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자전거 삶노래 2015.6.15.
: 안장 부러진 채 뒷산 숲마실
어제 네 식구가 자전거마실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안장이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다고 느꼈으나 해질녘이 되어 따로 살피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자전거 안장을 들여다본다. 천으로 댄 덮개 아래쪽은 플라스틱 판인데, 이 플라스틱 판이 두 동강이 났다. 부러졌구나. 안장이 부러지는 일이 생기는구나. 자전거에 수레를 붙이고, 수레에 아이를 태우고, 다시 자전거에 샛자전거를 붙이고, 이 샛자전거에 아이를 태우니, 내가 앞에서 끄는 자전거는 힘을 몹시 많이 받는다. 오르막길을 달려야 할 적에는 안장도 무게를 대단히 크게 받으리라. 이 안장으로 예닐곱 해를 달렸으니 잘 버티어 주었다. 곧 새 안장을 마련해야겠다.
시골에서 바로 안장을 새로 마련할 길은 없기에 어설프나마 안장 밑에 종이를 대어서 눌림을 좀 다스려 본다. 부러진 안장으로 마지막 마실을 해 볼까 하고 생각한다.
아침을 일찌감치 먹었으니, 오늘은 해가 꼭대기에 오르기 앞서 길을 나서 볼까? 자, 얘들아, 마실 가자. 큰아이는 그림종이 한 장을 접어서 작은 가방에 넣은 뒤 멘다. 작은아이는 탬버린 주머니를 가방으로 삼아서 장난감을 챙긴다. “오늘은 어디 가게?” “천등산에 올라 보게.” “천등산! 높잖아?” “괜찮아. 갈 수 있어.”
마을 뒷산을 올라 보기로 한다. 우리 마을 옆에 있는 지등마을부터 난 오르막길을 달린다. 기어를 1*2로 맞추고 가파른 오르막을 타니 땀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지난해보다 여러모로 수월한 듯하다. 지난해에는 이만큼 이 길을 타지 못했다. 두 아이가 무럭무럭 크는 만큼 이 아이들을 이끌고 자전거 발판을 구르는 아버지도 다리힘이 차츰차츰 더 붙는 듯하다.
웬만큼 오르고서 자전거를 한 번 세운다. “자, 저기 보렴. 우리 집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있어?” “모르겠는데.” “잘 봐. 그럼 알 수 있어. 파란 대문 집을 찾아봐.” “안 보여.”
“그런데, 여기에서는 왜 이렇게 넓게 다 보여?” “높은 곳으로 올라오면 넓게 볼 수 있어.” “그렇구나.” “자, 이제는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소리를 들어 봐. 바람에 묻어서 흐르는 숲내음을 맡아 봐.” 한동안 서서 바람결을 살갗으로 느낀다. 바람에 묻어서 살랑살랑 흐르는 나무내음이랑 풀내음을 맡는다. 집에서 맡는 바람내음하고 사뭇 다르다.
다시 자전거 발판을 구른다. 용을 쓰며 더 오르려 하지만 끝까지 오르지 못하고 내린다. 이제부터 자전거를 끌어올리는 길. 훅훅 숨을 가쁘게 쉬면서 자전거를 끈다. 오르막길에서는 수레랑 샛자전거를 붙인 자전거를 끌기가 훨씬 벅차다. 작은아이는 수레에 앉아서 노래한다. 큰아이는 샛자전거 손잡이를 잡고 함께 끌어 준다. 대견하네. 그렇지만 큰아이 힘을 빌 수야 없지. 여기에서 큰아이 힘을 빼면 안 된다. “벼리야, 네가 끌어 주지 않아도 돼. 오르막이 가파르니 너는 그냥 걸어.”
큰아이가 손잡이를 놓고 걷는다. 힘이 곱으로 든다. 여덟 살 아이가 함께 끌어 주는 힘이 얼마나 크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런 가파른 오르막에서 살짝 거드는 힘이어도 여러모로 크게 보탬이 된다.
고갯마루에 닿는다. 모두 애썼다. 물을 한 모금씩 마신다. 기지개를 켜고 작은아이를 수레에서 내리도록 한다. 이제부터 내리막이다. 풀이랑 나무를 쓰다듬고 놀다가 다시 자전거를 탄다. 바람을 가르면서 내리막을 달리다가 밤꽃내음을 새롭게 맡는다. 언뜻선뜻 비치는 햇살 따라 나무그늘이 생기기도 하고 구름그늘이 생기기도 한다.
이제 금사마을 어귀로 간다. 자동차가 다니기 좋도록 찻길을 넓혔는데, 지난날 사람만 다니던 길이었을 무렵에는 이 길은 아주 고즈넉한 숲길이었겠지. 고작 쉰 해쯤 앞서만 하더라도 시골마을에서 고개를 넘는 조그마한 길은 모두 우거진 숲길이었으리라.
