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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에 대한 글은 아니다.

연필로 글을 쓰는 몸이 바라보고 살아낸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연필은 글을 만들어내는 형식이자 조건이고 몸이다.

그러한 몸을 자각하는 의식의 표상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연필은

이 책의 전부라 해도 과언 아니다.



필압을 주지 않으면 흑연 입자는 종이 위에 밀착하지 못하고 달뜬다.

김훈 선생 문장의 밀도는 읽는 사람에게도 꾹꾹 눌러읽기를 요구한다.

느리고 느리다.

즐겁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고 단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세를 고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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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인과 싸우다>

 

 

김사인이라는 시인이 있다. 김사인이라는 시인을 좋아한다고 표명하고 다니는 것만으로 하느님이 날 쫌 좋게 봐주셨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내게는 그런 시인이다.

그의 시들은 누구도 핍박해본 적 없는가녀린 타자들을 나라는 존재 안쪽으로 깊숙이 끌어들인다. 그것은 결코 대상화될 수 없는 기이하게도 가까운 풍경이며, 눈물로 이루어진 숲의 아름다움이다.

그 눈물의 끝은 육체적 소진에서 오는 자포자기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 가만한 존재들과 함께 나도 기어기 살아내 보자고 하는 윤리적 다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나는 감히 김사인의 시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근래에 새로 나온 책들을 둘러보다가 기이한 제목의 시를 하나 발견했다.

김사인과 싸우다

도대체 어느 호로 시인(?)이 김사인과 싸우겠다고 덤볐단 말인가? 박신규라는 첫 시집을 낸 시인이다. (이런 하룻강아지 시인!)

이 시집을 읽은 한나절 내내 겨드랑이가 몇 번이나 떨렸다는 고은 시인의 추천 글이 눈길을 끈다. 하지만 이 추천 글이 아니더라도 김사인과 싸운 시인이라면 꼭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얼른, 우선, 장바구니에 담아둔다.

 

 

박신규 시인님, 면담 좀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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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고래와 돌고래에 관한 모든 것
애널리사 베르타 지음, 김아림 옮김 / 사람의무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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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은 유식해보이기 위해서 쓰는 게 아니다>

 

 

 

최근에 고래에 대해 몇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기사를 검색하다가 올해 초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 외국 고래 52종의 국명을 확정 발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37종의 국명은 이미 2012년에 발표되었다.

 

고래는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생물학을 연구한 애널리사 베르타가 세계 고래 90종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는 고래도감이다. 2016년에 번역되어 나온 책이다. 따라서 올해 발표한 표준 국명과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서 한번 대조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단박에 난감한 상황에 부딪치고 말았다. 이 책은 국명 아래에 학명을 표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게 조금 이상하다. 예를 들면 대왕고래의 학명 Balaenoptera musculus’를 한글로 발라이노프테라 무스쿨루스라고 적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학명 인덱스만 제대로 붙어있으면 찾아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인덱스조차도 철저한 한글 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니 (눈물이 난다!) 국명과 한글 표기 학명의 짬뽕 인덱스이다. 찾아보려고 하면 한글로 일일이 또박또박 옮겨 읽어가면서 찾아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수산과학원이 꼬마부리고래라고 명명한 ‘Mesoplodon peruvianus’는 한글로 메소플로돈 페루비아누스라고 옮겨서 인덱스에서 찾아야한다. ‘꼬마부리고래를 이 책에서는 난쟁이부리고래로 옮겨놓아서 '꼬마부리고래'라는 국명으로는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조판이나 그림이나 내용 설명이나 모두 꽤 공을 들여서 잘 만들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고래도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고래도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명이 제대로 기재되지 않아서 쓰임새에 제약이 있으니 매우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대왕고래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Balaenoptera musculus’ 라고 하는 것은 학자연하는 악취미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학명을 표기해주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대왕고래와 일본의 시로나가스쿠지라가 동일 생물종임을 알 수가 없다. 대왕고래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는 정보를 알아보려고 해도 대왕고래발라이노프테라 무스쿨루스가 아니라 Balaenoptera musculus’ 라고 검색해야 세계 여러 나라의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이 책이 비록 일반인을 위한 대중서라고 해도 Balaenoptera musculus’ 라고 표기해 주는 것이 맞다.

