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들의 수다 - 정부희 박사의 곤충 에세이
정부희 지음 / 상상의숲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숲책 읽기 83



‘귀여운 벌레’를 사랑해 주셔요

― 곤충들의 수다

 정부희 글

 상상의숲 펴냄, 2015.7.20. 15000원



  두 아이를 자전거에 태우고 가까운 바닷가로 나들이를 다녀옵니다. 우리 집에서 면소재지까지 5킬로미터이고, 면소재지에서 바다까지 7킬로미터입니다. 자전거를 신나게 몰아서 바닷가에서 실컷 논 뒤에 새롭게 기운을 내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바닷가에서 면소재지로 접어드는 내리막에서 사향제비나비 한 마리가 찻길 한복판에서 아슬아슬하게 나는 모습을 봅니다. 샛자전거에 앉은 큰아이도 나비를 봅니다. 그런데 나비는 제대로 날지 못하고 비틀거립니다. 얼마 날지 못하고 길바닥에 내려앉습니다. 그나마 새까만 길바닥이 아닌 한복판 노란 금이 있는 곳에 내려앉습니다.


  “차에 치였나 봐, 어떡해? 어휴, 그러게 차를 잘 보고 다녀야지.” 얘야, 나비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빠르기를 알아채지 못한단다. 자동차가 이 시골길에서 얼마나 빠르게 내달리는데. 나비는 꽃을 찾아 여느 때처럼 가볍게 팔랑거리며 날았을 테고, 이 찻길에서 ‘뜸하게 다니던 자동차’에 그만 저도 모르게 치이고 말아서 이렇게 아파한단다.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말안장 꾸미개는 너무도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말안장 꾸미개를 만들기 위해 나무판을 고운 비단 천으로 싼 다음 그 위에 비단벌레 딱지날개를 일렬로 가지런히 줄맞춰 깔아 붙입니다 … 말안장 꾸미개 하나 만드는 데 비단벌레가 무려 2000마리가 희생되었다니 놀랍기 이전에 가슴이 쓰립니다. (20∼21쪽)



  내리막을 달리는 자전거를 세웁니다. 사향제비나비가 내려앉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자전거를 길가에 세웁니다. 차에 치여서 아파하는 나비는 날갯짓마저 거의 못 하고 길바닥에 납작 붙습니다. 얼른 길바닥에서 풀밭으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려 합니다. 아, 왜 이럴 때 자동차가 지나가나?


  부디 자동차가 곱게 지나가기를 바라지만, 자동차는 길 한복판을 알리는 노란 금을 밟으면서 지나갑니다. 자동차를 모는 분은 길바닥 노란 금에 새까만 것이 있는 줄 못 보았을까? 볼 겨를이 없었을까요?



개미귀신은 대부분 산자락 주변의 흙길, 강변이나 모래 해변처럼 포슬포슬한 흙이 있는 곳, 특히 사람들이 덜 다니는 탁 트인 땅을 좋아합니다. 그런 개미귀신이 살아갈 수 있는 땅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89쪽)



  정부희 님이 쓴 《곤충들의 수다》(상상의힘,2015)를 읽습니다. 이 책은 ‘정부희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나온 여섯째 책입니다. 2010년에 《곤충의 밥상》을 처음 선보였고, 《곤충의 유토피아》(2011), 《곤충 마음 야생화 마음》(2012), 《나무와 곤충의 오랜 동행》(2013), 《곤충의 빨간 옷》(2014)을 잇달아 선보였어요. 《곤충들의 수다》는 앞선 다섯 권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별에 어마어마한 숫자로 있는 벌레를 따사로운 눈길로 살피면서 헤아린 이야기를 담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시골길도 다 포장되어 풀도 살기 힘들고 땅이 터전인 두꺼비메뚜기도 살기 힘들어졌습니다. (33쪽)


따뜻한 남쪽에서만 사는 새노란실잠자리. 개발 몸살에 자그마한 연못과 둠벙들이 야금야금 사라지고 때만 되면 농약 세례가 쏟아지니 녀석들은 점점 보금자리를 잃어 가고 있습니다. (52쪽)



  빠르기를 줄이지 않고 무시무시하게 내달리는 자동차 바퀴에 다시금 짓밟히면서 힘없이 바람 따라 구르는 나비를 바라봅니다. 자동차가 나비를 밟을 적에는 아이하고 함께 그만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말았습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습니다.


