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티와 거친 파도 비룡소의 그림동화 125
바버러 쿠니 글 그림, 이상희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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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543



삶을 그릴 줄 알기에 누구나 ‘화가’

― 해티와 거친 파도

 바바라 쿠니 글·그림

 이상희 옮김

 비룡소 펴냄, 2004.7.9.



  날마다 그림을 그리면서 놉니다. 나한테는 ‘화가’라는 이름은 없으나 ‘어버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솜씨 좋은 그림을 아이한테 보여주거나, 멋들어진 그림을 아이한테 내밀지 않습니다. 아이하고 둘러앉아서 그림놀이를 합니다.


  두꺼운 종이에 그림을 그린 뒤 가위로 알맞게 오리면 ‘조각맞추기’를 할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상품을 사서 조각맞추기 놀이를 할 수 있고, 집에서 손수 그림을 그려서 조각맞추기 놀이판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만히 헤아리면, 어버이가 날마다 보여주는 모든 몸짓과 모습은 아이한테 그림이라고 할 만합니다. 밥차림도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그림과 같은 모습이요, 어버이가 날마다 읊는 말마디까지 모조리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해티가 야무지게 대답했어요. “난 화가가 될 거예요.” 피피와 볼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음을 터뜨렸어요. “어휴, 저 바보! 너, 진짜 멍청하구나! 여자는 페인트칠 같은 건 안 해!” 해티도 페인트칠장이를 말하지 않았어요. 하늘에 뜬 달, 숲 속에 부는 바람, 바다에 이는 거친 물결을 그리는 화가를 말했답니다. (6쪽)



  바바라 쿠니(1917∼2000) 님이 빚은 그림책 《해티와 거친 파도》(비룡소,2004)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그림책을 그리는 바바라 쿠니 님이 이녁 삶을 담아서 《해티와 거친 파도》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 그림책에는 ‘그림책 그리는 할머니’인 바바라 쿠니 님이 걸어온 길하고, 이녁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함께 담았다고 합니다. ‘화가’라고 하는 직업을 사람들이 떠올리지 못하던 무렵, 또 여자는 ‘화가’로 지내기 어렵던 무렵, 바바라 쿠니 님하고 이녁 어머니는 화가로 한길을 걸었다고 해요.



때때로 바다는 퍼런빛을 띠면서 사납게 바뀌었고, 하늘은 검은빛이 되기도 했어요. 해티는 강아지를 품에 안으며 물었지요. “에비야, 지금 저 거친 물결이 뭐라고 말할까?” 물결이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해티와 에비는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았어요.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금세 알 수 있었거든요. (23쪽)




  그러고 보니, 바바라 쿠니 님이 빚은 그림책으로 《미스 럼피우스》, 《강물이 흘러가도록》, 《달구지를 끌고》, 《바구니 달》, 《신기료 장수 아이들의 멋진 크리스마스》, 《챈티클리어와 여우》, 《꼬마 곡예사》, 《엘리너 루스벨트》, 《에밀리》 같은 작품이 있는데, 하나같이 시골살이를 노래하거나 ‘남자 사회에서 곱게 홀로서기를 하는 여자’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권력이나 명예가 아닌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 발자국을 보여줍니다. 그림책 《해티와 거친 파도》에서 해티라는 아이가 품은 꿈처럼, ‘하늘에 뜬 달’이랑 ‘숲 속에 부는 바람’이랑 ‘바다에 이는 거친 물결’을 그림으로 빚어서 어린이하고 한결같은 놀이동무로 지내는 화가로 살았다고 할까요.


  예술을 해야 화가이지 않습니다. 전시회를 열거나 예술사에 이름을 올려야 화가이지 않습니다. 삶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노래와 같은 붓질로 종이에 얹어서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화가입니다. 그림 한 점을 비싸게 내다 팔 수 있어야 화가이지 않습니다. 그림 한 점에 사랑을 오롯이 담아서 이웃하고 즐거이 어깨동무할 수 있는 삶을 펼칠 수 있으면 화가입니다.



어느 화요일 저녁이었어요. 음악이 오페라 하우스 가득히 물결치고 저 아래 무대에서 한 여인이 뜨겁게 노래를 불렀어요. 칸막이 좌석에 앉은 해티는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지요. 해티는 비로소 깨달았어요. 나도 온힘을 다해 그림을 그릴 때가 왔다고 말이지요. (35쪽)




  바바라 쿠니 님은 가슴이 뜨겁게 불타오르도록 그림을 그리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다짐대로 스스로 길을 닦습니다. 앞으로 걸어갈 길이 거친 물살을 헤쳐야 하더라도 대수롭지 않습니다. 거친 물살은 거친 물살대로 맞이하면서 헤치면 됩니다. 때로는 거친 물살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거친 물살을 맞다가 지칠 수 있습니다.


  씩씩하게 걷는 한길이 고단하거나 지치면 좀 쉴 수 있습니다. 쉬었다가 다시 기운을 내면 됩니다. 남이 시키는 길을 갈 까닭이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거듭 생각하면서 한길을 걷습니다. 이 땅에 태어난 뜻을 헤아리고 새로 헤아리면서 삶을 가다듬습니다.


  삶을 그릴 줄 알기에 누구나 ‘화가’입니다. 삶을 그릴 줄 모르기에 누구나 ‘화가’가 안 됩니다. 사랑을 그릴 줄 알면 어린이도 어른도 다 함께 ‘화가’입니다. 사랑을 그릴 줄 모르면 아무리 그림값을 비싸게 받더라도 ‘화가’로 살지 못합니다.



해티는 엄마 아빠한테 말했어요. “드릴 말씀이 있어요.”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어요. “무슨 얘기니?” 해티는 잠자코 냅킨을 접었어요. 그리고 냅킨꽂이에 그걸 도로 꽂았지요. 해티 눈이 반짝거렸어요. “화가가 되려고 해요.” 해티 말에 엄마가 웃음 지으며 말했어요. “외할아버지처럼 되고 싶구나.” 해티가 대답했지요. “네, 그렇지만 저는 제 그림을 그릴 생각이에요.” (39쪽)




  어린 해티는 가슴에 품은 꿈을 놓지 않습니다. 스스로 배우고 싶어서 대학교에 가기로 하고, 스스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화가’라는 이름을 가슴에 새로 새깁니다. 붓이랑 놀면서 이야기를 빚습니다. 달이랑 해랑 별을 바라보면서 꿈을 키우고, 숲과 들에서 뛰놀던 나날을 되새기면서 꿈을 가꾸며, 너른 바다가 들려주는 바람노래를 떠올리면서 꿈을 짓습니다.


  온 하루가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그림으로 옮깁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롭습니다. 이 새로움을 새삼스레 그림으로 엮습니다. 기쁨을 느끼지 못할 적에는 그림을 그리지 못합니다. 새로움을 알아차리지 못할 적에는 붓을 손에 쥐지 못합니다. 밥이 끓는 소리에도 기쁘게 웃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소리에도 새롭게 웃으며 그림을 그립니다.


  가슴을 활짝 펴고 바람을 마시기에 그림을 그리고 삶을 그립니다. 눈을 크게 뜨고 구름을 바라보기에 그림을 그리고 삶을 그립니다. 그림으로 그릴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곱게 흐릅니다. 내 곁을 돌아볼 수 있으면, 이러면서 손에 붓을 쥘 수 있으면, 우리는 누구나 화가로 살 수 있습니다. 4348.6.25.나무.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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