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자 삶창시선 43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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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시 103



우리 집에 와서 한솥밥을 즐겁게 먹으렴

― 집에 가자

 김해자 글

 삶창 펴냄, 2015.7.15. 8000원



  아침에 노래를 틀고 아이들하고 춤을 춥니다. 우리 집 두 아이는 학교나 유치원을 안 가니 하루 내내 집에서 노는데, 비가 쏟아지는 오늘은 방과 마루 사이에서 노래하면서 춤을 추고 놉니다. 아직 더위가 다 물러가지 않은 늦여름인 만큼, 아침부터 노래하고 춤추면서 노는 아이들은 땀투성이가 됩니다. 자, 이제 실컷 땀을 흘렸으니 물놀이를 해 볼까? 씻는방으로 아이들을 몰아넣습니다. 두 아이 손에 수세미를 하나씩 쥐어 주고 욕조 벽이랑 바닥을 비비도록 시킵니다. 어제까지 물놀이를 하며 고인 물로 욕조를 깨끗하게 해 줍니다. 이렇게 하고 나서 따순 물을 틉니다.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말 / 나만 얻어먹고 되돌려주지 못한 / 니가 좋으면 나도 좋아 (니가 좋으면)



  아이들이 춤추며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함께 웃고 춤추면서 노래합니다. 아이들만 춤을 추라 할 수 없고, 아이들끼리만 노래하라 할 수 없습니다. 어버이는 언제나 아이하고 함께 놀고 함께 일하며 함께 밥을 먹습니다. 함께 호미질을 하고 함께 씨앗을 심으며 함께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밥을 끓이고 달걀을 삶습니다. 내가 짓는 밥은 내 손길이 깃드는 밥입니다. 내 손길은 따스할 수 있고, 그야말로 따스할 수 있으며, 더할 나위 없이 따스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웃는 소리를 내 가슴속에 알뜰히 담은 뒤, 이 기쁜 웃음을 씨앗으로 삼아서 새롭게 따스한 손길로 가다듬어 밥을 지을 수 있어요.



을지로 지하도에 집을 짓자 박스 위에 지붕을 세우고 구멍 뚫어 창도 만들자 창문에 모기장도 붙이자 박스 옆에 기역 자로 튀어나온 별채도 이어야지 비닐을 붙이면 빨래가 휘날리는 집 페트병에 더운 물 담아 애인처럼 안고 자자 (이승)



  김해자 님 시집 《집에 가자》(삶창,2015)를 읽습니다. 시집 이름이 “집에 가자”라니, 이 얼마나 구수하면서 맛깔스럽고 사랑스러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더러, “자, 우리 집에 가자.” 하고 건네는 말은 얼마나 따스하면서 기쁘고 고마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갈 곳을 몰라 떠도는 사람더러, “자, 이제 집에 가요.” 하고 들려주는 말은 얼마나 상냥하면서 착하고 고운가 하고 생각합니다.



이젠 돌아가고 말아야지, / 치렁처렁 목걸이와 제복과 억지웃음 벗어던지고 / 날카로운 하이힐 대신 청동거울을! / 계산기 대신 둥둥 북소리 같은 심장을! / 문서 대신 비와 구름이 머무는 밭을! (웅녀의 시간)



  배와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아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시험성적에 목이 매이다가 참말로 목이 매여서 목숨을 빼앗긴 아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애써서 대학교에도 갔지만, 힘써서 공무원이나 회사원도 되었지만, 도무지 앞날이 환하게 보이지 않아서 눈물에 젖다가 밑바닥으로 고꾸라진 젊은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핵발전소와 송전탑에 고향마을을 빼앗긴 할매와 할배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큰도시에 수돗물을 댄다며 댐을 지어야 해서 고향마을을 떠나라고 하니 앞으로 어디로도 갈 곳이 없는 시골 할매와 할배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일요일 없이 밤새 일하고도 라면 한 그릇 겨우 끓여먹는 공순이와 공돌이는 집에 가고 싶습니다. 따뜻한 어버이 품에 안기고 싶고, 포근한 이부자리에 눕고 싶고, 맑은 새소리와 싱그러운 풀벌레 노랫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이제는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사랑을 꿈꾸면서 살고 싶습니다.



시멘트처럼 단단한 흙을 닮아 뿌리는 이미 돌이 되어 가고 있더군요 어느 날 가지 끝마다 그렁그렁 붉은 눈들이 보이는 듯했어요 저도 몰래 소리를 질러 딸아일 불렀죠 잎 좀 봐, 이거 잎 맞지? 잎이 핀 것 같지? 얼버무리는 아이에게 잎이 아니어도 할 수 없지, 살아 있다 믿고 물을 주는 한 살아 있는겨, 속으로 중얼거렸어요 (죽은 나무에 물 주기)



  ‘죽은 나무’에 물을 주려고 딸아이를 부른다는 김해자 님은 참말 ‘죽은 나무’에 물을 주었을까요? 얼핏 보자면, 나무는 말라서 죽은듯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는 죽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깊디깊은 곳에서 고요히 잠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고, 사랑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며, 사랑 품은 마음길로 물을 주면, 앞으로는 ‘산 나무’가 될 테고 ‘웃는 나무’가 될 테지요.