 

 

(게다가 학명에는 명명자가 이 종의 어떤 특징에 착안해서 이름을 붙였는지를 알려주는 소중한 정보가 들어있다. '페루부리고래'로도 불리는 꼬마부리고래는 학명에 ' peruvianus’가 들어있는 것만 보아도 '페루'에 '사는 것'을 알 수 있지만 '페루비아누스'에서는 그 사실을 유추하기가 어렵다. 대왕고래의 학명에 들어있는 musculus’는 대왕고래가 근육질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해주지만 '무스쿨루스'는 그저 의미없는 음운의 조합일뿐 그런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린네가 명명법을 창안한 이래로 알파벳으로 학명을 병기하는 것은 생물학 분야에 있어서는 ABC에 속하는 기초이다. 그런데 이 책은 어쩌다가 이것을 한글로 적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을까?

어린이들 중엔 기나긴 공룡의 학명을 줄줄이 외우는 공룡 마니아들이 있다. 공룡이야 한국 표준 종명이랄 것이 없으니 그냥 학명을 한글로 적어서 이름 붙인 것을 보고서 외워 부르는 것이다. 고래도 아이들이 좋아하기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동물이니 어린이들이 널리 외우기에 편하라고 고안한 배려일까? (그러니까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겨서?)

 

 

학명은 외워서 잘난 척 하라고 있는 게 아니다. 언어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버린 인류가 바벨의 숲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마련한 하나의 이정표일 뿐이다.

잘 만든 책의 옥의 티가 커서 속이 상하다.

 

 

 

 

 

 

* 덧붙임 : 이 책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고래도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의 관심종인 귀신고래 같은 종이 이 책에는 빠져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멸종이라도 된 듯, 이름처럼 귀신같이 사라져버려서 오랫동안 우리나라 연구진들을 애태워왔다. 그러다 몇 년 전 귀신고래의 다른 개체군인 캘리포니아 귀신고래와 함께 생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찰 결과가 나와서 약간의 희망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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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09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래 책을 읽으시다니 흔치 않다, 싶어서 눌러 보니 인기 있는 고래 책이었네요. 저도 좀 넓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풀꽃놀이 2017-11-09 07:06   좋아요 0 | URL
다른 생물에 비해서 고래에 대한 관심이 좀 높은 편이고 워낙 잘 만든 책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도감이라 통독에는 무리가 있고 나중에 다른 고래 책이랑 엮어서 한번 보심이...
저요? 저는 워낙 도감류를 좋아하는 마니아랍니다^^
 

 

 

 

 

11월 7일

 

1. <그러므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

 

  2. 모든 길은 걸음의 흔적이다. 그리고, 흔적(痕迹)은 말 그대로 발뒤꿈치의 상처, 헌데를 가리킨다.

 

 

 

 

3. 그러면 누가 걷는가? - - - 그것은 상처받은 사람이다. 조금 더 정확히는, 상처를 받은 탓에 세계가 세속이라는 미로(迷路)로 바뀐 사람을 말한다. 내 오래된 명제를 반복하자면, 당신들은 이동하지만 상처받은 사람은 걷는다.

 

 

 

 

4. 풍경을 벗기면 벗길수록 죄가 솟구치는 자리에 뭔지 모를 것이 끊어져 자리라고 할 수 없는 자리에

 

그 짐승 같은 시간들을 밀지 못해서 잡지 못해서

 

살이 붙어 흉이 많다

 

 

 

 

5. 지상의 내 발걸음

어둡고 아직 눅은 땅 밟아가듯이

늦은 마음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출처>

1. p.5 풍경과 상처(김훈/문학동네/1994)

2. p.190 산책과 자본주의(김영민/늘봄/2007)

3. p.25 상동

4. p.90 순정, 바람의 사생활(이병률/창비/2006)

5. p.43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 홀로 등불을 상처 위에 켜다(윤후명/민음사/1992)

    

 

 

 

 

 

 

* 길 위에 피딱지가 앉았다. 그 피딱지는 내 발뒤꿈치를 덮고 있는 상처에서 연원한다. 흉이 많은 발이 부끄럽다. 아직 이 어둡고 눅진한 땅을 떠나지 못한다, 나는.

어깨를 쳐 돌아보면 바람과 낙엽과 귀신의 장난질이다. 이렇게 가을은 가도 좋은가.

네가 오지 않았는데, 벌써 문이 닫히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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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 아야코와 거리를 둔다

 

 

 

 

 

 

얼마 전에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접했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라는 에세이를 쓴 소노 아야코라는 일본 작가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아베 정권에 자문역도 했던 극우 인사라는 내용이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371039

 

 

평소 일상생활에 주는 지혜로운 말씀같은 가벼운 에세이는 전혀 읽지 않는 편이라서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그다지 관심 없이 흘려보았던 책이다. 그러나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제목은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하얀색 수영모를 쓴 여성이 무릎을 높게 들어 올리면서 물속을 보행하는 일러스트의 표지는 꽤 상큼하고 제목과 잘 어울려서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꽤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다. 알라딘 검색 결과에 의하면 에세이 주간 7, 세일즈 포인트는 무려 82,828점이나 된다.

