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래 34. 범나비한테 다가서기



  렌즈에는 틀림없이 ‘더 좋은’ 렌즈가 있어서, ‘더 좋은’ 렌즈를 쓰면 사진이 그야말로 한결 눈부셔 보이곤 합니다. 게다가, ‘먼 곳에 있는 모습을 가까이 잡아당겨서 찍도록’ 하는 렌즈가 있어요. 이런 렌즈가 있으면 발소리를 내지 않고도 먼발치에서 사진을 어렵잖이 찍습니다. 그러나 나한테 있는 렌즈로는 ‘가까이 다가서지 않으면’ 크게 보이도록 찍을 수 없습니다. 숲에서 범나비가 짝짓기하는 모습을 찍자니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다가서야 합니다. 범나비는 ‘찰칵’ 소리로도 놀라기 때문에 꼭 한 번만 찍을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렌즈나 ‘당겨 찍는’ 렌즈는 없지만, 나는 ‘내 작고 가벼운’ 렌즈에 몸을 맡겨 내 나름대로 바라보는 범나비 몸짓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4348.8.11.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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