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하는 평화 - 전쟁,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자들의 대담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1
전쟁없는세상 엮음, 엄기호 외 지음 / 오월의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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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25



‘사랑하는 평화’와 ‘저항하는 군대’

― 저항하는 평화

 전쟁없는세상 엮음

 오월의봄 펴냄, 2015.1.12. 16000원



  한자말 ‘저항’은 어떤 힘에도 굽히지 않으면서 거스르거나 버티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평화’는 평온하거나 화목한 모습이라든지 전쟁이나 갈등이 없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평온’은 조용하고 평안한 모습을 가리키고, ‘화목’은 서로 뜻이 맞고 정다운 모습을 가리키며, ‘갈등’은 서로 적으로 여기거나 부딪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평안’은 걱정이 없는 모습을 가리키고, ‘정다움’은 따뜻한 마음이 흐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제 “저항하는 평화”란 무엇인가를 헤아려 봅니다. 조용하면서 따뜻한 마음이 흐르고 걱정없이 서로 아끼는 삶을 망가뜨리거나 어지럽히려는 어떤 힘이나 무리가 있기에, 이에 맞서려고 하는 몸짓을 놓고 “저항하는 평화”라고 말하는구나 싶습니다. 평화를 깨거나 무너뜨리려고 하니 이에 맞서려고 하는구나 싶어요.



대학생들은 자신과 비슷한 나이 대에 고졸이나 중졸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안 해 본 것입니다. 만나 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군대에 갔더니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18쪽)


우리의 삶이 힘들고, 사회적 안전망은 다 망가졌고, 사회가 엉망진창이 되어 먹고살기 어려워도 결국 군대는 필요하고 좋은 무기는 사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장되는 것 같아요. 별다른 고민 없이 군대는 당연히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 군대를 유지시키기 위해 비용을 지출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죠. (30쪽)



  권력자한테는 노예반란이 ‘평화를 깨는’ 일이 되리라 봅니다. 기득권자한테는 기득권 울타리를 허무는 몸짓이 ‘평화를 깨는’ 일이 되겠지요. 독재자한테는 독재를 나무라거나 꾸짖는 손짓이 ‘평화를 깨는’ 일이 될 테고요.


  양반 제도가 있던 지난날에는 양반 제도를 거스르는 평민이나 ‘상놈’ 몸짓이 바로 ‘평화를 깨는’ 일이라 할 만합니다. 임금님이 시킨 일을 안 하는 평민이나 상놈 몸짓이란 언제나 ‘평화를 깨는’ 일이었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노예가 되어 짓눌리는 사람은 ‘처음부터 평화를 못 누리’며 삽니다. 권리를 빼앗긴 사람은 기득권자가 가로챈 권리 때문에 ‘처음부터 평화를 모르’며 살아요. 독재권력이 서슬 퍼렇기에 사람들이 아무 대꾸조차 못 하면서 숨을 죽이는 모습은 ‘평화’가 아닙니다.


  사람들 스스로 어느 자리에 서느냐에 따라서 ‘평화’와 ‘평화가 깨진 모습’을 바라보는 눈길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애들이 약하기 때문에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것은 폭력을 정당화하죠 … 현실적으로는 힘있는 사람은 보호받고 힘없는 사람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해요. (34, 39쪽)


우리나라는 근대화되면서 군대를 국민 자격증을 부여하는 기관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국가가 군대를 통해 ‘시민’이 아니라 ‘식민’을 양성하는 것이죠. 국가적 규율에 복종하는 기재로서 군대가 작동합니다 … 군대는 합법적인 살인 조직입니다. 어느 나라 군대이건 그 본질은 똑같죠. 다만 한국 상황에서 다른 점은 그런 군대에 갈 수도 있고,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선택권 자체가 없다는 점이죠. (63, 71쪽)



  ‘전쟁없는세상’이라는 모임에서 엮은 《저항하는 평화》(오월의봄,2015)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군대를 거느리는 권력자한테는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저항하는 반역자’처럼 보이리라 느낍니다. 그리고, 군대를 지구별에서 몰아내어 서로 아끼는 사랑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한테는 군대와 권력자야말로 ‘저항하는 반역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군대는 왜 있어야 할까요? 적군이 있으니 아군이라고 하는 군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군한테 적군이 될 그곳 사람들은 왜 군대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까요? 이쪽 아군한테는 적군이 될 그쪽 아군한테는 바로 이쪽 아군이야말로 적군입니다.


