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읽다, 이탈리아 세계를 읽다
레이먼드 플라워, 알레산드로 팔라시 지음, 임영신 옮김 / 가지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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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13



삶은 늘 여행이 된다

― 세계를 읽다, 이탈리아

 레이먼드 플라워·알레산드로 팔라시 글·사진

 임영신 옮김

 가지 펴냄, 2015.6.10.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서 멀디먼 나라로 찾아갈 적에도 여행이고, 두 다리로 천천히 걸어서 십 분이나 한 시간쯤 걸리는 곳을 다녀올 적에도 여행입니다. 가까운 곳에 가니까 여행이 안 되지 않습니다. 먼 곳에 다녀와야만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는 골목마실을 할 만합니다. 골목마실은 골목여행입니다. 도시에서는 시골마실을 할 만합니다. 시골마실은 시골여행이에요. 이와 거꾸로, 시골사람은 도시마실, 곧 도시여행을 할 수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는 모든 일은 여행입니다. 논일을 하려고 논둑을 걸어가는 일도 여행입니다. 면사무소나 면소재지 우체국에 다녀오려고 자전거를 달리는 일도 여행입니다. 시골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도시에서 시내버스를 타는 일도 여행입니다. 수많은 회사원이 전철을 타고 일터를 오가는 일도 여행이에요.




이탈리아는 분명 하나의 국가다. 하지만 남부와 북부로 나누고 중부를 따로 구분하면 세 지역이 된다. 시칠리아섬과 사르데냐섬을 따로 떼면 다섯으로 나뉜다. 여기에 각 지역의 특유한 정서까지 고려한다면 이탈리아는 20개 이상의 지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 사실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모든 나라는 모순으로 가득하며, 이는 동시에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 모래사장을 따라 관광 리조트들이 늘어서 있고, 그 뒤로 수백 개의 소규모 공장들이 이어지지만 내륙은 훼손 없이 잘 보존되었다. (8, 9, 44쪽)



  《세계를 읽다, 이탈리아》(가지,2015)를 읽으면서 생각합니다. 이 책은 여러모로 재미난 여행 길잡이책입니다. 이 책을 쓴 분은 “버스는 기차보다 접근성이 더 좋아서 이동하는 도중에 그림 같은 마을이나 전원 풍경을 잘 볼 수 있다. 아주 편하게 앉아서 가지는 못해도, 적어도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를 내려다보며 갈 수는 있다(243쪽).”처럼 이야기하면서 글멋을 풍깁니다. 수수한 여행길이 재미난 여행길이 되도록 북돋우고, 큰돈을 들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여행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밝혀요.


  단체여행을 하지 않고 혼자 따로 모든 것을 알아보면서 여행을 한다면, 이름난 관광지가 아닌 ‘이름 안 난’ 마을이나 도시를 둘러보기 마련일 테니, 이때에는 “상대적으로 변방에 있는 예술도 마찬가지로 위대한 예술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235쪽).” 하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유적지나 박물관을 찾아서 여행하는 일도 뜻있습니다. 유적지나 박물관은 안 찾아가면서 ‘그 나라 여느 사람’이 사는 마을을 찬찬히 돌아보면서 ‘여느 사람 삶내음하고 이야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도 뜻있습니다. 꼭 이렇게 해야만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에 가서 꼭 뭔가를 봐야만 여행이 되지 않습니다. 여행길을 떠났으니 사진을 많이 찍어 와야 하지 않습니다.



트라토리아와 레스토랑은 안락함과 외관, 요리, 가격 등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돈을 물 쓰듯 쓰고 싶다면 우아한 레스토랑에 가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트라토리아를 선택하는 편이 좋다. ‘엄마가 만드는 가정식’이라는 뜻의 카살린가 요리를 파는 트라토리아는 더 소박하고 현실적이다 … 로마를 구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번에 한 지역씩 걸어 다니는 것이다 … 역사적인 외부와의 접촉으로는 스페인 카탈루냐와의 만남이 유일할 것이다. 오늘날까지 샤르데냐의 언어와 문화는 이탈리아의 그 어떤 곳보다 외부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22, 24, 53쪽)




  아침저녁으로 일터를 오가는 길이 여행길이 되지 못할 적에는 몹시 고단합니다. 그래서 무척 많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일터를 오가면서 고단해 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때에는 사람물결에 휩쓸리면서 지치거나 힘들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를 여행이라고 느낄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재미난 여행이라고 여길 수 있다면, 온 하루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요.