 

 

대한민국에서 잘 팔리는 책이 일본 극우 인사의 작품이라니 꽤 흥미 있는 지점이다. 글이란 결국 자기표출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진대 이 기사가 나기 전까지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그 사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번에 자료를 조사하다가 특별히 마음 심란한 사실 하나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난번에 포스팅 했던 오에 겐자부로는 극우 인사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글을 써서 평생 테러 협박에 시달렸고 법정에 서는 일까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오키나와 노트사건인데 이 책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전쟁 말미 일본군이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집단 자결을 강요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오에는 당사자로 지목된 이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게 된다. 이때 맨 처음에 나서서 오에의 책이 부실한 취재와 왜곡으로 얼룩져있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소노 아야코이다. 이쯤 되면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나는 작가=작품이라는 평면적인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가 어떠한 사람이든 일단은 작품을 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편 가르고 규정하는 그 규율의 바깥을 보는 것이 문학일진대 어떻게든 쉽게 단정하기보다는 섬세한 결을 살피려고 노력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우선은 정나미 떨어진 마음을 살짝 한쪽에 밀어놓고 소노 아야코의 책을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그의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는 약간의 거리를 둔다는 도서관에 예약이 밀려있어서 빌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궁금해도 사서 보기는 좀 거시기하다.) 그래서 약간의 거리를 둔다대신에 조금 오래된 책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베스트셀러인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를 대출하였다. (이외에도 국내에 소개된 소노 아야코의 책이 매우 많아서 깜짝 놀랐다. 동네 도서관의 에세이 코너에만도 10권 정도의 책이 꽂혀있었다.)

 

 

 

 

 

 

2005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일본에서는 이보다 훨씬 오래전인 1972년에 발표되어서 초장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작품이다. 원제는 계로록 戒老錄인데 늙음을 경계하는 책정도로 번역이 되겠다. 본문의 내용을 보아도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보다는 나는 이렇게 늙고 싶다정도가 더 원래 뜻에 가깝다고 하겠다.

우선, 목차를 일부분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남이 주는 것’, ‘해주는 것에 대한 기대를 버린다

남이 해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일단 포기할 것

노인이라는 것은 지위도, 자격도 아니다

가족끼리라면 무슨 말을 해도 좋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고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생애는 극적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한가하게 남의 생활에 간섭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생활 방법을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할 것

푸념을 해서 좋은 점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명랑할 것

삐딱한 생각은 용렬한 행위, 의식적으로 고칠 것

무슨 일이든 스스로 하려고 노력할 것

 

      -  -  -  -  -  -  -  -  -  - 

 

 

어떤 사람에게는 하품이 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격언에서 감동을 얻는 사람이라면 가끔 읽어보면서 마음을 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가 자신의 생애 단계에 맞춰서 노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어떤 나이 대에 대입해도 옳은 말들이다. 각 꼭지의 전개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이런이런 노인들이 있다(내가 보았다). 그러한 자세는 이러이러해서 좋지 않다(남우세스러운 일이다). 그러니 이러이렇게 나이를 먹어갈 일이다.’ 옛 경세서들의 간략함을 따르려고 한 듯하다.

 

 

그런데 약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서지 정보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1972년에 노인이거나 노인에 막 접어들려고 하는 나이였다면 도대체 지금은 몇 살이라는 건지 잘 계산이 되지 않았다. 책을 쓸 때 55세나 60세 정도 되었다고 하면 지금 벌써 100세가 훌쩍 넘었다는 소리인데 .... 어라~~ 1931년생, 그리고 출판년도가 1972년도. 그러니까 소노 아야코가 이 책을 낸 것은 자기 나이 41살 때의 일인 것이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고 앞서 읽었던 글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40대가 어떠한 나이 대인가? 머리가 굵어도 여전히 돈이 들어가는 자식들 뒷바라지가 힘겹고 예전 같지 않은 부모님을 바라보며 이별을 예감하는 마음은 졸아든다. 그 많은 책임감 앞에서 지금 일터에서 몇 년이라도 더 버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젊지 않다는 것을 매일매일 느끼지만 이 나이에 준비해야할 노년은 돈의 문제이지 아직은 마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하물며 잘 늙는 일에 대해서 꽤 잘 안다고 행세까지 하는 건 너무 건방진 일이 아닌가.

