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2
츠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내 삶으로 삭힌 사진책 98



사진은 ‘전문(프로) 사진가’만 찍는가?

―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 1∼3

 츠키코 글·그림

 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5.4.25. 4500원



  무더운 한여름을 식히려면 무엇이 좋을까요? 우리 집 아이들은 얼음과자를 말하기도 하지만, 바다하고 골짜기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 집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없습니다. 부채만 있습니다. 한여름 한낮에 해가 높이 걸리면 그야말로 후끈후끈하지만, 처마 밑이라든지 나무 그늘은 제법 시원합니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모기그물을 치고 마룻바닥에 드러누워도 퍽 시원합니다. 시골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으면 서늘합니다. 도시라면 밤에도 더위가 꺾이지 않을 텐데, 시골하고 도시가 다른 대목은 바로 흙이랑 나무랑 숲이랑 풀이라고 느낍니다. 흙이 없고 나무하고 풀을 찾아보기 어려운 곳에서는 푸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어렵습니다. 흙이 있고 나무하고 풀이 넘실거리는 곳에서는 푸르면서 시원한 바람이 붑니다.


  자전거에 두 아이를 태워 골짜기로 나들이를 갑니다. 물놀이를 마친 뒤에 갈아입을 옷만 챙깁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햇볕이 스미지 않는 골짜기에서는 골짝물에 몸을 담그지 않아도 시원합니다. 골짜기에서는 귀가 멍할 만큼 우렁찬 소리를 내며 물이 흐르고, 이가 부딪힐 만큼 차가운 물살에 몸을 맡기면 더위는 가뭇없이 사라집니다.


  물방울이 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아이들이 물방울이 튀는 바위 틈으로 살살 다가가서 손이랑 발을 내미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미끌미끌한 돌을 밟고 골짝물에 풍덩 빠지는 모습을 보다가, 제비나비가 춤추며 날아가는 모습을 헤아리다가, 작은아이가 돌 틈에서 가재를 알아보고는 한참 들여다보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슬쩍 사진기를 손에 쥡니다. 나는 ‘사진가’ 아닌 ‘어버이’로서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커다란 카메라? 찌, 찍었어? 방금 찍은 거야? 왜 갑자기, 게다가 아무 말도 없이 찍고 가 버리는 건 또 뭐야?’ (1권 12∼13쪽)


“아, 그대로 있어. 먹는 모습 찍는 걸 좋아하거든.” “머, 먹는 모습 찍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은데?” (1권 26∼27쪽)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학산문화사,2015)이라는 만화책을 읽습니다. 모두 세 권짜리로 나온 만화책입니다. 만화책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이 만화책은 ‘사진기’와 ‘젊음(사랑이 꽃피는 계절)’을 그립니다. 사진을 좋아해서 ‘전문 사진가’가 되는 꿈을 키우려는 주인공(유키)이 있고, 전문 사진가로 나아가려는 짝꿍한테 마음이 사로잡힌 다른 주인공(아카리)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꽤 오래도록 ‘전문 사진가’답게 사진을 찍으며 살았습니다. 전시회를 연다든지 작품집을 낸 일은 없지만, 고등학생이어도 푼푼이 돈을 모아서 사진기하고 필름을 장만할 뿐 아니라, 손수 현상과 인화를 합니다. 다른 한 사람은 얼결에 서로 짝꿍이 된 뒤에 처음에는 ‘모델’처럼 사진에 찍히기만 하다가, 짝꿍이 선물한 조그마한 사진기를 보배처럼 간수하면서 틈틈이 사진을 찍는데, 오직 한 사람, 제(아카리) 마음을 사로잡은 짝꿍(요키) 모습만 찍어요.




“알바는 오늘 쉴 수 있는 거지?” “응!” “그럼 오늘 하루는, 같이 사진 찍으면서 보내자. 걸어가는 모습도, 이야기하는 것도, 하늘도, 길을 가는 사람도, 고양이도.” (1권 123쪽)


“국도 중앙분리대에 서서, 신호가 바뀔 때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종일 찍은 적이 있어. 카메라를 알아차리고 얼굴을 찡그리는 사람, 숨기는 사람, 노려보는 사람, 개의치 않는 사람 등등 여러 가지였지. 하지만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어. 다들 바빠서 신경 쓸 틈이 없는 것 같더라. 그러다 보니 내가 투명해진 기분이 들었어.” (1권 127쪽)



  만화책 《그녀와 카메라와 그녀의 계절》에서 흐르는 사진 이야기는 그리 대수롭지 않습니다. 남다르거나 대단하거나 놀랍거나 멋있거나 훌륭하다 싶은 ‘사진 이론’이라든지 ‘사진 철학’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저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이야기만 나옵니다.