  몸이 아파서 병원이나 집에서 드러누워 지내야만 하는 사람으로서는 ‘지옥철’이라고 하는 고단한 아침을 겪지 못합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러니까 ‘목숨이 곧 끊어질’ 사람한테는 하루 한 시간이 모두 애틋해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가슴에 또렷하게 남습니다.


  높다란 봉우리에 꼭 올라야 하지 않고, 드넓은 바다를 꼭 보아야 하지 않으며, 깊은 숲에 꼭 깃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기쁜 마음이 되어 둘레를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홀가분한 넋이 되어 둘레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아름다운 사랑을 가꾸어서 둘레를 얼싸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행사에 관광객이 참여하는 것은 환영을 받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대되는 바이다. 하지만 이들 축제는 지역의 달력에 붉은 글자로 표시된 중요한 행사로, 관광객이 없어도 열정적으로 개최된다 … 당신이 만나게 될 가족에거 선물할 수 있도록 미리 고국에서 몇 가지 전통적인 물건을 가져가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한다면 부모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다. 너무 큰 선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마음이다 … 상대는 선물의 실제 가격보다는 당신이 적당한 선물을 고르기 위해 마음과 시간을 썼다는 사실에 더 큰 감동을 받을 것이다. (77, 92, 101쪽)



  나는 시골마을에서 살며 아이들하고 날마다 여행을 합니다. 마당이랑 뒤꼍을 오가는 여행을 하고, 집이랑 서재도서관을 들락거리는 여행을 하며, 자전거로 논둑길을 달리다가 숲길을 가로지르다가 바닷길을 헤매는 여행을 합니다. 그리고, 《세계를 읽다, 이탈리아》 같은 책을 마룻바닥에 드러누워서 천천히 읽으며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을 합니다. 책읽기도 수많은 여행 가운데 재미난 이야기꽃을 들려줍니다.




이탈리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탈리아인들은 나라보다 자신의 출신 지역에 대해 더 큰 자부심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이탈리아에서만큼은 시간이 돈은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거워한다 … 이탈리아인은 식료품을 조금씩 자주 구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래야 재료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의 음악적 유산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특히 에트루리아 문화의 일부였던 음악은 거의 모든 종교적·사회적 활동에 배경처럼 등장했다. 능숙한 플루트 연주자는 사냥꾼의 사냥을 돕기도 했다. (104, 105, 129, 210쪽)



  이탈리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나라’나 ‘중앙정부’보다 ‘내 고장’이나 ‘우리 마을’을 한결 자랑하거나 사랑하고픈 마음을 찾아볼 만하지 싶습니다. 내가 사는 마을을 좋아하고, 내가 사는 마을을 아끼며, 내가 사는 마을을 이웃하고 함께 가꿉니다.


  이탈리아사람뿐 아니라 한국사람도 ‘식료품을 조금씩 자주 살’ 적에 한결 싱싱하고 맛나게 누릴 만합니다. 텃밭을 둘 수 있다면, 그때그때 텃밭에서 뜯어서 먹는 남새가 대단히 맛납니다.


  한겨레도 예부터 언제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일하면서 일노래를 부르고, 놀이하면서 놀이노래를 부릅니다. 들에서 들노래를 부르고, 숲에서 숲노래를 불러요. 모내기를 하든 김매기를 하든 길쌈을 하든 베틀을 밟든, 참말 언제나 노래를 불렀지요.


  우리가 여느 때에 늘 즐기는 삶이 바로 문화이면서 예술입니다. 우리가 여느 때에 늘 즐기는 삶을 제대로 바라보면서 사랑할 수 있을 때에 아름다운 하루가 됩니다. 삶이 여행인 까닭은 삶을 재미나게 누리기 때문입니다. 삶이 여행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한국에서 어느 고장을 찾아가더라도 기쁘게 마실노래를 부릅니다. 삶이 여행인 넋이 될 수 있으면, 이탈리아뿐 아니라 지구별 어느 나라를 찾아가더라도 기쁜 웃음을 함께 나누면서 지구별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나누는 노래를 부르리라 생각합니다. 4348.6.20.흙.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인문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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