 

 

아무리 좀 옛날이라고는 하지만 일찍이 노령사회로 접어든 일본이고 보면 당시에도 41살의 소노 아야코가 노년에 접어들 나이로 여겨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책은 노년 당사자의 자기 성찰이 담긴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안의 노화의 기미를 채서 윗세대의 모습에 비추어 고찰해보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의 늙음은 어디까지나 관찰한 늙음, 남의 늙음인 것이다. 그런데 소노 아야코는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다.

 

 

 

p. 253

<노년의 고통이란 인간의 최후 완성을 위한 선물>

------------ (중략) ------------

그러나 인간은 행복에 의해서도 충족되지만, 괴로움에 의해서도 더욱더 크게 성장한다. 특히 자신의 책임도 아니며, 까닭도 없는 불행에 직면했을 때만큼 인간이 크게 성장하는 시기도 없다. 노년에 일어나는 이런 저런 불행도 바로 이러한 시련인 것이다.

만일 내가 그러한 불행을 젊었을 때 경험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서 자살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40, 50, 60년 혹은 그 이상의 체험은 우리에게 그것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마련한다.

 

 

 

 아직 겪어보지 않은 노년의 고통에 대해 소노 아야코는 이렇게, 겪어본 일처럼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노년의 고통은 신의 축복이니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고통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어서 남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하는 일은 반드시 어긋나거나 미치지 못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겪을 경험이라 해도 아직 겪지 않은 자는 그 고통의 면면을 알 수가 없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무력감,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무엇보다도 당장의 빈곤. 그 높은 노인 자살률이 시련을 성장의 동력으로 바꾸지 못한 무능력 때문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앞에서 겸허해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이고 그럴 줄 아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경계하는 마음만 있고 헤아리는 마음이 없다. 모든 걸 쉽게 판단하고 쉽게 단정 짓고 쉽게 훈계하는데  옳은 소리만 넘치고 그런 결론에 이른 마음의 결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책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것 같다. 글이 자못 담박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4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소노 아야코의 다른 책들은 좀 달라졌을까? 내가 살아보며 얻은 몇 안 되는 진리 중의 하나는 늙은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글이란 어떻게든 글을 쓴 이의 정체를 드러내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소노 아야코에게 가졌던 궁금증을 내려놓는다. 대신에 (일본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작가의 책이 십수 종이나 번역되어 나올 정도인 대한민국이 궁금하다.

 

소노 아야코와는 거리를 두려고 한다.

 

 

 

 

 

덧붙임 : 약간의 거리를 둔다의 원제는 人間分際이다. ‘인간의 분수정도로 옮길 수 있겠다. ‘니 분수를 알아라할 때의 그 분수이다. 조금 시니컬하고 꼰대 같은 인상이 드는 것이 계로록 戒老錄과 뉘앙스가 비슷하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로 제목을 바꾼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 그림을 포함해서 우리나라 출판사의 마케팅은 주목할 만하다.

    살펴보니약간의 거리를 둔다』이후에도 같은 출판사에서 두 종의 책이 더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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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07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는 <약간의 거리를 둔다>를 읽고, 정말 별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자기가 쓰기 어려운 것을 쉽게 단정하고 자기가 쓸 수 있는 것에는 별 게 없는 작가였군요. 저도 거리를 두어야겠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풀꽃놀이 2017-11-07 11:17   좋아요 1 | URL
오에 겐자부로와의 이야기에 완전 빡쳐서 어쩌면 저도 좀 선입견을 갖고 봤는지도 모르겠다 했는데...역시 <약간의 거리를 둔다>도 별게 없군요^^ 글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확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7-11-07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출판사는 일본 작가에 대한 사전조사나 검증없이 책을 펴내는 것 같아요. 판매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작가의 이념은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가 봐요. 《우동 한 그릇》의 저자는 이미 오래전에 일본 내에서 사기꾼으로 들통났는데, 우리나라에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거예요.

풀꽃놀이 2017-11-07 15:38   좋아요 1 | URL
기사에서 보면 출판사 리수의 편집자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하네요. 하지만 2~30년 전도 아니고 지금 세상에선 변명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우동 한그릇‘의 저자는 맥락이 좀 다르긴 해도 아예 프로필이 범죄자인 인물이지요. 아직도 그 책이 왜 그리 팔렸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시이소오 2017-11-07 2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약간을 읽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군요. 대표적인 여자꼰대군요.
좋은정보 주셔 고맙습니다^^

풀꽃놀이 2017-11-09 18:37   좋아요 0 | URL
여자꼰대...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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