씩씩하게 몸을 추스르기로 한다. 4348.9.6.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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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5-09-06 13:09   좋아요 0 | URL
힘 내세요!!

숲노래 2015-09-06 15: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날마다 땀을 몇 바가지씩 쏟으면서
씩씩하게 나아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