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소년학급단 6
후지무라 마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530



‘흙이 된 나뭇잎’은 무척 향긋하다

― 소년소녀학급단 6

 후지무라 마리 글·그림

 정효진 옮김

 학산문화사 펴냄, 2012.6.25.



  나무는 해마다 잎을 떨굽니다. 나뭇가지에서 바싹 마른 잎을 떨구기도 하고, 짙푸른 잎을 그냥 떨구기도 합니다. 때로는 거위벌레가 삭삭 갉느라 나뭇가지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한 해 내내 나뭇잎이 나무 둘레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나뭇잎은 한 해가 지나면 감쪽같이 사라집니다. 나뭇잎은 어디로 사라질까요? 나뭇잎은 어디로 갈까요?


  나뭇잎이 떨어진 자리에는 지렁이랑 콩벌레랑 달팽이랑 개미랑 온갖 벌레가 깃듭니다. 무당벌레와 굼벵이가 나뭇잎이 쌓인 곳에서 한집살이를 하기도 합니다. 나뭇잎은 나무 둘레에 수북히 쌓이는데, 이 잎은 한 해 사이에 삭고 바스라지면서 새로운 모습이 됩니다. ‘잎’이라는 몸을 내려놓고 ‘흙’이라는 옷을 입습니다. 모든 나뭇잎은 한 해 사이에 새로운 흙으로 거듭납니다.



“하루카, 오늘 영 컨디션이 안 좋구나. 어디 아프냐?” “괘, 괜찮아요. 4점이나 내줘서 죄송합니다!” ‘생리 따위로 컨디션을 망쳤다간, 이래서 여자는 (야구가) 안 된다고 생각할 거야.’ (16쪽)

‘아직 여유가 있었어. 아직 시합할 수 있는데. 나, 에이스인데, 내가 먼저 시합을 포기했어.’ (28∼29쪽)



  후지무라 마리 님이 빚은 만화책 《소년소녀학급단》(학산문화사,2012) 여섯째 권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학교 야구부’입니다. 모든 주인공이 야구부는 아니나, 만화책 이야기를 이끄는 아이들이 야구부입니다. 이 가운데 하루카라는 가시내가 야구부에서 주전 투수요 타자입니다.


  하루카라는 가시내는 달거리를 모르던 때에는 언제나 거리낌없이 훈련을 함께 하고 경기를 같이 뜁니다. 그런데, 처음 달거리가 찾아오고 나서 크게 흔들립니다. 동무(모두 사내)들한테 이 일을 섣불리 밝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프다’고 할 수도 없고, 스스로 이도 저도 못하고 맙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모르는 채 홀로 슬픔에 젖습니다.



“엄마가 날 여자로 낳아서 그래! 남자로 낳아 줬으면 야구도 마음껏 할 수 있고, 코시엔도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남자로 낳아 주지 않은 거야! 다시 낳아 줘!” (30∼31쪽)



  살아가는 기쁨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살아가는 보람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살며 누리는 사랑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살며 만나는 이웃이랑 동무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더 나은 기쁨이나 덜떨어지는 기쁨은 없습니다. 더 나은 보람이나 덜떨어지는 보람도 없어요. 사랑이나 이웃이나 동무도 모두 같아요. 어느 사랑을 놓고 더 낫다고 하지 않고, 어느 사랑을 가리켜 덜떨어진다고 하지 않아요.



“그때 겁먹지 말고 노력했다면 뭔가 변했을지도 모르는데, 넌 어떻게 할래? 야구를 계속할 거니? 아니면 여자라고 포기할래? 남자들과 야구를 하는 건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거야. 어떻게 할지는 전부 네가 결정할 일이지. 엄마를 탓해 봐야 아무 소용없잖아.” (38∼39쪽)



  가시내로 태어난 아이가 ‘야구나 다른 운동경기’를 마음껏 할 수 없을 적에, 이 아이가 느낄 벼랑이 얼마나 깊은지는 이 아이와 같은 자리에 서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습니다. ‘가시내끼리 야구를 하면 되잖아’ 하고 말한들, 이런 말로는 아픔이나 슬픔을 달래 주지 못합니다. 가시내로 태어나서 사내보다 솜씨나 재주가 훨씬 뛰어나서 운동경기를 더 잘한다 하더라도 사회나 제도나 규칙이나 편견 같은 울타리 때문에 가로막혀서, 그만 “남자로 다시 낳아 줘!” 하고 외치는 아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어머니도 괴롭습니다.


  우리는 서로 어떤 길을 가야 즐거울까요. 우리는 다 함께 어떤 삶을 지어야 기쁠까요. 눈물이나 아픔이나 슬픔이 없는 삶이나 사회를 이룰 수 없는 노릇일까요. 성별에 따라서 이것과 저것을 꼭 나누어야 할까요. 성적에 따라서 이 학교와 저 학교를 굳이 갈라야 할까요. 계급이나 재산이나 신분으로 사람 사이를 얽매는 사회 틀거리를 그대로 두어야 할까요.



“그런 짓 하면 안 돼. 하루카를 좋아한다면, 남자라면, 좋아하는 사람의 행복을 빌어 줘야지!” (125쪽)



  ‘흙이 된 나뭇잎’은 무척 향긋합니다. 나는 맨손으로 ‘흙이 된 나뭇잎’을 훑습니다. 향긋한 냄새가 그윽히 퍼지는 ‘흙이 된 나뭇잎’을 두 손 가득 그러모아서 나무 둘레에 뿌립니다. 다시 나무한테 돌아가서 새롭게 나무를 살찌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해마다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 둘레에 ‘흙이 된 나뭇잎’이 차곡차곡 새롭게 쌓이면서 다 함께 기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고, 어른은 짝을 만나서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태어난 아이는 새롭게 자라서 새롭게 어른이 되며, 새롭게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금 새로운 짝을 만나서 새롭게 아이를 낳습니다.


  새롭게 흐르기에 삶입니다. 새롭게 이어가기에 사회요 문화입니다. 아이도 어른도 저마다 가슴에 기쁜 이야기를 담으면서 즐겁게 웃을 수 있기를 빌어 마지 않습니다. 4348.6.26.쇠.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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