  이쪽에 군대가 있으니 저쪽에서도 군대를 거느립니다. 저쪽에 군대가 있으니 이쪽에서는 군대를 더 키우려고 하며 전쟁무기도 더 갖추려고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한테 핑계입니다. 서로서로 너희가 군대와 전쟁무기를 없애지 않으니 우리도 군대와 전쟁무기를 안 없앤다고 핑계를 댑니다.



국가 안보라는 개념은 오랜 반공주의 속에서 오염되어서 모든 인권을 억압할 수 있는 만능 면허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국가 안보라기보다는 정권 안보, 권력 안보의 측면에서 늘 사용되어 왔죠. (87쪽)


국가주의와 종교의 긍정적 관계 형성에서 반공주의와 군종 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종교인들은 선악 이원론을 이용하여 ‘반공주의 종교화’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구축한 방대한 ‘반공 인프라’를 통해 끊임없이 반공주의를 재생산해 왔습니다. (150쪽)



  곰곰이 돌아보면, 권력자는 모두 한통속입니다. 권력자는 서로 군대를 거느리면서 ‘한 나라를 이루는 여느 사람들’을 휘어잡습니다. 군대는 평화를 지키는 구실을 하지 않습니다. 군대는 권력자를 지키는 울타리 노릇을 합니다. 군대는 평화가 아닌 권력을 지키면서 평화를 늘 억누르는 노릇을 합니다.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사회의식이나 학교교육이나 정치지도자가 길들이려는 지식이 아닌, 우리 삶으로 제대로 바라보면서 잘 알아야 합니다.


  땅을 일구어 밥을 거두는 시골사람은 전쟁무기를 손에 안 쥡니다. 우리가 밥을 먹으려면 두 손에 호미와 삽과 낫과 쟁기가 있어야 합니다. 밭일이나 논일을 하는 사람이 허리에 권총을 찰까요? 아닙니다. 시골사람을 소작인이나 노예로 부리려고 하는 권력자가 허리에 권총을 찹니다. 시골에서 들일을 하는 사람은 웃통을 벗고 맨발에 맨몸에 맨손으로 오직 흙을 만질 뿐입니다.


  참다이 삶을 지으면서 아름답게 밥을 나누려고 하는 사람은 언제나 맨손입니다. 잘 바라보고 알아야 합니다. 나락을 거두고 푸성귀를 돌보는 시골사람은 늘 맨손이요 아무런 무기가 없습니다. 나무를 때어 밥을 짓던 먼먼 옛날 옛적 시골사람부터 오늘날 시골사람까지 언제나 가장 사랑스러운 손으로 밥을 짓습니다. 손에 총을 거머쥐면서 밥을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병역거부라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틀 안에서 병역제도의 비합리성, 폭력성에 저항하는 것이겠지만, 그것을 넘어서 국민화하려는 폭력에 저항하는 것은 물론 이런 국민화 과정이 아닌 다른 사회, 다른 나라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244∼245쪽)


학교가 폭력적인 구조 안에 있으니까 학교 폭력도 비일비재했죠 … 증상은 폭력적인 학교 문화, 입시 교육이라는 환경의 결과인데, 폭력의 결과를 오히려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셈이죠 … 폭력적인 아이들의 모습은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다는 절규일 수도 있는데, 구조가 그것을 들어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폭력은 사랑이 없는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269, 271, 275쪽)



  《저항하는 평화》라고 하는 이야기책은 평화가 무엇이고 전쟁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밑바닥을 샅샅이 훑고 헤아리면서 다룹니다. 폭력이 왜 태어나는가 하는 대목을 짚고, 폭력을 저지르는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메마른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며, 폭력으로 삶을 무너뜨리려는 전쟁이 왜 군대를 키우면서 이 사회와 나라를 집어삼키려 하는가 하는 대목을 돌아봅니다.