  주검이라도 건사해야겠다고 찻길로 들어섭니다. 그런데 나비는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느다란 다리를 그야말로 가늘게 떱니다. 에그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나비 날개를 살며시 쥐고는 천천히 길가로 옵니다. 풀밭으로 나비를 옮깁니다. 나비 날개에는 자동차한테 밟힌 자국이 굵게 새겨졌습니다.


  나비는 자동차에 치이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나비는 자동차한테 밟히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꽃을 사랑하는 나비는 풀과 나무가 꽃가루받이를 해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면서 저도 맛난 꿀이랑 꽃가루를 조금씩 얻으려고 태어납니다. 나비는 온갖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기쁘게 지켜보면서 제 아름다운 날개를 팔랑이면서 바람을 타고 놀려고 태어납니다.



살짝수염벌레는 영지를 주식으로 삼는 딱정벌레 식구입니다 … 아이러니하게도 직접 키우면서 연구해 보니 살짝수염벌레는 몸에 좋다는 불로초를 먹는데도 한 달을 채 못 삽니다. (76, 78쪽)


도시마다 봄이면 얼마나 살충제를 뿌려대는지 개나리잎벌이 씨가 다 마를 지경입니다. 개나리잎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녀석이 사라지면 도시에서 개구리나 새도 보기 힘들어집니다. 개나리잎벌 애벌레가 활동하는 시기는 새들이 낳은 알에서 새끼 새들이 깨어나 자라는 시기와 맞물립니다. (113쪽)



  정부희 님이 쓴 《곤충들의 수다》를 읽다 보면 ‘농약’하고 ‘살충제’를 걱정하는 이야기가 자꾸자꾸 나옵니다. 천연기념물이 된다 한들, 아무리 씨가 말라서 더 찾아보기 어렵다 한들, 시골사람은 농약을 자꾸 쓸 뿐이고 도시사람은 살충제를 자꾸 쓸 뿐입니다.


  시골사람은 남새 아닌 풀이 자라지 않기를 바라면서 농약을 쓰고, 도시사람은 벌레가 생겨서 꼬물거리는 꼴을 볼 수 없다면서 살충제를 씁니다.


  그런데, 벌하고 나비하고 개미하고 온갖 벌레가 없이 꽃가루받이를 어떻게 할까요? 벌이나 나비나 개미나 벌레가 없이 어떻게 꽃가루받이가 될까요?


  사람이 나락꽃을 하나하나 건드려서 꽃가루받이를 해야 하나요? 사람들이 보리꽃이나 밀꽃을 하나하나 흔들어서 꽃가루받이를 해야 할까요? 고추꽃도 깨꽃도 사람들이 하나씩 손으로 꽃가루받이를 해야 할까요?


  오이밭이고 참외밭이고 토마토밭이고 능금밭이고 포도밭이고 모두 똑같습니다. 온갖 벌과 나비와 개미와 벌레가 있어 주어야 꽃가루받이가 되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벌레가 조금, 때로는 제법 많이 갉아먹더라도, 이 벌레는 사람하고 함께 살려고 열매를 나누어 먹습니다. 이 대목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이 지구별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멀리 보고 크게 보면, 생태계에서 곤충과 초식동물은 결코 자신의 밥인 식물을 죽이지 않습니다. 오리나무잎벌레 또한 자신의 밥인 오리나무를 다 먹어치워 죽였다간 자신도 굶어죽을 건 뻔하기 때문이지요. (127∼128쪽)


된장잠자리가 바람을 타고 우리나라에 날아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일본이나 중국까지도 날아가고 심지어 태평양을 건너기도 합니다. (193쪽)