  ‘프로 사진가’가 되기를 꿈꾸면서, 작은 도시를 벗어나서 큰 도시(도쿄)로 가고 싶은 아이(유키)는 ‘사랑이 꽃피는 짝꿍’을 사귈 마음이 없습니다. ‘프로 사진가’이든 ‘아마 사진가’이든 생각한 일도 생각할 일도 없는 아이(아카리)는 가난한 집안에서 늘 알바를 하면서 살림돈을 보태느라 취미나 꿈은 생각조차 한 일이 없다가, 그야말로 눈에 뜨이는 몸짓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가, 다른 사람 눈치는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즐겁게 한길을 걷는 아이(유키)를 처음 마주한 뒤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그리움이라면, 이윽고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은’ 느낌이며, 곧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며 함께 놀고 싶은’ 생각입니다. 이 다음으로는 어떤 마음이 들까요?



‘이 작은 35mm 필름만이 아니라, 내 안에도, 이 그림을 새겨서 잊지 않도록 해야지. 언제든지 오늘 아침을 떠올릴 수 있도록.’ (1권 154쪽)


‘내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줄 몰랐어. 아카리는 좋은 카메라맨.’ (2권 16쪽)




  사진을 처음 배우고, 사진기를 처음 다루며, 사진을 그야말로 처음으로 찍은 아이(유카리)는 문득 마음속으로 생각 한 줄기를 길어올립니다. ‘눈앞에 보는 그림을 마음에 새기자’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만 찍지 않고 마음으로 찍자고 생각해요.


  사진가로 나아가려는 짝꿍한테서 들은 “아카리는 좋은 카메라맨”이라고 하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아카리라는 아이는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 어떤 마음이요 눈빛이며 넋이고 삶인가 하는 대목을 사랑스럽게 읽어서 ‘가장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을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카메라맨”이라고 합니다.


  사진기 다루는 솜씨로 치자면 어리숙하지요. 사진기조차 선물로 받은 한 대만 있어요. 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어느 누구도 이 아이 마음을 따를 수 없다고 할 만합니다.


  사진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마음속에 있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찍을까요? 바로 마음으로 찍습니다. 사진은 어떻게 읽는가요? 언제나 마음으로 읽습니다. 사진이란 무엇일까요? 서로 아끼면서 언제나 사랑이 피어나는 마음입니다.



‘내가 유키를 찍은 사진에 ‘감정’이 담긴 걸까?’ (2권 33쪽)


‘유키가 찍고 싶어도 찍을 수 없는 사진을, 이제부터 내가 찍어 주겠어.’ (2권 48쪽)



  ‘유키’라는 일본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눈’하고 ‘하양’ 두 가지 뜻도 있습니다. 아카리라는 아이는 제 짝꿍을 떠올리면서 “내 생활은 흑백이었다. 유키를 만나고부터 컬러가 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다시, 색깔이 사라지려 한다.(2권 73∼74쪽)”고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어느 모로 보면 ‘유키’라는 아이는 흑백사진처럼 흑백이라고 여길 수 있고, 아직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하얀 바탕일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하얗게 감싸는 숨결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흑백(유키)’을 만나기 앞서 ‘흑백(따분한 삶)’이었다가, ‘하양(유키)’를 만나고부터 ‘컬러(무지개, 재미난 삶)’가 되었다고 하는 말을 가만히 돌아보다가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문득 이 아이들한테 한 마디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얘야, 흑백도 사랑스러운 삶이고, 컬러도 아름다운 삶이란다. 흑백도 즐거운 사랑이고, 컬러도 기쁜 사랑이란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하루를 즐겁게 나누면서 기쁘게 어깨동무를 한단다.




“그보다 나는 뭣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을까. 아무리 애써도, 보여줄 사람도 없는데.” (2권 71쪽)



  “뭣 때문에 사진을 찍고 있을까” 같은 혼잣말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또는 자주, 또는 으레 느끼는 생각이지 싶습니다. 참말 뭣 때문에 사진을 찍을까요? 재미있어서 찍겠지요. 좋아서 찍겠지요. 즐겁거나 기뻐서 찍겠지요. 아프거나 슬플 적에 이 마음을 달래려고 찍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서 찍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이웃하고 나누려고 찍겠지요.


  전시회는 왜 하고, 작품집은 왜 낼까요? 예술을 하거나 이름을 떨치려고 사진을 찍을까요? 어쩌면, 예술을 하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테고, 예술가로 이름을 알리거나 돈을 벌려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을 테지요. 어떻게 사진을 찍든 대단할 것도 대수로울 것도 훌륭할 것도 없습니다. 사진은 ‘전문가’만 찍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누구나’ 찍기 때문입니다.


  몇몇 전문가만 쓰라고 하는 사진기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루면서 제 삶이랑 사랑을 즐겁고 아름다우면서 재미나게 찍으라고 하는 사진기입니다. 노출이나 초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 찍는 사진’이나 ‘좋은 사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명작’이나 ‘걸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오늘 이곳에서 제 삶을 사랑하면서 찰칵 하고 단추를 눌러서 빚는 사진에 기쁜 이야기를 담자고 하는 사진기를 가슴으로 포근히 안으면 더없이 아름다우면서 반갑습니다. 4348.7.15.물.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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