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 한자말 216 : 눈眼雪


댓잎 붙잡고 하얀 눈眼 부비며 막 잠에서 깬 / 눈雪들이 뿌리 한 올씩 붙잡고 바닥으로 내린다

《고선주-꽃과 악수하는 법》(삶이보이는창,2008) 16쪽


 하얀 눈眼 부비며

→ 하얀 눈 부비며

→ 하얀 눈알 부비며

→ 하얀 두 눈 부비며

 눈雪들이

→ 눈이

→ 눈꽃이

→ 눈송이가

→ 하늘에서 눈이

 …



  한국말사전에는 ‘眼’이나 ‘雪’이라는 한자가 안 나옵니다. 아주 마땅한 일입니다. ‘眼’이나 ‘雪’은 한국말이 아닌 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보기글이 된 시를 쓴 분은 한국말 ‘눈’으로만 글을 쓰면 사람들이 헷갈릴까 보아 걱정을 하거나, 아니면 글멋을 살리려고 일부러 한자 ‘眼’하고 ‘雪’을 붙입니다. 이 글을 쓰신 분이 한자보다 영어가 익숙했다면 “하얀 눈eye”이나 “눈snow들이”처럼 글을 썼겠지요.


  그런데, 사람 몸에 붙은 ‘눈’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소릿값이 다릅니다. 사람 몸에 붙은 ‘눈’은 짧은소리이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긴소리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말할 적에 두 낱말이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예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이들한테 “저 눈은 ‘눈(짧은소리)’인가 ‘누운(긴소리)’인가?” 하면서 말을 가르쳤어요.


  입으로 하는 말이 아닌 손으로 쓰는 글이라면, 짧거나 긴 소리를 가르기 어려울 만합니다. 그러면, 이때에는 ‘눈으로 읽어서 알아볼’ 수 있도록 쓰면 돼요. “두 눈”처럼 적어도 되고, “눈송이”처럼 적어도 됩니다. “하얀 눈알”처럼 적으면 되고, “하늘에서 눈이”처럼 적으면 됩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눈들’로 적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비들’로 적을 수 없습니다. 한국말에서는 “눈이 내린다”와 “비가 내린다”처럼만 씁니다. 햇볕이 내리쬘 적에도 “햇볕이 내리쬔다”고만 할 뿐, “햇볕들이 내리쬔다”고 하지 않아요. 바람이 불 적에도 “바람이 분다”일 뿐, “바람들이 분다”고 하지 않습니다. 4348.6.16.불.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말 살려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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