아득하고 고운 옛날 어진내라 불리던 인천 갈산동 그 쪽방에는 연탄보다 번개탄을 더 많이 사는 소녀가 살고 있네요 야근 마치고 돌아오면 늘 먼저 잠들어 있는 연탄불 활활 타오르기 전 곯아떨어지는 등 굽은 한뎃잠 (어진내에 두고 온 나)


딱새 한 마리 마당 빨랫줄에 앉아 있다 / 내가 지나가려 하자 부리를 새우고 날개 퍼득였다 (날선 울음-새를 듣는 몇 가지 시선 5)



  시집 《집에 가자》를 읽으면서 가만히 생각에 젖습니다. 이 시집은 ‘우리 집에 와서 한솥밥을 즐겁게 먹으렴’ 하고 부르는 노랫가락 같습니다. 크지도 넓지도 않지만, 두어 사람 누우면 꽉 들어차는 조그마한 한칸방인 집이라 하더라도 ‘우리 집에 와서 한솥밥을 즐겁게 먹으렴’ 하고 부르는 노랫소리 같습니다.


  김치 한 접시에 간장 한 종지를 올린 밥상을 함께 나누자고 부르는 노래입니다. 밥 한 그릇에 국 한 그릇을 올린 단출한 밥상을 함께 나누자고 손짓하는 노래입니다.


  시란 늘 그렇겠지요. 사랑하는 마음을 시로 그립니다. 사랑을 속삭이는 꿈을 시로 그립니다. 사랑을 가슴에 살포시 담는 이야기를 시로 그립니다.



억수로 높대이 저마 지 혼자 툭 불거져서 머 우짤 끼라고 흙 다 뭉개고 산목심 다 주째삐고 조래 빳빳이 고개 쳐들고 나라님 같은 고압 자세로 와 자꼬 올라가쌓노 내가 나라한티 밥을 주라 카나 돈을 주라 카나 이래 농사짓고 살겠다는데 언제까지 없는 넘들만 개 잡드끼 잡들라 카노 (밀양아리랑)


사랑 시 한번 써보고 싶다 어둠 속에서 사이좋은 땅콩 두 알처럼 하나였을 때 꿈꾸며 서성이던 햇살 고운 아침, 전화가 왔다 (사랑 시는 못 쓰고)



  사랑은 연속극에 없습니다. 사랑은 영화에 없습니다. 사랑은 책에 없습니다. 사랑은 인터넷에 없습니다. 사랑은 신문에 없습니다. 사랑은 대중가요에 없습니다. 사랑은 학교에 없습니다. 사랑은 군대에 없습니다. 사랑은 늘 네 가슴하고 내 가슴에 있습니다. 네 가슴에서 샘솟는 사랑이 나한테 옵니다. 내 가슴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너한테 갑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맺어서 사랑을 꿈꿉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손을 잡고서 사랑으로 삶을 짓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마주보면서 사랑으로 아기를 새롭게 낳습니다.



여덟 아이가 지하에서 석탄을 캐고 / 아홉 아이가 굴 깊숙이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다 / 갱도에서 기어 나오며 아이들이 달리기를 한다 (거북손)


강은 어머니 실핏줄이오 나무는 팔다리라 생각하는 책 어머니 다칠세라 살금살금 걸어 다니는 책 물의 파동 읽으며 조용조용 거북 껍데기 두드려 천지간에 감사드리는 책 약초를 캐거나 일용할 양식 구할 때 대지와 풀 나무에게 허락을 구하는 책 (영혼의 집)



  시집 《집에 가자》를 읽으면, ‘집에 못 가는 아이’ 이야기가 자꾸 흐릅니다. 한국에서, 이웃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지구별 곳곳에서, 그만 집에 못 가고 고꾸라진 아이들 이야기가 자꾸 흐릅니다.


  한국은 선진국일까요? 한국은 민주 나라일까요? 한국은 자유와 평화가 있는 나라일까요? 그러면, 한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는 왜 이렇게 많을까요? 한국에서 애꿎게 목숨을 빼앗기는 아이는 왜 이다지도 많을까요?


  대학입시는 누구 때문에 있을까요? 대학교는 왜 있을까요? 대통령이나 공무원은 왜 있을까요? 군인이나 의사는 왜 있을까요? 돈은 왜 돈이 많은 데로만 몰리고, 돈이 없는 데로는 골고루 흘러가지 않을까요?



배가 잠기고 있어, / 내가 잠기고 있어, / 마침표 같은 건 찍지 마, 돌아오고 말 테니, / 꺾어도 가만있는 꽃 같은 건 되지 않을 거야, / 증언도 못하는 새도 아니고 물고기도 아니고, / 반드시 사람으로, 난, 다, 시, 와, 야, 겠, 어, (김동협-2014년 4월 10일 09:10)



  오늘도 우리 시골집에서 두 아이는 하루 내내 뛰놀면서 땀을 흘립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나서 물놀이를 합니다. 물놀이를 마친 뒤 알몸으로 마루와 마당을 가로지릅니다. 배가 고프면 부엌으로 와서 수저를 듭니다. 배가 부르면 뒹굴거리면서 놀다가 콜콜 낮잠에 빠져듭니다. 낮잠에서 깨어나 새롭게 놀고, 다시 배가 고프면 “밥 주셔요.” 하고 부릅니다. 밥을 배불리 먹으면 새롭게 기운이 났으니 별이 뜨고 달이 돋는 밤까지 하하하 노래하면서 놉니다.


  오늘 이곳에서 한솥밥을 먹습니다. 이 땅에서 아름답게 태어나서 살아가는 모든 아이를 생각하면서 한솥밥을 먹습니다. 이 땅에서 아직까지 슬프고 고달프며 힘든 모든 아이를 그리면서 한솥밥을 먹습니다.


  김해자 님이 참말 ‘사랑 시’를 쓸 수 있는 이 나라가 되기를, 이 지구별이 되기를, 그야말로 사랑이 가득하고 평화가 흐르는 아름다운 한국과 지구별로 거듭나는 삶이 태어나기를 빕니다. 4348.8.2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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