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2307) 가상의


 가상의 경계일 뿐이다

→ 거짓스러운 경계일 뿐이다

→ 참말로는 없는 금일 뿐이다

→ 이 땅에 없는 금일 뿐이다

→ 눈에 안 보이는 금일 뿐이다

→ 아무것도 아닌 금일 뿐이다


  한국말사전을 살피면, 한자말 ‘가상’이 모두 열한 가지 나옵니다. “시렁 위”를 뜻한다는 ‘架上’이나 “길 위”를 뜻한다는 ‘街上’이 있는데, 이런 한자말을 쓰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 이런 한자말을 굳이 써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家相’이나 ‘嘉尙’이나 ‘嘉祥’이나 ‘嘉賞’ 같은 한자말을 누가 언제 쓸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쓸 일이 없을 뿐 아니라, 쓸 만한 까닭이 없는 이런 한자말을 한국말사전에 자꾸 실으니, 한국말사전이 한국말사전다움을 잃는구나 싶어요. 한국말사전은 ‘한자말’사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흔히 쓰는 ‘가상’은 어떤 ‘가상’일까요. ‘假相’은 “겉으로 나타나 있는 덧없고 헛된 현실 세계”라 합니다. ‘假象’은 “주관적으로는 실제 있는 것처럼 보이나 객관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거짓 현상”이라 합니다. ‘假想’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것을 사실이라고 가정하여 생각함. ≒어림생각”이라 합니다. ‘假像’은 “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이라 합니다. 어슷비슷한 네 가지 ‘가상’을 헤아립니다. 이 한자말들은 모두 ‘거짓’이나 ‘없음’이나 ‘덧없음’이나 ‘참이 아님’을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가상의 사태 → 가상 사태 / 지어낸 사태

 가상의 세계 → 가상 세계 / 지어낸 세계

 가상의 미래 → 다가올 앞날 / 그려 본 앞날

 가상의 이미지 → 꾸며낸 그림 / 꾸며낸 모습


  “가상 사태”나 “가상 세계”는 처음부터 이러한 말투로 지었기에 달리 손보거나 고쳐쓰기 어렵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따지면, “가상 사태”는 일부러 어떤 일이 생기도록 ‘지어낸’ 모습을 가리킵니다. “가상 사태” 꼴로 쓰기도 하면서 “지어낸 사태”나 “깜짝 사태”나 “뜻밖 사태”처럼 써 볼 만합니다. “가상 세계”도 이대로 쓰되, “지어낸 세계”라든지 “꿈꾸는 세계”라든지 “그려 본 세계”처럼 쓸 만합니다. “가상 미래”라면 아직 찾아오지 않은 앞날을 미리 헤아리는 셈이니, “다가올 앞날”처럼 손볼 만하고, “가상 이미지”는 이곳에 없는 모습을 짐짓 그린 모습이기에 “꾸며낸 그림”이나 “꾸며낸 모습”처럼 손볼 수 있습니다. 4348.8.20.나무.ㅅㄴㄹ



국경은 오직 지도에만 존재하는 가상의 경계일 뿐이다

→ 국경은 오직 지도에만 있고 이 땅에 없는 금일 뿐이다

《박 로드리고 세희-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라이팅하우스,2013) 46쪽


제가 가상의 예를 하나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 제가 이런 보기를 하나 들어 얘기하겠습니다

《박경서와 여덟 사람-인문학이 인권에 답하다》(철수와영희,2015) 159쪽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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