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놀이' 님이 파리와 매미하고 얽힌 이야기에
즐거운 댓글을 붙여 주셔서
곰곰이 더 생각을 기울이며
이 글을 써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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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하고 ‘같음’을 바라보기
우리 집 작은아이를 보며 ‘가시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작은아이는 누나 옷을 물려입기도 하고, 얼굴 생김새가 가시내 같다고도 합니다. 우리 집 큰아이는 아직 많이 어렸을 적에 머리카락이 더디 자란 모습을 보고, 또 머리카락을 짧게 치니 ‘사내’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큰아이는 ‘이웃한테서 얻은 사내 아이가 즐겨입었다는 옷’도 거리끼지 않고 입었기에 ‘사내’로 잘못 보는 사람이 많았어요.
가만히 보면, 참 많은 이들은 옷차림을 보고 가시내랑 사내를 가르려 하며, 얼굴 생김새로도 가시내랑 사내를 가르려 합니다. 가시내인지 사내인지 알아내야 하거나 가려야 하는 일이 대수로울 수 있습니다만, 이보다는 두 아이가 어떤 이름이며 어떤 숨결이고 어떤 사랑인가를 먼저 바라보고 헤아릴 노릇이리라 봅니다.
풀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 풀하고 저 풀이 어떻게 다른가를 도무지 모를 수 있습니다. 강아지풀하고 골풀하고 갈풀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테고, 고들빼기하고 씀바귀는 고들빼기나 씀바귀를 캐거나 뜯어서 먹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무지 못 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풀을 보면서 어떤 풀인지 제대로 가리지 못하면 잘못 먹고 배앓이를 하기 일쑤입니다. ‘먹는 풀’하고 ‘약으로 삼는 풀’하고 ‘돗자리나 바구니를 엮는 풀’을 똑똑히 가를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풀은 ‘풀’이라고 하는 대목에서는 똑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풀이 저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까닭은 다 다르면서 저마다 새롭게 재미난 숨결이기 때문이에요. 어슷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똑같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하지 않습니다.
개미라고 해서 다 같은 개미가 아니고, 하루살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하루살이가 아닙니다. 사람도 이와 같아요. ‘사람이라는 목숨’으로는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가는 터전에 따라서 밥삶이나 옷삶이나 집삶이 달라요. 서양사람은 한·중·일 세 나라 사람을 가리기 어려울 테지만, 한·중·일 세 나라는 먹고 입고 자는 삶이 저마다 다릅니다. 날씨와 흙과 바람과 숲과 들과 바다가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국사람은 네덜란드나 덴마크나 룩셈부르크나 크로아티아나 이탈리아나 헝가리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말도 밥도 옷도 집도 다 다른데, 어떻게 다른가조차 알기 어렵겠지요.
시골에서 흙을 가꾸며 사는 사람은 ‘다 다른 벌레와 풀과 버섯과 나무와 꽃과 새’를 헤아릴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날마다 다른 바람과 날씨와 볕과 빛을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다 다른 빗소리와 비내음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바람소리와 바람내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름’을 익히고 배우면서 ‘같음’을 보살피고 사랑하는 삶이 시골살이라고도 할 만합니다.
어른(어버이)하고 아이는 다릅니다. 몸피가 다르고 기운이 다르며 생각이 다릅니다. 어른하고 아이는 같습니다. 목숨이 같고 숨결이 같으며 사랑이 같습니다. 서로 다르기에 배우고 가르칠 수 있습니다. 서로 같기에 아끼면서 어깨동무를 합니다.
‘다름’하고 ‘같음’은 늘 나란히 있습니다. 어느 하나를 더 살펴야 하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를 앞에 두거나 뒤에 두어야 하지 않습니다. 늘 나란히 흐르는 즐거운 눈길입니다. 4348.8.1.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