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서 책 한 줄 못 읽다
아이들하고 골짝마실을 다녀온다. 한여름 물놀이는 언제나 시원하고 즐겁기에 오늘도 씩씩하게 자전거를 몬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 날하고 사뭇 다르도록 다리에 힘이 안 붙는다. 왜 이리 힘이 안 붙을까?
골짜기에 깃들어 읽을 책을 두 권 챙겼다. 골짜기에서는 숲바람이랑 물내음이랑 풀빛이 온몸을 고요하게 북돋아 주어서 책 두 권쯤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다. 골짝물에 몸을 반쯤 담그며 책을 읽으면 얼마나 재미나면서 신나는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몇 쪽 읽기도 벅차서 그만 바윗돌에 책을 내려놓고는 끙끙 소리를 내며 드러눕는다. 큰아이가 “아버지, 이제 집에 가자!” 하고 부를 때까지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한다.
골짜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이다. 수월하다. 어찌저찌 잘 돌아온다. 자전거를 들이고, 빨래와 이불을 걷고, 부엌을 치운 다음, 아이들한테 먹을것을 차려 놓는다. 곧장 쓰러지고 싶지만 쓰러질 수 없다.
맑은 물을 몇 모금 들이켜면서 생각한다. 마음이 힘들기에 몸이 덩달아 힘들다. 마음을 달래지 않는다면 몸을 살릴 수 없다. 노래하는 마음을 찾자. 내가 볼 모습은 ‘골짜기에 깃든 도시 손님이 버린 쓰레기’가 아닌 ‘골짜기에 늘 한결같이 흐르는 짙푸르고 싱그러운 기운’이다. ‘여름철 도시 손님이 버린 쓰레기’만 쳐다보면서 눈살을 찌푸리면 마음까지 괴롭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노는 모습’에 마음을 기울일 때에 나도 웃음이 나온다.
누군가 나를 해코지하려고 한들 다른 사람이 나를 해코지할 수 있지 않다. 해코지하려는 사람 스스로 이녁 마음을 망가뜨릴 뿐이다. 나는 내 마음속에 깃든 고운 넋을 바라볼 노릇이고, 내 곁에서 아름답게 노래하는 숨결을 사랑으로 어루만지면 될 일이다. 바람 분다고 쓰러지는 나무가 어디 있나? 나무는 바람이 불면 싱그러운 소리를 내며 춤을 춘다. 나도 춤을 추자. 4348.7.31.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