금탑사 오르는 길로 접어든다. 여기부터 새롭게 오르막이다. 자전거를 달리기에는 힘든 길이다. 또 자전거를 끈다. 자동차 한 대만 지날 수 있는 길이기에, 나무그늘이 길을 오롯이 덮는다. 짙푸르네. 예쁘네. 이런 길은 자동차로 다니지 말고 걸어야 제멋이다. 자동차가 있어도 자동차에서 내려 찬찬히 걸어야 제맛이다.
자전거를 끌고 오르기에 많이 벅찰 즈음, 길가에 자전거를 세운다. 드문드문 자동차가 지나가니, 길 안쪽으로 자전거를 살며시 내려놓는다. 이 길부터는 함께 걷자.
맨몸으로 숲길을 걷는다. 나무가 반기는 소리를 듣고, 숲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나무하고 새가 노래를 들려준다. 사이사이 풀벌레 노랫소리가 섞인다. 골짝물 흐르는 소리도 듣는다. 그래, 오늘은 너희가 걸을 수 있을 만큼 걸어서 골짜기에 깃들어 보자.
마땅한 자리를 살펴서 골짝물 흐르는 곳으로 내려간다. “폭신해!” 두 아이가 저마다 외친다. “땅이 폭폭 들어가!” “흙이 좋다는 뜻이야.” “흙이?” “응.” 나뭇잎이 쌓여서 천천히 기름진 흙으로 바뀌니, 이곳을 밟으면 폭신폭신 발이 빠진다. 숲흙은 참으로 고우면서 정갈하고 냄새가 그윽하다.
골짝물에 낯이랑 손을 씻는다. 여러 날 비가 오지 않아서 골짝물이 좀 가늘다. 비가 한 줄기 내리면 골짝물이 좀 불겠지. 다음에는 비 그친 이튿날에 골짝마실을 해야겠다.
큰아이는 제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어 그림을 그린다. “아버지, 이 산은 무슨 산?” “천등산.” “알았어.” 큰아이는 ‘천둥산’을 그린다. ‘등’을 ‘둥’으로 알아들었구나. 작은아이가 배가 고프단다. 도시락을 꺼낸다. “숟가락은 왜 하나야?” “숟가락 하나로 함께 나누어서 먹자는 뜻이야.” 두 아이한테 한 술씩 떠서 준다. 두 아이가 두어 술을 먹으면 나도 한 술을 먹는다. 고개를 타넘으면서 골짜기로 와서 먹는 도시락은 새로운 맛이지 않니?
골짝물 흐르는 소리하고 바람이 흐르는 소리를 함께 듣는다. 눈을 감고 듣는다. 이 노래가 아이들한테도 나한테도 온몸으로 고이 스며들기를 바라면서 듣는다. 내 입에서 흐르는 말도, 아이들 입에서 터지는 말도, 언제나 온통 숲바람이 감도는 사랑스럽고 즐거운 노래가 될 수 있기를 꿈꾸면서 듣는다.
고요히 서서 숲노래를 듣다가 춤을 춘다. 숲에 왔으니 숲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어야지. 나무랑 새가 즐겁게 놀라고 하는걸.
빈 도시락을 가방에 넣는다.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볼까. 내리막에서 작은아이가 달린다. “아아아아! 걸음을 멈출 수 없어!” 하면서 논다. 걸음을 멈출 수 없다면서 신나게 내리달린다. 다섯 살 아이는 내리막을 신나게 달리면서 안 넘어진다. 큰아이도 동생을 따라서 내리달린다.
숲길을 올라올 적하고 내려갈 적에 보는 모습이 다르다. 앞서 달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푸른 빛으로 가득한 둘레를 살핀다. 푸르게 푸르게 넘실거리는 물결을 헤아린다. 이곳에서 아름다운 삶을 짓는 길을 곰곰이 그린다.
풀밭에 자전거를 눕히고 안장을 매만진다. 주저앉은 안장이 삐걱거린다. 이 안장은 참말 오늘로 끝이로구나. 그동안 고마웠어. 네가 우리를 태우고 달린 길은 언제나 신나는 마실이었어.
자전거를 끌기도 하고 타기도 하면서 고갯마루를 오른다. 땀은 방울이 지면서 길바닥에 떨어진다. 고갯마루에 이르니 작은아이는 수레에서 잠든다. 바야흐로 내리막을 달리며 바람을 쐬다가 비탈이 너무 가파르구나 싶어서 얼른 자전거에서 내려 발로 자전거를 세운다. 이대로 가다가는 멈출 수 없겠다. 내리막이 끝나면 지등마을로 이어지는데, 굽이길이라서 아슬아슬하다. 수레랑 샛자전거랑 두 아이 무게까지 빠르기를 줄이면서 달리기는 어렵다. 내리막을 내리막대로 누리지 못하니 아쉽지만, 자전거를 세우지 못해서 깊은 못에 빠지거나 밭에 처박히고 싶지는 않다.
집에 닿아 작은아이를 안아서 자리에 눕힌다. 땀에 젖은 옷을 벗어서 빨래를 한다. 다음에는 자전거를 놓고 걸어서 뒷산마실을 해야겠다. 아니면, 고갯마루 내리막이 아닌 멀리 에도는 길을 달려 볼까.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시골에서 자전거와 함께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