  여름이 저물면서 마을마다 제비는 한곳으로 모입니다. 그동안 집집마다 처마 밑에서 새끼를 보살피던 제비는 새끼를 알뜰히 키우고 날갯짓을 가르쳐서 제비떼로 움직입니다. 이 제비떼는 곧 태평양을 가로지릅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이 나라 들에서 수많은 벌레를 날마다 어마어마하게 잡아서 새끼한테 먹이던 제비는 제 일을 마치고 중국 강남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제비는 봄부터 여름 사이에 이 나라 들에서 들끓을 벌레를 솎아 주는 구실을 합니다. 어미 제비 한 마리가 새끼 제비 너덧 마리나 대여섯 마리를 먹이려고 벌레를 얼마나 많이 잡는가를 세어 본다면, 제비처럼 놀라운 ‘벌레잡이’가 다시 없는 줄 알 수 있습니다. 참새가 가을에 ‘나락알’을 쫀다고 하더라도, 나락이 익을 때까지는 시골마을에서 수많은 벌레를 신나게 잡아서 먹어요.


  다시 말하자면, 이 나라 들과 숲에서 사는 모든 새는 사람하고 사이좋은 이웃입니다. 사람은 새를 아끼고 새는 사람을 아낍니다. 콩 석 알을 심은 사람이 한 알을 새한테 준다는 말은 사람이 거두는 몫 가운데 1/3을 새한테 주어도 넉넉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콩알뿐 아니라 다른 열매도 1/3만 거두더라도 얼마든지 배부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농촌에서는 새나 벌레한테 열매를 얼마나 나누어 주려고 할까요? 1/10은커녕 1/100조차 안 나누려고 하지는 않나요?



앞서가던 사람이 “으아악!” 비명을 지릅니다. 무슨 큰 일이 일어났나 싶어 급히 달려가 보니 헛웃음만 나오네요. 공중에 매달려 뱅뱅 돌며 꼼지락거리는 귀여운 자벌레를 보고 바들바들 떨고 있으니 말이지요. ‘얼음’이 된 애벌레를 거두어 귀엽다고 쓰다듬으며 참나무 잎 위에 놓아 주자 그 사람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207쪽)


원래 도토리는 도토리거위벌레의 밥이었습니다. 곤충이 그 누구보다도 지구에 먼저 나왔으니 말이지요. 녀석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가을이면 신나는 건 다람쥐와 배고픈 멧돼지입니다. (233쪽)



  들꽃 한 송이를 따사롭게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평화가 이 땅에 깃들기를 빕니다. 들풀 한 포기를 보드랍게 보살피는 아름다운 평화가 이 나라에 뿌리내리기를 빕니다.


  사람만 배불리 먹는 삶이 아니라, 지구별 모든 숨결이 사이좋게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을 바랍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부자와 가난뱅이가 따로 없이 서로 평등하고 평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삶을 바랍니다.


  벌레가 속삭이는 목소리를 우리 모두 함께 들을 수 있기를 빌어요. 벌레가 사람한테 들려주려는 노랫소리를 우리 모두 함께 귀여겨듣기를 빌어요. 나무를 아끼고 숲을 보듬으면서 도시와 시골 모두 착하고 참다운 삶터가 되도록 가꿀 수 있기를 빌어요.


  귀여운 벌레가 우리를 바라보면서 눈웃음을 칩니다. 조금 더 천천히 가자고 말하면서 어깨에 내려앉습니다. 전쟁무기는 걷어치우고 두레와 품앗이가 골골샅샅 춤추는 삶을 이루자는 이야기를 속삭이려고 잠자리가 내 팔뚝에 내려앉아서 나를 말똥말똥 쳐다봅니다. 자동차에 치이고 밟혀서 죽음을 앞둔 나비 한 마리가 이 땅을, 이 마을을, 이 나라를, 이 별을, 온누리를 모두 사랑한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면서 눈을 사르르 감습니다. 4348.8.19.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숲책 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