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는 사진말

2. 렌즈 값하고 사진책 값



  사진장비를 새로 바꾸는 사람은 많아도, 렌즈 하나를 덜 쓰거나 사진기 하나를 덜 사면서 사진책을 사는 사람은 대단히 드물다. 참으로 재미있는 모습이다. 렌즈 하나를 덜 쓰면서, 이 렌즈 값을 사진책 값으로 쓸 수 있으면, 사진을 바라보는 눈썰미를 훨씬 깊이 느낄 만한데, 이렇게 나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드물다.


  배우지 않으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배우려는 몸짓이 없이 무엇을 하려는가.


  여러 가지 사진책을 보아야 꼭 ‘배우는’ 모습은 아니다. 여러 가지 사진책을 보는 까닭은 ‘배워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여러 가지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는다고 한다면, ‘사진을 아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사진한테 다가서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고, 사진과 만나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는다. 사진하고 노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으며, 사진으로 삶을 가꾸는 기쁨을 사진책으로 읽는다.


  이름난 작가가 선보인 사진책을 장만해야 하지 않는다. 이름이 있건 없건 참말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 그저 ‘사진책’을 장만하면 된다. 사진책을 장만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렌즈와 사진기를 써서 사진을 찍은 책’이 뜻밖에 그리 ‘이야기 없이 맨숭맨숭하게 잘 찍은 사진을 자랑하려는 얼거리’인 줄 느낄 수 있다. ‘한두 가지 렌즈와 한 가지 사진기를 써서 사진을 찍은 책’이 더없이 재미난 ‘이야기가 춤추는 얼거리’인 줄 느낄 수 있다.


  렌즈는 둘이나 셋쯤 있으면 넉넉하다. 렌즈 하나가 망가질 수 있으니, 한둘쯤 넉넉히 있으면 된다. 새를 찍는 사람이라면 아주 커다란 망원렌즈도 있어야 할 테지만, 이런 사진이 아니라면, 내 삶을 즐겁게 누리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이야기꽃으로 여미고 싶은 사진이라면, 렌즈는 둘이나 하나만 있으면 된다. 렌즈 하나만 갖고 사진을 찍다가 이 렌즈가 망가지면 새 렌즈를 장만하기까지 사진을 좀 쉬면 된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사진책을 가만히 읽다 보면 마음으로 피어오르는 그림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 사진기를 내려놓고 온몸과 온마음으로 삶을 찬찬히 바라보면 싱그러운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기쁨을 새삼스레 노래할 수 있다. 4348.9.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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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9-01 06:42   좋아요 0 | URL
책 안보는게 아니라 안봐도 너무 안보니 맹탕으로 누르는 셔텨질은 동의 못하겟는걸요.ㅎㅎㅎ총을 조준할 생각도 없이 격발해서 맞추려드는 무모함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게 되죠.카메라 회사들이 아주 좋아하는 유형입니다.ㅎ

숲노래 2015-09-01 06:51   좋아요 1 | URL
사진을 배우려면 사진을 배워야 하지만,
사진이 아닌 사진기만 배우니...
막상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진장비를 높이는(업그레이드) 일밖에 없지 싶어요...

사진강의를 하는 분들도
사진이 아닌 사진기나 사진촬영기술과 사진예술에만
얽매이기 일쑤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