  젊은이는 군대에 가야 하지 않아요. 젊은이는 사랑스러운 보금자리에서 살림을 가꾸어야지요.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모두 군대 문제 때문에 휘둘리거나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사내와 가시내는 서로 아끼고 돌보면서 사랑스러운 마을을 일구는 슬기를 모아야 합니다.


  삶을 노래할 때에 평화입니다. 삶을 노래하지 않으면 평화가 아닙니다. 사랑을 꿈꿀 때에 평화입니다. 사랑을 꿈꾸지 않으면 평화가 아닙니다.


  살인 훈련은 평화가 아닌 전쟁입니다. 이제 갓 스무 살밖에 안 된 어린 사내한테 총칼을 쥐어 주면서 ‘어디에도 없는 적군’을 머릿속에 바보스레 만들어서 이웃을 잊고 동무를 밟고 올라서도록 길들이는 짓은 바로 권력자가 온누리 사람들을 억누리려고 하는 쳇바퀴 같은 제도입니다.



권력에 복종하니까 권력이 유지된다는 거예요. 따라서 민중들이 복종하길 거부한다면 권력은 서서히 무너질 수밖에 없죠 … 정치적으로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는 사람들이 자기 완결적인 삶의 구조를 갖춘다면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말을 안 듣는 세력이 될 수 있죠. (297∼298, 311쪽)


2008년 촛불은 계속 광화문으로만 집결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광화문만 명박산성으로 막으면 된다, 아주 쉽죠. (316쪽)



  사랑은 평화로 가고, 평화는 사랑으로 갑니다. 전쟁은 군대로 가고, 군대는 전쟁으로 갑니다. 사랑스러운 평화가 이루어지는 마을에는 전쟁도 군대도 없습니다. 사랑스러운 평화하고 동떨어진 곳에는 전쟁과 군대가 나란히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왜 성노예가 생겨야 했을까요? 이웃나라를 군대를 앞세운 총칼로 짓밟은 이들은 마음속에 오직 전쟁 생각만 있기 때문입니다. 해방을 맞이한 한국에도 왜 성매매가 있을까요? 이 나라에 참다운 평화가 없는 채 군대가 골골샅샅 또아리를 틀기 때문입니다.


  모든 폭력은 사랑이 없는 곳에서 싹트고, 사랑이 없는 곳에서 싹트는 폭력은 다른 폭력으로 자꾸 이어집니다. 모든 폭력을 잠재우는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이어지면서 평화로운 삶과 마을과 보금자리로 거듭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폭력이 아닌 사랑을 배우면서 찾을 노릇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이 삶을 가꾸려면, 전쟁은 그치고 군대를 없애면서 두레와 품앗이로 숲과 들을 일굴 수 있어야 합니다.



전쟁은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악의 총합이라고 할 수 있죠. 가난이나 기근, 굶주림, 인격 모독, 폭력, 거짓, 파괴, 아동학대, 강간과 매춘 등등. 거의 모든 나쁜 것이 전쟁 속에 들어 있습니다 … 인간을 인격으로 존중하지 못하는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내 말이나 행동에서 그런 악함이 나타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354쪽)



  군대가 그대로 있는 사회에서는 핵발전소도 그대로 있기 마련입니다. 군대를 차츰 줄여서 마침내 없애려고 하는 사회에서는 핵발전소도 물리치면서 없애려 하기 마련입니다.


  평등하고 평화와 동떨어진 나라에서는 폭력과 차별이 춤춥니다. 평등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에서는 참말 언제나 평등하고 평화가 따사로이 흐릅니다.


  아이들을 생각하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낳을 아이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전쟁무기와 군대와 폭력을 물려줄 생각인지, 아니면 아이들한테 꿈과 사랑과 평화와 평등을 물려줄 생각인지, 오늘 이곳에서 어른들 스스로 똑똑히 헤아려야 합니다. 아이들한테 전쟁무기와 군대를 물려준대서 평화로울까요? 아이들한테 참다운 사랑을 슬기롭게 물려주어야 비로소 평화롭지 않을까요? 4348.8.17.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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