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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분의 일 1
타카토시 나카무라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49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
― 십일분의일 (1/11) 1
나카무라 타카토시 글·그림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3.9.25. 4800원
한집을 이루는 사람은 혼자일 수 있고 여럿일 수 있습니다. 한집에 한 사람만 있더라도, 한마을을 이루자면 ‘여러 한집’이 모여야 합니다. 그러니, 한마을을 이루려면 여러 사람이 골고루 어우러져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도 있고 저러한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한별을 이루는 이 지구에는 여러 나라와 겨레가 있습니다. 같은 나라이면서 여러 가지 말을 쓰기도 하고, 여러 겨레가 모인 나라에서 한 가지 말을 쓰기도 합니다. 삶과 말이 같을 적에는 겨레요, 삶과 말이 다르더라도 한마을을 슬기롭게 이루려 하면 나라입니다.
“축구는 이제, 취미 삼아 할 거야.” “하지만 너만큼 실력 좋은 사람이 축구를 안 하는 건 아까운데.” “국가대표가 그렇게 말해 주니 기쁘긴 한데, 이미 결심했어.” (18쪽)
“난 축구를 계속할 수 있었어. 그건, 축구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기 때문이야.” (32쪽)
혼자서 무대에 오르는 운동경기가 있고,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가 있습니다. 혼자서 무대에 오른다 하더라도 이 한 사람을 돕거나 돌보는 사람은 여럿입니다. 여럿이 무대에서 뛰는 운동경기라면 그야말로 여러 사람이 한마음이 되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나카무라 타카토시 님이 빚은 만화책 《십일분의일(1/11)》(학산문화사,2013) 첫째 권을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은 ‘축구’라는 운동경기를 놓고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혼자서 잘 한다고 잘 할 수 있는 운동경기가 아닌, 여럿이 함께 도우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경기를 보여줍니다. 한두 사람이 솜씨를 뽐낼 때에 놀라운 성적을 거둘는지 모르나, 모든 사람이 한몸과 한마음이 되어 움직일 적에 비로소 ‘이 운동경기를 하는 보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나도 비슷한 처지였던지라 젊었을 땐 둘이서 정말 고생했어. 아빠는 ‘호강시켜 주지 못 해 미안하다’고 늘 내게 말했지. 그렇게 아빠는, 대학에 가지 않은 것, 고교 시절 달리기만 했던 걸 내내 후회했어. 그래서 최소한 내 아이들에게만은 나 같은 고생은 시키고 싶지 않다, 그게 아빠가 서클 따위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야.” (79∼80쪽)
우리가 함께 하면서 즐거운 하루입니다.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빙그레 웃는 하루입니다. 우리가 같이 노래하면서 어깨동무하는 하루입니다.
네 힘이 모자라면 내가 힘을 쓰면 됩니다. 내 힘이 모자라면 네가 힘을 쓰면 돼요. 둘 다 힘이 모자라면 이웃이나 동무를 부릅니다. 둘 다 힘이 넘치면 이웃이나 동무를 도우러 가요.
물이 흐르듯이 삶이 흐릅니다. 물결처럼 기쁜 노래를 부르면서 삶을 가꿉니다. 물처럼 맑은 눈망울로 바라봅니다. 온누리를 적시는 빗물처럼 서로서로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고운 숨결이 됩니다.
“골도 어시스트도 아니야. 얼핏, 이 달리기는 그저 쓸데없는 짓으로 보일지 몰라. 하지만, 그렇게, 쓸데없을지도 모르는 걸 온힘을 다해 해야, 비로소 재미있는 축구로 이어지는 거야.” (87∼88쪽)
‘늘 혼자서 카메라에 빠져 있던 그녀를, 반 아이들은 괴짜 취급했지만, 그런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왠지 무척이나 상쾌해 보였다.’ (117쪽)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자, 그렇게, 새로운 결심을 가슴에 품고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 내 몸은 변하기 시작했다.’ (122쪽)
만화책 《십일분의일(1/11)》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대단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새롭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품을 때에 비로소 새롭게 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스로 새롭지 않겠다는 마음이 될 때에 참말 새로움이 하나도 없는 하루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보스럽게 산다면 그저 바보일 테지요. 그러나, 바보스럽게 산다고 해서 나쁘지 않습니다. 바보스러움을 온몸으로 겪을 뿐입니다. 슬기롭게 살 적에는 슬기로운 빛이 널리 퍼집니다. 나부터 슬기로우면서 둘레에 밝은 웃음을 베풀고, 내 둘레에서 슬기로우면서 나한테까지 밝은 웃음이 퍼집니다.
조금 늦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조금 일찍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찌감치 바보스레 살다가 뒤늦게 바보스러움을 떨칠 수 있어요. 차근차근 한길을 걸으면서 바보스러움을 씻은 뒤에, 빙그레 웃음꽃을 피울 수 있어요.
“결국 판단은, 네 몫이야. 네가 가고 싶은 길을 선택해라.” (81쪽)
“진심으로 변하려 한다면,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152쪽)
‘지금, 이제야 겨우 딱 한 걸음 다가갔다. 그 시절 내가 그토록 꿈꿨던, 겉모습만이 아닌, 반짝반짝 빛나는 나 자신에게.’ (163쪽)
내 길은 내가 걸어갑니다. 내 밥은 내가 먹습니다. 내 말은 내가 합니다. 내 노래는 내가 부릅니다. 내 웃음은 내가 짓습니다. 내 빨래는 내가 합니다. 참말 모두 내 몫을 나 스스로 즐겁게 맡습니다. 내 꿈은 내가 이루고, 내 사랑은 내가 길어올려요.
너도 나도 얼마든지 반짝반짝 빛나는 숨결입니다. 나도 너도 언제나 고요히 피어나면서 눈부시게 일어서는 나무와 같습니다. 열한 사람이 함께 운동장에서 뛰는 축구처럼, 나는 열한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로는 운동장에서 뛰지 못하고 뒷자리에 앉아서 지켜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때로는 뒷자리에도 앉지 못하고 관중석에 앉아서 쳐다보는 사람일 수 있어요.
어느 자리에 앉든 다 재미있습니다. 어느 자리에서든 내 몫은 즐거이 맡을 수 있습니다.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달릴 수 있고, 물주전자를 떠올 수 있으며, 목청껏 기운을 북돋아 줄 수 있습니다. 서로 아끼는 마음일 적에는 언제 어디에서나 사랑스러운 벗님입니다. 4348.8.26.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